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박근혜 대표의 '과거사 시험대'

[取중眞담] 박근혜 2기 체제 한 달, 무엇을 남겼나

등록 2004.08.18 18:24수정 2004.08.2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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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의 한 주요 관계자는 지난 전당대회에서 나온 박근혜 대표의 연설 중 두 가지를 주목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말해 강한 여성상을 부각시켰고, 비주류와의 관계에 대해 '나의 원칙이 옳다고 생각하면 저와 함께 할 것이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이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말해 분명한 선을 그었다"고 평가했다. 줄곧 상생을 외쳐왔던 것과 달리 강한 지도자상을 표방한 것이다.

19일로 박 대표의 2기 체제가 출범한지 꼭 한 달. 박근혜 대표의 그러한 의지는 어느 정도 관철되었는 평가다. 적어도 정치공학적으로는 일리가 있다. 다음은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이국운 교수(한동대 법학과)가 한 말이다.

"일단 정체성이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국가 정체성 논쟁은 각자의 정체성에 대한 견해를 먼저 이야기하고 나서 시작되어야 하는데, 박근혜 대표는 먼저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있는 것으로 전제하고 그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한 것이죠. 그렇게 해서 정체성의 문제를 '당신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하는 문제로 바꿔버렸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 박 대표가 상당한 정치적 성공을 거뒀다고 봅니다."

박근혜 대표의 첫 시련은 과거사 논쟁이었다. 이를 박 대표는 국가정체성으로 맞받았다. 준비라도 한 듯 박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피를 토할 일"이라며 국가정체성 위기를 전면에 내세웠고, 그 며칠 뒤 당 출입 반장기자들을 집으로 불러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이후 열린우리당과 당내 비주류가 '독재자의 딸' '5년간 퍼스트레이디역' 운운하며 유신잔재 청산을 내세워 파상공세를 벌였지만, 게다가 정수장학회 문제까지 터졌지만 박 대표는 당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면에 나서 '나홀로' 싸움에 말을 아끼지 않았다.

대여투쟁력 통해 강한 지도자 부각

정치권 공방이 계속되던 중에 박 대표는 과거사 관련 당을 '보호'하려는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비공개회의에 참석한 당직자들은 박 대표가 "(유신, 정수장학회 문제 등에 관해)이건 개인 문제다, 당에 누를 끼칠 생각 없다'고 말하면서 개인의 책임으로 지고 나가려는 단호함을 보였다"고 평했다.


동시에 박 대표는 대구·경북 초선의원들과 새정치수요모임 소속 의원들과의 만찬회동을 가지며 정체성 공세의 속도조절을 하며 당내 초선, 소장파 그룹 등 지지그룹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였다. 비주류측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재오 의원 등이 '털건 털어야 한다'며 과거사를 문제시했지만 일단 '강한 야성'을 보였다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홍준표 의원은 "박 대표도 나름대로 나 역시 매서움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 여당보다 한 박자 늦더라도 지금이라도 이렇게 가는 게 맞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비주류를 당직으로 끌어들이는데는 실패했다. 이재오 의원은 문화정책위원장직을 거절했고, 이들은 여전히 밖으로 돌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과거사 공방이 지루하게 반복되던 차, 자연스런 후퇴를 고심하던 박 대표에게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사태는 호재로 작용했다. 중국 외교부의 홈페이지에서 해방 전 역사가 삭제된 사실이 밝혀지자 박 대표는 민족정통성 회복을 내세우며 여당보다 발빠르게 움직였다. 과거사 아젠다를 국내 과거사에서 국외 고대사로 전환을 꾀했다.

정수장학회 이사장직 사퇴 등 거취문제가 정점에 오른 즈음, 박 대표는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역사바로세우기, 국내용 국외용 따로 있냐"고 역공, 정부여당의 외교 무능을 꼬집었다.

이후 박 대표는 민생경제를 언급하며, 전직 대통령들과의 연이은 회동을 통해 과거사 공방을 마무리하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딸로서 유신시절 피해를 사과한다"고 한 것이 대표적. 그런 뒤 곧바로 당내 경제전문 의원들과의 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민생행보로 돌아선 뒤, 육영수 여사 30주기 추도식에 참석해서는 "과거를 덮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러한 일련의 행보를 통해 밖으로는 보수세력의 결집과 안으로는 지도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그 결과 이미지에 의존하던 리더십의 지지기반이 넓어졌다는 평이다.

신기남 의장 사퇴로 다시 과거사 시험대 올라

하지만 정치권의 과거사 공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과거사 국회특위 제안했고, 선친의 친일전력과 관련 신기남 의장의 당직 사퇴 등 정부여당이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과거사 진상규명의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박 대표의 입지를 옥죄는 상황이다. 노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서도, 신기남 의장의 거취에 대해서도 박 대표는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이미 민주화운동 재야단체들이 박근혜 대표의 정계퇴진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민주노동당 역시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거사 진상규명이 정치적으로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양당 대표의 동반사퇴 여론이 형성될 조짐이다.

박근혜 대표의 리더십 시험대는 '과거사 문제'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당 대변인실의 한 관계자는 '대권주자 박 대표에게 과거사가 어느 정도의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우리는 방송이 제일 무섭다. 만약 방송이 유신독재 하에서 피해자들을 다큐 등으로 내보내기 시작하고, 피해자 가족들이 울고불고 하는 모습 나가면 어렵다고 본다. 지난 탄핵 때 너무나 절실하게 경험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앞으로 2년 동안 자기관리와 리더십을 발휘해 얼마나 신망을 얻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하며 당과 박 대표와의 관계에 있어 냉정한 태도를 견지했다. 두 번의 대선 실패를 경험한 한나라당으로서는 '아들' 무리수에 이어 '아버지' 무리수를 감수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과거사 시험대에 오른 박근혜 대표의 '외로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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