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정권 과거사 청산작업 정치적 의도있다"

영 <파이낸셜 타임스>, 23일자 사설서 비판 '눈길'

등록 2004.08.23 12:17수정 2004.08.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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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노무현 정권의 역사청산 작업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비판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경제지가 특정국가의 정치적 사안을 첫머리 사설로 비중있게 보도하기는 이례적인 일이다.

파이낸설 타임스는 23일자에 게재된 사설에서, 역사적 과오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노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과거사 재조명 작업이 과거사에 대한 열린 태도라는 면에서는 환영할 만 하지만 국가적인 참회와 반성보다는 편협한 정치적 이득을 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이어 과거사 조사작업이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표에 대한 마녀사냥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는 한나라당의 반응을 소개하고, 과거사를 둘러싼 논쟁이 보수적인 장년층과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진보적인 청년층 사이에 존재하는 골 깊은 세대간 단절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설은 마지막 결론부에서 "노 대통령이 지금 같은 과거사 조사 작업을 아예 폐기하든가 아니면 한국이 현대적이고 산업화된 국가로 성장한, 고통스러우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변화과정에 대해 정직한 눈으로 응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과거사 청산작업에 균형잡힌 시각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한편 사설은 과거사 조사가 보수인사 뿐 아니라 공산주의나 북한의 공산독재를 지지한 사람들까지도 포함해야 한다는 박근혜 대표의 주장에 대해선 "영악하지만 정당하다"며 옹호 입장을 폈다. 이는 과거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 등에 의해 용공조작으로 피해를 입은 인사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다음은 파이낸셜 타임스 23일자 사설 전문(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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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T.com


아시아 역사의 이용과 남용 - 노 대통령 또 다시 정치적 난관 봉착


과거를 돌아보고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훌륭한 생각이다. 한국의 굴곡 많은 현대사를 공식 재조사하려는 노무현 대통령은 그의 계획이 이렇게 비치기를 바라고 있음에 틀림없다.

불행하게도 노 대통령과 참모들은 국가적인 참회와 반성보다는 편협한 정치적 이득을 노리고 과거사 재조명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난 주 발표된 법안은 한국인이 국가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국제적 승인을 얻는데 진정으로 기여할 "진실과 통합"이라는 비 당파적 절차의 목표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동북아의 이웃 국가들에 비해 과거사 청산작업에서 앞서 왔다. 지난 1996년에 있은 재판에서 1980년대의 부패와 권위주의가 낱낱이 공개된 바 있다.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이 재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비록 후일 사면을 받았지만 재임 중의 과오로 인해 각각 사형과 22년 형을 선고 받았다.

일본은 2차 대전을 전후로 아시아에서 저지른 잔학행위의 진상을 정면으로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지도부 역시 기아와 잔학행위로 수백만 명의 죽음을 야기한 모택동의 과오에 대해서도 아직 말끔하게 청산을 하지 못한 상태다.

과거사에 대해 어정쩡한 비밀주의로 일관하는 양국의 이런 행태와는 대조적으로, 1910년에서 1945년의 식민통치기간 중 이루어진 친일부역행위와 한국의 현대사에 대해 재조사를 명령한 노 대통령의 조치는 과거사에 대한 열린 태도라는 면에서 환영할 만 하다.

하지만 2003년 집권 이후 수 차례 정치적 논쟁에 휘말려온 좌편향의 노 정권은 과거사 조사작업이 보수야당의 신뢰를 무너뜨리려는 노골적인 정치적 의도를 감추고 있지 않음을 한국인에게 아직 납득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과거사 조사작업이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표에 대한 마녀사냥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이후 18년간 한국을 통치했으며 일부에서는 한국 근대화의 아버지로 보고 있지만 집권기간 중 반대파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으며 일본군 장교로 복무한 바 있다.

과거사 청산을 둘러싼 논쟁은 보수적인 장년층과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진보적인 청년층 사이에 존재하는 골 깊은 세대간 단절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역사를 가지고 장난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름을 금세 깨닫고 있다. 역사청산작업의 예상치 못 했던 첫 번째 희생자는 보수야당이 아니라 우리당의 신기남 의장이었다. 신 의장의 부친이 일제의 헌병 오장이었으며 신 의장이 이를 감추려고 시도한 것이 밝혀진 것이다. 한편 박근혜 대표는 과거사 조사가 보수인사뿐 아니라 공산주의나 북한의 공산독재를 지지한 사람들까지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표의 이런 대응은 영악하지만 정당한 주장이다. 노 대통령은 지금 같은 과거사 조사 작업을 아예 폐기하든가 아니면 한국이 현대적이고 산업화된 국가로 성장한, 고통스러우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변화과정에 대해 정직한 눈으로 응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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