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은 장남과 차남도 구별한다?

공장들 사이에서 가쁜 숨 내쉬는 전남 여천 '득실 마을'

등록 2004.08.19 05:51수정 2004.08.1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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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득실 마을 모습

득실 마을 모습 ⓒ 김준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순천 IC에서 나와 막 여수 쪽으로 접어들어 10여분 지나다 왼쪽에 자리한 전형적인 어촌마을이 있다. 이곳 광양만 안쪽에 자리한 득실마을은 달성 서씨의 집성촌으로 갯벌과 바다가 좋고 농사 잘되어 이름도 득실(得實)이라고 하였다.


1930년대 중반까지는 밤고을(栗村)의 중심지였던 득실마을 갯벌은 만입 지역으로 경사가 완만하고 평탄하며 모래와 진흙이 섞인 곳이다. 이곳은 고막, 새고막, 바지락, 맛, 나배기, 분통, 소라, 굴 등의 패류 양식의 적지였다.

예로부터 이곳은 섬진강 하류에서 밀려드는 영양염류가 광양만 하류에 축적되면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석화, 고막, 바지락 등이 많이 생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맛이 좋기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득실마을은 식민지 시기부터 굴 양식을 시작하여 일찍부터 바지락과 고막으로 품질을 인정받은 지역이다. 식민지 시기의 대표적인 양식 어업은 김 양식과 굴 양식이었다. 당시 김 양식 기술개발을 위한 시험도 바로 이웃한 태인도에서 이루어졌던 점을 고려한다면 광양만은 우리 양식어업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갯벌임에 틀림없다.

큰돈을 만지기 시작한 것도 갯벌 덕

a 새마을운동 시기에 만들어 놓은 반공의식 고취를 위한 표지석. 표지석에는 '북괴야욕 변함없다 위장 평화 속지말자, 천만의 한뜻으로 대공태세 나라사랑, 우리현실 바로보고 좌경용공 경계하자, 오늘의 안정구축 내일의 밝은 미소'라고 적혀 있다.

새마을운동 시기에 만들어 놓은 반공의식 고취를 위한 표지석. 표지석에는 '북괴야욕 변함없다 위장 평화 속지말자, 천만의 한뜻으로 대공태세 나라사랑, 우리현실 바로보고 좌경용공 경계하자, 오늘의 안정구축 내일의 밝은 미소'라고 적혀 있다. ⓒ 김준

a 득실마을 갯벌

득실마을 갯벌 ⓒ 김준

득실은 오랜 옛날부터 어패류 채취가 중요한 생업이었다. 큰 배를 가지고 고기잡이를 한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전형적인 갯사람들로 자연산 고막, 바지락, 석화를 채취해 인근 도시에 판매해 가계를 꾸렸다.


그래서 득실마을은 장사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은 인구 30만의 순천시 중앙시장, 역전시장, 5일시장, 연안지구(신설주택단지-유흥업소 밀집)가 있어 충분한 소비가 가능하다. 외지 상인들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이문이 많이 남기 때문에 직접 소매를 한다.

옛날에는 마을에서 5분 거리인 율촌역에서 전라선을 타고 구례, 곡성, 남광주 시장 등지로 나가기도 하였다. 마을에 중매인들이 있지만(율촌수협 중매인) 현지에서 경매가격이 싸고, 경매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주민들이 30여 년 전 석화, 참고막, 바지락을 통해 큰돈을 만지기 시작한다. 마침 일본과 중국으로의 수출길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패류는 대규모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율촌에는 광양만에 기대어 바다를 보고 사는 마을이 22개로 모두 율촌어촌계에 속해 있다. 같은 어촌계에 속해 있지만, 갯벌을 각 자연마을별로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중 득실마을의 어장이 가장 넓고 어촌계 성원도 많다. 이곳은 일반 농어촌과 달리 최근까지 인구가 증가해 160여 가구에 어촌계원은 120여 가구에 이른다.

양식어업으로 큰 돈을 벌기 전까지 이곳은 70여 가구의 작은 마을이었다. 농토는 적지만 갯벌을 이용해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많은 세대가 전입해 온 것이다. 이중에는 외지로 시집을 갔다가 남편과 들어와서 사는 세대도 20여 가구에 이른다.

대부분의 어촌이 그렇듯 외지인들을 마을사람으로 받아들이는 데 매우 엄격했다.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한정된 어업자원을 공동으로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어장에 대한 이용과 규제가 일찍부터 까다로웠다.

