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합방은 합법적... 과거사 올인 옳지 않아"

소설가 이문열씨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주장

등록 2004.08.24 13:31수정 2004.08.24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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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논쟁으로 정치권이 쑥대밭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20일자 <문화일보>에는 재미난 과거사 찬반 논쟁이 실렸다. <태백산맥>, <한강> 등 민족 소설을 주로 써온 작가 조정래씨와 <영웅시대>, <변경> 등으로 동시대를 달리 해석하는 작가 이문열씨가 정치권에서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는 과거사 논쟁에 찬반 논객으로 뛰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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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두 밀리언셀러 작가의 과거사 진상 규명에 대한 찬반 논쟁은 과거사라는 주제보다 보혁을 대변하는 작가라는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기사다. 그러나 이번 찬반 논쟁은 주제 의식에 대한 밀도 있는 접근보다 기존의 자기 주장에서 한치도 물러섬이 없는 것이어서 다소 맥빠지는 것이었다.

때문에 독자들의 시선을 단박에 끌지는 못했지만 한편으론 정치권에서 무차별적으로 치고 받는 정쟁보다는 읽는 재미를 쏠쏠히 느끼게 했다. 특히 보수 논객의 대표주자로 자처해 온 이문열씨의 인터뷰는 독자들과 네티즌의 공분을 자아냈다.

"36년간 국제법상 합법적 합방"

이문열씨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36년간 국제법상으로 합법적으로 합방됐다. 합방 당시 태어난 아이는 36살이 되도록 식민지 지배를 받고 살았다. 프랑스와 똑같이 비교하는 건 우습다. 시기상으로도 현재 국회가 위원회를 만들어 올인하듯 이 문제에 전부 쏟아 붓는 게 옳으냐"며 친일 과거사 논쟁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는 또 "과거사 조사의 원론에는 동의하지만 방법과 내용 기준 시기 등에서 다 문제가 있다고 본다. 친일의 내용이 뭐냐. 기준이 없다. 프랑스와 비교하는데 말도 안된다. 프랑스는 4년8개월이고, 우리는 36년간이다. 단순히 시기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프랑스는 전시점령이다. 괴뢰정부가 있었지만 바깥에 자유 프랑스 정부가 존재했다. 결국 전시부역한 사람의 문제다. 전시부역은 용서하기 어렵다"며 과거사 규명에 대해 이중적인 잣대를 보이고 있다.


과거사 진상 규명이라는 원론에는 동조하고 있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 '합법적 합병'이라는 이유로 '과거사' 자체가 없기 때문에 프랑스와는 달리 전시부역 등 청산할 과거가 없다는 것이 그의 논리인 것이다.

한일합방은 합법적인 것인가?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1910년 한일합방까지 일본이 한반도에 저지른 행적을 보면 합방이라는 결과만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과정 상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청일·러일전쟁을 치르면서 일본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수탈의 목적성을 체험하게 된다.

이에 따라 순차적으로 합방의 전 단계를 실현했으며 합병조약과 선언문에도 한반도를 '영구적'으로 일본 제국에 편입시킨다고 천명하는 등 국제법 절차와는 관계없이 일방적인 강제 합방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는 이완용 등 을사오적이 권력과 치부의 목적으로 깊숙이 개입함으로써 이문열씨가 주장하는 '합법적' 틀을 만들어 준 것이다.

이문열씨 주장대로라면 현재의 국사 교과서는 전면 수정되어야 하고 을사오적과 그들의 후손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나 재산에 대해서는 아무런 하자가 없어야 한다. 이러한 한일합방의 망령은 박정희 정권 때 부활하지만 정부의 원조금을 받기 위한 저자세 외교로 유야무야 되고 만다.

원조금을 받아내기 위해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에서 일본측은 합법적 합방을 주장했고 우리 측은 강제 합방을 주장,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다. 하지만 'are already null and void'(이미 무효)라는 한일기본조약의 제2조를 놓고 양국이 편의대로 해석하면서 이 문제를 덮는 데 급급했다.

제2조는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돼 있지만 '이미 무효'의 구체적인 시점이 언제인가를 둘러싸고 한일간 명백한 합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합병조약의 체결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법에 의해 강요된 것이므로 애초부터 이미 무효였다고 해석하고 있다.

"수구도 모자라 매국으로 가나?"

이문열씨의 한일합방의 합법성 주장은 일본의 주장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하다. 1995년 10월 참의원 본회의에서 당시 무라야마 수상은 "일한 병합조약은 당시의 국제관계 등의 역사적 사정 가운데에서 법적으로 유효하게 체결되었다"고 주장했다. 일국의 수상 입에서 나온 말이니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일본 정부의 입장은 조약 체결 후 4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무라야마 수상은 당시 한국과의 외교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일한 병합조약은 형식적으로는 합의로서 성립하였지만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우리로서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 있으며 조약체결에 있어서는 쌍방의 입장이 평등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런 역사적 상황에서 이문열씨의 이번 주장은 일본 정부의 주장을 넘어서는 망언과 다를 바 없고 이는 곧 '매국'이라는 것이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이같은 이문열씨의 망언 내용을 담은 기사가 인터넷에 소개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 '안티 이문열'이 확산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기사를 자신의 블로그에 옮겨 싣거나 댓글을 달아서 다른 네티즌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특히 이문열씨의 망언에 대해 진보 언론을 자처하는 매체들이 함구하고 있다며 싸잡아서 신랄하게 비판했다. 네티즌들은 "이번 망언은 보혁 구도로 해석해서는 안되며 이문열 개인의 매국 행위로 한정해서 응징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작가 이문열의 생존 방식

이미 알려진 대로 이문열씨는 부친의 월북으로 어려서부터 연좌제의 고통을 감내하고 살아야했다. 때문에 그에게는 좌경용공과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벽을 쌓아야만 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보수우익으로 편향된 시각을 갖게 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이같은 그의 부친 행적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그에게 과거사 규명에 대한 반대 논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해선 정치권에서 입에 오르내리는 논리로는 부족했을까 "36년은 국제법상 합법적 합방"이라는 그의 망언은 어쩌면 그의 생존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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