▲맛을 뽑는 어민김준
대포리도 겨울철에는 꼬막으로 갯벌이 한바탕 뒤집어진다. 이 꼬막은 '참꼬막'으로 제사상에 오른다고 해서 '제사꼬막'이라 한다. 약간 더 깊은 곳에 서식하는 새꼬막은 배에 '형망'이라는 채취 도구를 달고 채취한다. 대포리에서 가장 깊은 곳에서 사는 패류는 새조개와 키조개이다. 봄철 영등사리 무렵 물이 많이 쓰면 키조개를 뽑아내는데, 한때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이렇게 대포리 갯벌은 어민들에게 농사짓는 '밭'으로 통한다.
갯벌을 이용할 수 있어야 진짜 마을 주민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대포리 어민들은 갯벌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지 못했다. 양식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농사철에 농사를 짓고, 농번기에는 부산이나 제주에서 고기 받아다 작은 이문을 남기고 넘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런 갯벌에 어민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양식면허제도가 도입되면서 부터이다.
1960년대 수산업협동조합법 개정과 함께 어촌계가 만들어지고, 관행적인 어업 활동에 대한 면허 제도가 도입되었다. 사실 면허 제도 이전에도 대포리에서 꼬막을 채취해 왔지만, 돈이 있고 일할 능력을 갖춘 사람들 중심이었지 마을 주민 전체가 참여하지는 않았다. 마을 주민 모두가 꼬막 양식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꼬막 양식이 어촌계에 허가되면서였다.
이렇게 갯벌이 마을 주민 모두 참여하는 생산 공간으로 바뀌자 이제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됐다. 공동 어장이기 때문에 공동 노동, 공동 분배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수, 순천, 장흥, 고흥 등 일부 지역은 갯벌을 나누어 개인별로 점유하고 있다(소유에 가깝지만 갯벌은 공유수면으로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개인 소유가 될 수는 없다). 갯벌을 양식장으로 만들기 위한 개인의 노력을 마을 공동체에서 인정하여 개별 점유를 인정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대포리처럼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분할하는 경우도 있다.
대포리 경우 개인별로 나누지는 않았지만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측량을 통해 갯벌을 7개로 나누어서 조별로 10여명이 꼬막 양식에 참여하고 있다. 조별로 매년 100여만원의 양식 운영비를 거두어 종패를 사다가 뿌리기도 한다. 이렇게 뿌린 종패는 3년 정도면 상품 가치가 있을 정도로 자라는데 주민들이 직접 꼬막을 채취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 채취꾼(대부분 순천 '마산'에서 온다) 20~30여명을 고용해서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채취한다. 소득은 조별로 분배하는 데 보통 500여만원 벌이는 된다고 한다.
외지 사람이 대포리에 들어와 산다고 하더라도 꼬막밭의 이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마을에서 3년 정도 생활하면 마을 주민으로 인정해 다른 갯일들은 할 수 있지만 꼬막밭만은 다른 구성원이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진정한 마을의 구성원은 꼬막밭을 벌어먹을 수 있어야 인정되는 것이다.
갯벌에서 하루에 10만원씩 뽑는다
35도를 오르내리는 땡볕에 대포리 갯벌에는 10여명의 여성들이 얼굴이 갯벌에 닿을 정도로 팔을 뻘에 집어 넣어 무엇인가 뽑아내고 있다. 여름철 갯벌에서 맞는 바람은 육지와 다르다. 갯바람은 시원하기는커녕 소죽을 끊인 후 솥뚜껑을 열 때 나오는 훈기마냥 얼굴을 덮쳐 숨을 쉬기 어렵다. 이들은 아침 5시 30분에 나가서 물이 들어 오는 4시 30분 무렵까지 열 시간 이상 갯벌에서 가리맛을 뽑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