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하에서 배운 것, 천시보다 인화

삶의 몸부림 배어 있는 길, 실크로드를 따라 (2)

등록 2004.08.25 14:42수정 2004.08.2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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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여행에서 첫 번째로 들른 곳이 란주이다. 안내원은 란주는 중국 동서남북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하면서 은근슬쩍 란주 사는 자부심을 드러낸다.

하지만 나는 중국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란주보다는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황하에 눈길이 먼저 갔다. 백탑산에 올라 처음 황하를 보았을 때, 누런 물이 흘러가기에 어제 비가 많이 왔는가보다 하였는데, 생각하여 보니 강 이름이 황하이다. 란주를 남북으로 가르며 흐르는 황하를 백탑산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실크로드 여행이 시작되었다.

a 란주 백탑산에서 바라본 황하

란주 백탑산에서 바라본 황하 ⓒ 정호갑


다음날 간 곳이 병령사이다. 병령사로 가면서 정말 황하를 보았다. 배를 타고 바로 옆에서 황하를 보니 물이 살아 꿈틀거린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일야구도하가(一夜九渡河記)>가 생각났다. 보고 듣는 것이 누가 되면 사물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니, 겉모습에 얽매이지 말고 마음을 다스려야 사물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글로 생각된다.

하지만 아직 거기까지 도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에 황하를 계속 바라보니 현기증이 일어나 바라보다 눈을 돌리고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황하 하면 '아무리 기다려도 일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백년하청이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그 말의 뜻이 몸에 와 닿는다. 가도 가도 누런 물이다. 이 물이 맑아지길 백년을 기다려도 맑아지지 않는다는 말이 그대로 와 닿았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병령사의 모습에 잠시 눈길이 머물렀지만 그만 황하에 마음이 뺏기고 말았다.

a 병령사에서 바라본 황하

병령사에서 바라본 황하 ⓒ 정호갑


황하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어제 흘려들은 안내원의 말이 문득 생각난다. 란주는 강수량보다 증발량이 몇 배나 더 많아 매우 건조한 곳이라 한다. 어제 백탑산에 오르면서 길게 늘어선 나무마다 그 둘레에 홈을 파놓았고, 그 곳에는 물이 고여 있었는데 그것을 유심히 보며 서 있는 나에게 안내원이 건넨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곳에서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인 황하 문명이 탄생하였다. 그러고 보니 흔히 말하는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는 모두 큰 강을 끼고 있고 건조한 곳이다. 건조한 기후와 강이라는 관계 속에 문명이 탄생하고 발전하였다. 그렇다. 모자람이 있어야 문명이 탄생한다. 그것을 채워 가는 것이 문명이다.

a 수차원에 있는 수차 모형

수차원에 있는 수차 모형 ⓒ 정호갑

황하 유역은 매우 건조하므로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물을 끌어와야 한다. 흘러가는 강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몇 백년 전 이 곳 사람들이 이용한 것이 수차이다. 수차는 우리나라의 물레방아와 같은 것으로 황하의 흐르는 물을 끌어 올려 실생활에 이용하였다.


란주의 수차원에 가면 그 수차로 황하의 물을 끌어올려 그 힘으로 맷돌을 돌려 곡식을 찧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문명이다.

맹자는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라고 하였다. '천시'란 하늘이 준 자연 조건이 좋음을, '지리'란 현재 발을 디디고 살고 있는 주위 환경을 그리고 '인화'란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 세 가지가 한데 어울리면 좋겠지만 하늘보다 땅, 땅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넘실대며 흘러가는 강물을 끌어올리는 것이 바로 사람의 힘이다. 사람들이 서로 한 마음이 되어 지리를 이용하면 천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적 조건은 건조하지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지리적 조건, 그리고 그 지리적 조건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한 마음이 문명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우리는 반도라는 지형적 조건 때문에 발전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와 같이 반도인 로마는 어떠했나? 이제 우리도 자연 조건을 말하기보다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고, 그 조건을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서 서로의 마음을 열어 하나로 모아야 한다.

우리의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우리 주위는 그저 우리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스스로 중화라 자부하고 우리의 역사마저 자기들 것이라면서 언제라도 삼켜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중국, 우리를 발판으로 삼아 대륙 진출을 노리는 일본, 태평양을 건너면 세계 최강대국으로 우리에게 주인 행세를 하려 드는 미국 그리고 땅에 대한 욕심이 강한 러시아의 틈바구니에 우리가 놓여 있다.

a 2000학년도 수능 언어영역 문제에서

2000학년도 수능 언어영역 문제에서 ⓒ 수능시험에서

그리고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한 자원은 없다. 석유도 없고 땅도 작고 거기에 남북분단까지. 이렇듯 하늘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주저앉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5000년의 우리 역사가 이것을 말해 준다.

몇 년 전 수능 언어영역 시험에 우리 지도를 거꾸로 놓고 사고 전환을 요구하는 문제가 출제된 적이 있다. 큰 강은 해로울 수도 이로울 수도 있다. 우리에게 이로울 수 있도록 우리는 제방을 쌓고 물을 길어 올려야 한다. 그렇다. 사고를 바꾸면 우리가 세계의 가운데 있으며, 우리 주위에는 우리를 위협하는 나라가 아닌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많은 나라들이 있다.

인화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화합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은 다민족국가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인화를 강조하며 하나로 묶으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한 겨레이다. 이제 서로 발목 잡는 억지 놀음은 그만두고 어떻게 서로의 마음을 열어야 할지 고민하여야 한다.

이른바 미국은 개척정신, 중국은 중화주의, 일본은 사무라이를 내세우며 인화의 바탕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우리의 정신, 홍익인간, 화랑정신, 선비정신이라는 큰 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들을 살리려 하지 않고 흠집을 내며 그것을 버리기 바쁘다.

붉은악마는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 우리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있다. 마음을 열고 살아 꿈틀거리며 흘러가는 황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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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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