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방송, 신문들은 문정인 대통령직속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이 주한미군 감축시기 결정에 반미 시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30일자 주요 신문 사설은 일제히 주한미군 감축시기 결정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 반미감정이라고 비판했다. 그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이 문정인 위원장의 발언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여러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중앙일보>는 30일자 사설 “반미 데모하며 미군 붙잡을 수 있나”에서 “문정인 대통령직속 동북아시대 위원장은 ‘주한미군 감축시기가 앞당겨진 것은 돌에 맞아 피 흘리는 미군 헌병 모습이 방송에 나온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얘기를 미국 측 고위관리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고 지적했다.
또한 “문 위원장의 발언은 정부 고위당국자로서는 처음으로 주한미군 감축시기에 반미감정이 작용했음을 인정한 것”이라며 “'미군 감축은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일 뿐'이라는 정부의 설명은 허언(虛言)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결국 반미데모가 감축의 촉발제가 된 것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중앙>은 이 결론으로 미군기지 이전 대상지인 평택 주민들의 요구도 부정적으로 다룬다. <중앙> 사설은 “이런 점에서 최근 평택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군기지 이전 반대시위는 매우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문정인 위원장이 든 하나의 뉴스만이 아니라 그 동안 누적되어온 반미 시위 때문에 럼스펠드 장관이 감축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동아>는 30일자 사설 “반미-반한 감정으론 미래 없다”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럼스펠드 장관이 그 뉴스의 영향만으로 주한미군 감축을 결정했을 리 없다. 한국 사회의 반미 감정은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에 의한 동두천 여중생 사망사고 이후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이 같은 반미 기류에 대한 우려가 럼스펠드 장관의 판단에 전제가 돼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동아일보>는 "이젠 정말 정부와 국민 모두 냉정하게 현실을 봐야 한다. 그 동안 반미감정을 부추겨 온 일부 시민단체는 무책임한 선동을 자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지적에는 여전히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미군의 철수는 미국의 오래 전부터 구상되어온 세계패권 전략과 동북아 전략에 바탕을 둔 것이라는 점을 간과한다. 두 번째는 한국에서 벌인 시위에 모든 탓을 돌리면서 정당한 요구들을 반미시위로, 사회악으로 몰아붙인다. 게다가 미 국방부 장관의 단순한 감정적인 판단이 주한미군의 철수 결정을 일으켰다고는 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정인 위원장의 발언이 과연 어떠한 맥락에서 나왔는가 하는 점이다. 8월 28일자 기사를 보면 <조선일보>는 “문 위원장은 전경련 국제경영원(IMI) 초청 월례조찬회에서 ‘작년 12월 30일 미국 NBC 뉴스가 용산기지에서 미군 헌병이 한국 학생이 던진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서 있는 장면을 3~5초 가량 방영했으며, 이 장면을 지켜본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격분해 ‘God damn it!(갓 뎀 잇·제기랄), Get them out!(겟 뎀 아웃·주한미군을 한국에서 빼 와라)’이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조선>은 “그는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로 지상군 감축 논의가 있었지만, 이것이 앞당겨진 것은 이런 사소한 실수 때문이란 점을 확실히 말할 수 있으며 직접 체험한 것’이라고 말했다”라고 썼다. 즉, 사소한 실수 때문에 주한미군 철수가 앞당겨졌다는 것이 대부분 언론의 보도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문정인 위원장은 발언의 맥락을 다르게 밝히고 있다. 직접 문 위원장과 통화하고 작성했다고 밝힌 <서울신문> 8월 28일자는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문정인 위원장은 27일 자신이 ‘주한미군 감축은 (반미시위 등) 우리의 사소한 실수에 의해 앞당겨졌다’고 말했다고 보도한 일부 언론에 대해 ‘(현장에) 오지도 않은 기자가 아무렇게나 기사를 써놓고 왜들 그러냐’며 크게 화를 냈다“고 했다.
또한 <서울신문>은 “결국 문 위원장이 주한미군 조기 감축 요인이 9·11테러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와 한국의 상황 변화라고 분명히 밝혔는데, 일부 언론이 (반미 시위 등) 한국의 상황이 결정적 요인이라고 말한 것처럼 보도했다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문 위원장 발언의 맥락과 발언 내용의 진위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위 때문에 주한미군 철수가 이루어졌고 이것이 막대한 국방비 부담으로 한국에 돌아왔기 때문에 정당한 한국 국민의 요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점이다.
더구나 미군 감축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음에도 한 가지 사안이나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부분만을 부풀리고, 일방적 결론을 이끌어내 반미감정 운운하며 미국에 대한 정당한 요구까지 사회악으로 몰아가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 럼스펠드 장관의 분노에 더 벌벌 떨고 국민의 분노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일부 언론의 태도는 더 큰 분노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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