특히 양식어업이 돈이 되기 시작하면서는 자본을 가지고 투기목적으로 외부인들이 마을에 들어오는 사례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규칙은 더욱 엄격해졌다. 이 때문에 보통 3-5년 동안 마을에 거주해서 마을 주민들로부터 검증을 받아야 하고 어장을 이용할 경우에는 마을 총회에서 심사한 후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일정한 입회비(행사료)를 내거나, 기존의 마을 주민들 중 일손이 없어 양도를 원하는 사람에게 시설비를 지급하고 인수해야 비로소 갯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예 외지인에게 바다를 내주지 않는 마을도 있다. 부모의 갯벌(어장)에 대한 권리는 장남에게 계승되지만, 차남의 경우는 외지인과 비슷한 절차를 밟아야 바다를 이용할 수 있다. 여름철 갯벌에서 만난 아주머니(64)는 입을 벌리고 죽은 바지락을 골라내며 필자와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방조제 막고 뻘이 차서 못해, 저그 방조제(광양방조제) 막고 나서는 종패들이 안 생겨, 고흥 벌교에서 바지락 꼬막 사다 뿌려. 한 사람이 한 1000평은 될 것이여. 꼬막만 해도 그렇고, 바지락도 그렇고 꿀밭(석화)도 한 사람이 대여섯 자리씩 돼 그것도 1000평 넘제. 요새는 자기가 능력이 있으면 맘대로 해먹어. 왼디(외부) 사람들이 시집 갔다 들어와서 해묵는 사람이 많아. 손부(일손)없는 사람 것 사서. 시집갔다 남편과 함께 들어와서 해. 다시 들어와서 하는 사람이 20가구가 넘어. 그런 사람들이 우리보다 낫아. 자네가(필자)가 꼬막 밭 사서 들어오고 싶어도, 인자는 못해, 들어오고 싶어도 못해. 못한 것은 못 하제."

장남과 차남 차별하는 갯벌

a 득실마을 갯벌 입구에는 3-4평 정도의 작은 규모로 나누어진 갯벌이 있다.

득실마을 갯벌 입구에는 3-4평 정도의 작은 규모로 나누어진 갯벌이 있다. ⓒ 김준

a 바지락도 그늘에서 쉬고 싶다

바지락도 그늘에서 쉬고 싶다 ⓒ 김준

득실마을 갯벌 입구에는 3-4평 정도의 작은 규모로 나누어진 갯벌이 있다. 이것은 깊은 곳에서 바지락, 고막 등을 캐서 임시로 보관해 놓은 보관창고로 가격에 따라 유통량을 조절한다.

득실마을 앞 갯벌은 물이 빠지면 최근 율촌 3공단을 조성하면서 막은 원둑을 따라서 강이 하나 흐르고 장도 앞까지 넓은 뻘이 드러난다. 갯벌은 작업장까지 걸어 들어갈 수 있도록 마을에서 1킬로미터 바닷길을 내놓았다. 이 바닷길을 통해 트럭과 손수레가 들어갈 수도 있다. 고막과 바지락 작업은 물이 많이 빠지는 사리(음력 29일부터 초하루)를 전후해서, 굴은 물때와 관계없이 작업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작업 외에 마을 공동어장은 주민들이 모두 나와서 작업을 해야 하며, 작업에 불참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득실마을의 경우 노동 능력이 없다고 해도 이사를 가지 않고 집이 있는 한, 어장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다. 간혹 자식들이 마을에 들어와서 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며, 보상이 이루어지면 자식들에게 준다. 물론 자식이 마을에 주소를 두었을 때만 인정을 해준다. 그렇지만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을에 주소를 두고 살 수는 있지만 바다를 이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득실마을 갯벌은 공동구역과 개인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과거에는 전부가 공동 양식장이었으나, 양식장이 너무 넓어 관리가 불가능해지자 마을 자체적으로 개인에게 지분을 나눠준 상태다. 개인지분으로 분할한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해방 전에도 개인지분으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그후 1960년대에 갯벌에 돌을 집어넣어 새로운 투석식 굴양식장을 마련하면서 어장을 1-3등지로 구분하여 분할하였다.

a 가구별로 나누어진 갯벌

가구별로 나누어진 갯벌 ⓒ 김준

1등지는 장남에게 2등지는 차남에게, 그리고 3등지 외지에서 들어와 오래 정착한 사람들에게 분배하였다. 물론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도 생면부지의 사람들은 아니고, 출가 외인들이 생계가 곤란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한번 배치된 어장은 자식에게 세습되는데, 방조제 공사 등으로 조류가 변하면서 지금은 2-3등지 어장이 오히려 좋아졌다. 이곳 갯벌은 1970년대 이후 면허연장을 해주지 않고 있지만, 공단조성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주민들은 보상지역을 포함해 양식을 계속하고 있다.

