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 문방구에선 향기 나는 연필을 팔았다. 불량식품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 연필을 사서 뭔가 중요한 것들을 적을 때에만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연필의 춤에 맞춰 하얀 종이에 위에 또박또박 적혀지던 글씨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이메일이 대중화되면서 손목을 놀려 글씨를 쓰는 즐거움이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연필로, 펜으로 글씨를 써보면 키보드를 누르면서 글을 쓰는 것의 차이를 금방 알 수 있다. 아무래도 한 글자, 한 글자를 적어 나가면서 문장에 정성을 들이게 되고, 수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주의를 기울여 글을 쓰게 된다.
그러면 어릴 적 향기 나는 연필로 쓴 문장처럼 컴퓨터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거기에 배어나기 마련이다. 편지에는 그렇게 마음을 담아 보내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언론인인 리영희 선생의 일화가 생각난다. 리 선생이 뇌출혈로 쓰러져 몸이 불편해지자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선생을 위해 전동칫솔을 선물해드렸다. 하지만, 비록 몸의 절반이 마비된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리 선생은 선물 받은 전동칫솔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손목을 돌려 이를 닦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정말 몸이 불편해져서 양치질을 할 수 없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하얀 거품을 입안 가득 머금고 칫솔을 돌리면서 이를 닦는 감촉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전동칫솔이 아무리 편리하다고 해도 절대 이런 종류의 작은 기쁨은 선사할 수 없다는 것을 선생은 알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메일이 아무리 편리하다고 해도 거기에 진심을 담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