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때의 마주침이다

등록 2004.08.24 05:59수정 2004.08.24 14:5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소나무 같은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소나무 같은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박인오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푸르디푸른 하늘에 한 점 구름 같은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운치 있다 하겠지만 외로운 하늘의 마음 달래주는 한 점 구름 같은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한 그루 늙은 소나무 같은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쓰러질 듯 서 있는 소나무가 무엇이 아름다울까 마는 길 떠나는 나그네에게 그늘을 주는 한 그루 늙은 소나무 같은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발걸음이 빠르지만 경망스러워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발걸음이 느릴지라도 게을러 보이지 않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필단의연(筆斷意連)이라 했던가. 글은 끊기어도 마음은 이어진다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벽안(碧眼)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다. 마음을 깨치고 깨쳐 푸른 눈을 가진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의 푸른 눈은 나를 깨치고, 그의 푸른 마음은 세상을 푸르게 하리라. 가슴속 의젓한 심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의 의젓한 심지는 속 좁은 나를 꾸짖고, 나는 잠시 민망해하리라.

웃음이 커다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애써 천박함에 웃음 짓지 않는 그런 의연함이 깃든 사람을 만나고 싶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의 부족한 표현력을 아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는 나의 말없음을 단지 화남으로 생각하지 않고, 내 표현의 부족함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생각하지 않으리라. 정말 내 마음을 나같이 아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삶이란 어느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여행과 같다.
삶이란 어느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여행과 같다.박인오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뜸(開眼)이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때의 마주침이다. 그런 만남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끝없이 가꾸고 다스려야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친구 감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도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사람한테서 하늘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만이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권태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늘 함께 있으면서 부딪친다고 해서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여 변화를 가져오지 않고, 그저 만날 비슷비슷하게 되풀이되는 습관적인 일상의 반복에서 삶에 녹이 스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가꾸고 다듬는 일도 무시될 수 없지만, 자신의 삶에 녹이 슬지 않도록 늘 깨어 있으면서 안으로 헤아리고 높이는 일에 보다 근본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생각과 영혼에 공감대가 없으면 인간관계가 투명하고 살뜰해질 수 없다. 따라서 공통적인 지적 관심사가 전제되어야 한다. 모처럼 친구끼리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공통적인 지적 관심사가 없기 때문에 만남 자체가 빛을 잃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한번 왔다가 가는 것이 정한 이치이다.
한번 왔다가 가는 것이 정한 이치이다.박인오
끊임없이 탐구하는 사람만이 지적 관심사를 지닐 수 있다. 사람은 저마다 따로따로 자기 세계를 가꾸면서도 공유하는 만남이 있어야 한다. 칼릴 지브란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 가락에 떨면서도 따로 따로 떨어져 있는 거문고 줄처럼' 그런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거문고 줄은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울리는 것이지, 함께 붙어 있으면 소리를 낼 수 없다. 공유하는 영역이 넓지 않을수록 깊고 진하고 두터워진다. 공유하는 영역이 너무 넓으면 다시 범속(凡俗)에 떨어진다.

처서(處暑)지난 가을로 가는 길목, 마음이 하늘처럼 맑은 그런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생각이 무슨 솔굉이처럼 뭉쳐
딱딱한 사람 말고
새참 무렵
도랑에 휘휘 손 씻고
쉰내 나는 보리밥 한 사발
찬물에 말아 나눌
낯모를 순한 사람
그런 사람 하나쯤 만나고 싶다.

(박천.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2. 2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3. 3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4. 4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