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원짜리 '솔' 담배, 암시장에선 1천원

[현장] 공급물량 부족 탓... KT&G "손해보고 팔고 있다"

등록 2004.08.26 09:24수정 2004.08.2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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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면세점에서 흘러나온 국산 담배와 수입 담배가 탈세된 가격으로 암거래되고 있습니다.

면세점에서 흘러나온 국산 담배와 수입 담배가 탈세된 가격으로 암거래되고 있습니다. ⓒ 이정근

1보루(10갑)에 2천원인 '솔' 담배가 정가의 5배인 1만원에 암거래 되고 있어 애연가들은 물론 일반시민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서울지하철 1·3·5 호선이 지나는 교통의 요충지 종로3가역 1번 출구 앞. 금은 등 보석을 파는 상가들이 즐비한 맞은편 차도 쪽에 온갖 물건을 판매하는 노점상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a 담배는 음식점이나 주점에서 손님에게 심부름 하는것 마저도 엄격하게 규제하고있는 특별한 상품인데 길거리 좌판에서 판매되고 있다는데 놀라웠습니다.

담배는 음식점이나 주점에서 손님에게 심부름 하는것 마저도 엄격하게 규제하고있는 특별한 상품인데 길거리 좌판에서 판매되고 있다는데 놀라웠습니다. ⓒ 이정근

많은 노점상 중에서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은 담배 노점상입니다. 담배는 공급허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소비자에게 팔 경우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돼 있습니다. 음식점이나 주점에서 판매가 금지될 정도로 엄격한 유통구조를 갖고 있는 담배가 좌판에서 팔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산담배와 수입담배 그리고 중국담배가 진열돼 있는 좌판에서 '솔' 담배를 발견하고는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담배가게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귀하신 몸, '솔' 담배를 여기서 만나다니. 마치 모래밭에서 보석을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이 담배 한 보루에 얼마예요?"
"만원이요"
"한 갑은요?"
"천 원이요"
"담배 가게에서는 200원에 파는 담배잖아요?"
"그럼 거기 가서 사시유."


퉁명스러운 담배장사 할머니 말씀에 더 이상 얘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담배 가게에서는 살 수 없는 담배를 여기서 만날 수 있다는 데 놀랐고 정부 고시가격 200원짜리 담배를 다섯 배인 1천원을 달라는데 두 번 놀랐습니다.

담배장사 할머니가 달라는 1천원을 주고 '솔' 담배 한 갑을 사, 주머니에 넣고 종로 거리를 걸었습니다. 보물을 내 손에 넣은 것 같은 기분과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 교차하면서, 묘한 감정과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a 담배 가게에서 '솔' 담배를 언제라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담배 가게에서 '솔' 담배를 언제라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정근

도시 저소득층과 농어촌 주민을 위하여 북한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하여 원가 이하의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는 '솔' 담배는 값싸고 품질 좋은 담배 맛 때문에 노년층 애연가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소매 점포에는 KT&G로부터 충분한 물량이 공급되지 않고 있어, '솔' 담배를 구할 수 없는 애연가들은 암거래 시장에서 비싼 값에 구입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소매인과 애연가 모두 불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서 담배 소매인으로 지정받아 슈퍼를 경영하며 담배를 팔고 있는 한영섭(43세)씨는 "매번 '솔' 담배를 주문하였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고 어쩌다 공급해주는 양이 한 보루(10갑)에 불과해 이제는 지쳐서 주문 자체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또 "지금까지 공급받은 물량이 다섯 보루(50갑)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단골 손님들로부터 '암시장으로 빼돌리지 않느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는 것이 억울하다"고 토로합니다.


서울 중랑구에 신내동에 거주하는 서봉석(74세·공인중개사)씨는 "'담배 소매 점포에 가봤지만 아예 '솔' 담배는 구경할 수도 없다"며 "KT&G 고객 상담실에 수차례 항의 전화를 해봤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서씨는 "가격이 인상되더라도 소비자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KT&G "솔 담배 손해보고 팔고 있다"

솔은 지난해 KT&G가 공급한 37억갑의 담배 중 1%가 안 되는 2390만갑이 공급됐습니다. 수요량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공급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KT&G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솔' 담배는 왜 원하는 만큼 충분한 공급이 되지 않는 것일까요.

KT&G는 '솔' 담배를 적자상태에서 팔고 있기 때문에 공급량을 늘릴 수 없다고 합니다. 담배사업법은 저소득층을 위한 특례조항으로 기준가 200원 이하 담배에는 소비세 40원, 교육세 20원 등 모두 60원만 세금을 물리고 있습니다. 이 대상이 된 담배가 '솔'입니다. 이 조항은 KT&G가 공사였던 시절부터 적용된 것으로 2002년 12월 민영화 이후에는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민영기업이 된 KT&G로서는 손해난다는 이유로 안 팔면 그만인 것이지요.

솔보다 한 단계 위 담배는 무려 1200원이 비싼 1400원짜리 '88'입니다. 기준가 200원을 넘는 담배는 담배소비세 510원, 교육세 255원을 비롯한 기본세금 929원에 10%의 부가세가 부가되기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가격이 올라가게 됩니다.

a 영세 노점상이 역 근처에서 담배를 팔고 있는 모습.

영세 노점상이 역 근처에서 담배를 팔고 있는 모습. ⓒ 이정근

KT&G 홍보실의 박원락 과장은 "솔 담배 생산이 시장원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공급을 계속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이라며 "가격이 싸고 수요가 많기 때문에 암거래가 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최대한 솔 담배가 지역적으로 골고루 공급되도록 하고, 소매상들이 중간에 빼내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단속권이 없지만, 노점상들을 적발해 고발하기도 한다"고 전했습니다.

세금 체제를 조절할 방법은 없나

그런데, 노점상들을 단속하고, 공급루트를 막아야겠지만 그것만으로 해결책이 될까요. 저소득층을 위해 관련세제를 고치고, 가격을 올리더라도 1천원 미만의 저가 담배로 남겨놓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이에 대해 담배사업법 소관부서인 재경부 재정정보관리과의 한 관계자는 "담배소비세는 행정자치부, 지방교육세는 교육부, 부가가치세는 재경부 등 담배관련 세금에 대한 부처가 5개나 되기 때문에 세금문제를 쉽게 결정내기 어려운 문제"라고 답합니다. 또 "서민들의 흡연권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와 담배가격 인상으로 금연을 유도해 국민건강을 인상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맞부딪히고 있는 것도 고려대상이 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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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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