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 쓸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

플러스, 마이너스 아닌 바로 ‘가치'

등록 2004.08.21 16:05수정 2004.08.2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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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치 가계부를 정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한 시간 정도다. 수입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남편과 내가 매일 지출한 내역을 항목별로 정리하기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결혼 1년차 주부인 나. 사실 가계부를 쓰기 시작한 건 천성이 꼼꼼하고 살림을 잘해서라기보다는 아기를 낳고 지출이 많아지면서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곳에 쓴 것 아닌데도 대부분 쪼들리기 마련이지만 어쩌다 돈을 남기기라도 하면 그 부자 된 기분은 가계부를 써 본 사람만이 알거라 생각한다.

그 기분을 알고서야 비로소 콩나물 값도 깎을 줄 알게 되고, 예쁜 옷 보면 계절 끝 무렵 세일할 때까지 기다릴 줄 알게 된다.

물론 외식하자는 남편한테 잔소리 하고, 친구들 만나 차 값 낼 때 좀 치졸해 지지만 가계부 앞에선 모든 게 다 용서되는 것이다.

이렇게 일이만원 아껴 보려고 치졸해지기까지 했던 나를 한방에 무너트린 사건이 있었다. 지난 달 가계부를 쓰면서 일어난 일이다.


지난 달은 일년 중 수입이 가장 많은 달이었는데도 10만 원가량 마이너스였다. 수입이 훨씬 적었던 지지난달에도 10만원을 남겼는데 말이다. 원인은 휴가비용 과다지출이다.

마이너스 가계부를 보며 투덜대는 내게 사무실 실장님이 휴가비용 내역을 물었다. 나는 휴가지는 내 고향이었고, 큰아버지 댁에서 지냈으므로 별도의 숙박비나 식대는 들지 않았으며 큰아버지 선물비, 차 유류대, 선박 교통비 등을 포함한 금액이라고 말했다.


실장님은 또 누구와 함께 갔느냐고 물었다. 휴가를 함께 간 사람은 친정 부모님, 우리 부부, 아들 영현이, 조카 수정이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실장님은 휴가비가 결코 과다지출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우선 큰아버지 선물비는 그보다 지나쳤어도 아주 잘한 일이며 따로 용돈을 드리지 못하는 친정 부모님께 일년에 한번 여행을 보내드린 걸로 생각하면 그도 아주 잘한 일이라는 것이다.

또 나들이 한번 제대로 떠나지 못하는 우리 가족이 일년에 한번 여행을 다녀왔다고 치면 얼마나 멋진 일이며, 가까이 지낸다는 이유로 별다르게 고모 노릇 한번 제대로 못해 준 조카에게도 멋진 시간을 만들어 주었으니 절대 과다지출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장님은 적은 비용으로 알차게 보낸 휴가였다고 평을 내렸다.

가계부를 보고 휴가 안 갔으면 그 돈 모두 저금할 수도 있었다며 내년부터는 "휴가 없다"고 외치던 남편은 실장님 평을 듣고 아주 훌륭한 상사를 두었다고 했다.

일이만원 때문에 치졸하게 굴었던 일이 많았던 나도 아주 크게 깨달았다. 가계부를 쓸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 그것은 플러스, 마이너스가 아닌 바로 '가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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