이렇게 장남과 차남을 구별하는 것은 외형적으로 장남이 부모를 모시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한정된 자원을 지속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장치이다. 자식을 많이 낳던 가난한 시절에 한정된 갯벌을 모두에게 나누어줄 수 없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마을규칙인 셈이다.

득실마을 여성들에게는 직업병이 있다

a 허리가 아파 손수레를 뒤에서 밀고 가는 여성

허리가 아파 손수레를 뒤에서 밀고 가는 여성 ⓒ 김준

a 바지락을 캐고 있는 여성

바지락을 캐고 있는 여성 ⓒ 김준

억척스럽게 일한 탓에 주민들은 대부분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고, 도시에 집을 마련하고 자식들도 외지로 유학을 보낼 수 있었다. 수십 년 동안 하루도 쉬는 날 없이 갯벌에 쪼그리고 앉아서 조새로 쪼고, 호미로 긁고 하다 보니 대부분의 여성들은 허리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득실마을 주민들의 갯일로 시작해 갯일로 일 년을 마무리한다. 철따라 잠시 농사일을 하고 허드렛일을 하지만 역시 주업은 갯일이다.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양력 9월에서 다음해 4월까지는 자연산 석화,바지락, 참고막을 채취하고,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 바지락을 채취한다.

개인작업장이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작업을 강제하지는 않지만, 거의 날마다 쉬는 날 없이 여성들을 중심으로 갯일이 이루어진다. 오직 바닷물이 들고 나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바지락, 고막, 석화 등 양식장의 작업위치가 달라질 뿐이다. 득실마을 여성들이 가장 힘든 철은 농번기인 9월과 10월로 농사일과 바다일이 겹치는 시기다. 이 때 허리가 더욱 휜다.

이렇게 하루도 쉴 틈이 없이 일을 하자, 득실마을은 자체적으로 추석 어간에 3일, 설 어간에 10일, 대보름 어간에 3일 동안 '개를 막는다'(바닥에 못 들어가게 막는 것). 이는 경쟁심 많은 부녀자들을 억지로 쉴 수 있도록 어촌계 차원에서 갯벌 작업을 차단한 것이다. 손수레를 가지고 갯벌에 들어갈 때 간혹 뒤에서 밀고 가는 여성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허리가 아파 앞에서 끌지 못하고 뒤에서 허리를 펴고 밀어야 하는 여성들이다.

1970년대 초등학교 시절 어렵게 구한 국정홍보자료에서 소중하게 오려붙여 제출했던 방학숙제 중에 하나가 '여천칠비' 공장(여천석유화학공장)이었다. 그것도 아버지나 가족 중에 이장이나 새마을지도자 완장쯤은 차야 구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였다.

연기가 피어오르던 공업한국의 상징 칠비공장은 득실마을 갯벌과 악연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 주민들은 여천공단이 조성이 이야기될 때까지 피해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무렵 피해를 예측한들 제대로 목소리도 낼 수 없는 시절이었다. 아마 공장이 들어서 지역이 잘 산다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빨갱이'로 몰렸을 것이다.

공장이 들어서기 전에 이곳에서 백합도 났고, 바지락과 꼬막도 났다. 지금은 백합은 찾을 수 없고, 바지락과 꼬막도 종패(씨앗)을 사다 뿌려야 한다.

그러나 1980년대 광양제철이 들어서고, 1990년대 율촌 1, 2차 지방산업단지 조성으로 양식장이 줄어들고 패류의 성장이 둔화되었고, 급기야 폐사율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2000년대 들어 여천석유화학공단이 확대되어 여수국가산업단지로 조성되고 맞은 편 광양에도 광양 컨테이너 부두를 비롯한 크고 작은 산업시설들이 들어서면서 광양만에서 가장 넓은 양식어장을 자랑하던 득실마을의 갯벌은 크게 줄어들었다.

아직도 양식어장을 둘러싼 보상문제가 계속되고 있지만 득실마을 앞 갯벌은 공장들 사이에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다. 갯벌도 숨을 쉰다. 숨을 쉴 수 없으면 인간이 질식해 죽듯이 갯벌도 숨을 쉬지 못하면 썩고, 갯벌 생물들은 산란 활동을 멈춘다.그리고 득실마을 주민들의 갯살림도 멈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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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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