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 있던 피를 친구는 계륵이라고 했습니다. 먹기도 그렇고 버리기도 뭐한 닭갈비.김규환
농사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다. 부지런해야 한다. 하루 중 몇 번이고 사랑을 퍼부으면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다. 특히나 논농사는 물꼬를 봐야 하고 병이나 해충이 생기는가를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무더운 여름철엔 멀쩡하던 벼가 어느 날 벼멸구와 이화명충나방, 문고병에 도열병, 흰빛잎마름병까지 괴롭힌다. 예전엔 그 때마다 질소비료를 줄이고 논을 바짝 말리는 방법으로 사전 예방을 했다.
예방농법이라 이름 붙여 볼까. 농사에서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벼를 흔들어 보아서 뭔가 후두둑 날아다니면 이미 때는 늦어버린 것이다. 여기에 농약을 친들 어깨만 아플 뿐 별 효과가 없다.
가루로 된 제초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김매는 게 일이었다. 도사리, 가래, 부들, 골풀, 모시, 마름, 대패지심을 손으로 뽑아줬다. 어깨를 구부정하게 하고, 아랫도리는 긴 옷을 입고 팔에 토시를 해야 한다. 고무신도 신을 일이 없었다. 노출된 부분은 커가는 벼의 날렵한 부분에 베이기도 했다.
지심이라는 놈, 김이 어디 이뿐이던가. 모내기 할 때 함께 심겨져 벼와 한 몸이 되어있거나 논바닥에 애초에 자리 잡고 있던 피라는 못된 놈이 성가시다. 어릴 땐 잘 구분도 되지 않았다. 며칠 동안 콩밭을 매고 돌아와 보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으쓱으쓱 자라 있다.
벼는 뿌리가 갈색이다. 줄기 가운데 부분이 노르스름하다. 무지갯빛이 도는 하얀 줄이 있는 피와 달리 벼는 별 구분선이 없다. 피가 2~3주 일찍 피어 이삭을 쑤욱 드러내면 지나가는 이마다 “저저저….” 하거나 “어허, 농사 쫑치겠구먼….” “박샌, 올 농사는 작파했는가 보네”하며 혀를 끌끌 차거나, 무슨 좋지 않은 일을 당한 건지 이웃사촌으로서 그 집에 한 번 들러 확인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