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식·혈서 그리고 촛불행사... 들끓는 평택

[르포] 미군기지 확장 놓고 도-농, 서북부-동남부 주민갈등 증폭

등록 2004.08.30 14:28수정 2004.08.3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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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경기도 평택시 안정리에 위치한 미군 K-6기지.

경기도 평택시 안정리에 위치한 미군 K-6기지. ⓒ 오마이뉴스 남소연


"어디 지들 재산 한번 다 주고 미군환영 해보라고 해봐. 위로는 못해줄 망정... 몹쓸 놈들"

28일 평택에서 열린 미군기지 확장반대 집회에서 만난 방승윤(70· 팽성읍 대추리)씨는 쉽게 분을 삭이지 못했다. 길 건너편에서 열리고 있는 안정리 상인연합회의 미군기지 확장찬성 집회 때문이다.

100여명이 모인 상인연합회의 찬성 '잔치'에는 술과 음식, '뽕짝'과 '막춤'이 있었다. 미군클럽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성 10여 명도 나와 행사장 한 가운데 모여 연신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귀가 찢어져라 트로트 음악을 틀어대는 스피커 방향은 건너편 확장반대 집회 쪽으로 향해 있었다.

미군기지 확장 놓고 찬-반 집회 교차

"반미 외치는 빨갱이 놈들은 이북으로 가버려라." 간간히 외쳐대는 찬성 집회의 구호다. 찬성 측 한 인사는 반대 집회가 열린 직후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행사장 뒤편으로 돌진해 화환을 부수고 도주하기도 했다. 주위에 있던 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경찰은 뭐 하냐'고 항의했지만 이미 승용차는 유유히 사라진 뒤였다. 당시 현장에는 경찰 병력 2000여명이 배치돼 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방씨는 "가만히 있어도 정부는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미군기지 확장을 추진할 텐데…"라며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방씨는 "이번 싸움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고 예상한다. 그는 "어차피 정부의 턱없는 보상금으로는 다른 데 가서 먹고 살 수도 없다"며 "그러니까 다들 목숨 걸고 싸울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반문을 던졌다.

물러설 곳 없는 싸움, 주민간의 갈등과 반목, 경찰 병력 투입 증강, 주민 없는 주민설명회, 삭발식, 혈서, 그리고 촛불행사. 평택은 지금 들끓고 있다. 서울에서 내려온 한 의경조차 "부안처럼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토로할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a 상가번영회 등 미군기지 확장에 찬성하는 평택 주민들이 28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안정리 미군 K-6기지(캠프 험프리스)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상가번영회 등 미군기지 확장에 찬성하는 평택 주민들이 28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안정리 미군 K-6기지(캠프 험프리스)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찬반 측 갈등 심화, '제2의 부안사태' 우려

주한미군 평택 이전 어떻게 진행되나

정부는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라 순차적으로 평택시 일대의 토지 349만평을 내년 말까지 모두 매입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계획이 완료되면 현재 151만평인 평택 험프리스 기지는 436만평으로, 218만평인 오산공군기지도 282만평으로 면적이 늘어난다. 이 같은 규모는 서울 여의도 면적(실계측면적 기준)의 약 5배와 3배에 해당되는 면적이다.

정부는 우선 2004년 말까지 험프리스 기지 주변의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일대 24만평과 오산공군기지 주변의 평택시 서탄면 금각리 일대 50만평 등 74만평을 우선 매입할 계획이다.

2005년 말까지는 팽성읍 도두2리, 내리농지, 동창리 일대 261만평과 평택시 신장 1동, 서탄면 황구지리 일대 14만평 등 275만평을 추가적으로 매입할 예정.

정부는 지난 27일 발표한 '평택지원특별법'을 통해 이주대상인 현지 주민 740여가구의 보상 계획을 밝혔으나,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 토지 강제수용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점차 높아가고 있다.

정부는 다음달 1일 평택대에서 특별지원법에 대한 주민공청회를 열 예정이나 팽성읍 대책위 등은 공청회 자체를 거부, 무산시킨다는 계획이다. / 김태형 기자
28일 찾은 평택 시내에서는 미군기지 확장과 관련해서 두드러진 변화를 체감할 수는 없었다. 팽성읍 대추리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개인택시 운전기사는 "평택시와 팽성읍의 체감 온도는 다르다"며 "평택시의 경우 미군기지 확장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기자가 "미군기지가 확장 이전되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하는 분들이 많지 않냐"고 묻자, 그는 "평택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지금도 장사가 괜찮게 되는 것 같다"며 "한참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있는데 굳이 미군 기지가 커지는 게… 글쎄"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평택시 외곽으로 조금만 나가자 곳곳에 '미군기지 확장반대'라는 깃발과 플래카드가 내걸린 것을 볼 수 있었다. 미군기지 확장반대 투쟁의 본거지가 되고 있는 팽성읍 대추리 마을회관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김지태 팽성읍 대책위원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 민심의 동향이 어떤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김 위원장은 "팽성읍의 경우 같은 농민이라도 토지수용예정지의 경우 반대가 절대 다수고, 그 주변지역은 상대적으로 찬성 의견이 높다"고 전했다.

현재 미군기지 확장부지로 예정된 지역은 모두 349만평으로 대추·도두·동창·함정·내·신내리 등 팽성읍 서북부 지역이 해당된다. 주변지역이란 안정리·송화리 일대 등 팽성읍내와 동남부 지역을 말한다. 안정리의 경우 상업에 종사하는 주민이 상대적으로 많다.

김 위원장은 "예정지 주변 지역의 경우 지가 상승에 대한 기대 등으로 찬성 입장이 많다"며 "특히 확장된 미군 기지의 메인게이트(부대 정문)가 어디에 만들어질지가 그곳 주민들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부대 정문이 들어선 곳에는 분명 새롭게 상업지역이 조성될 터이고 주민들도 이에 따른 개발이익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추리에 3시간 가량 짧게 머물렀음에도 타지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차량들이 적지 않게 지나갔다. 김 위원장은 "요즘은 맨 투기꾼 아니면, 형사들 뿐"이라며 "요즘 팽성은 모르는 사람을 봤을 때는 신분을 확인해야 할 정도로 살벌한 상황"이라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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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안정리 상인들 중심으로 미군기지 확장 찬성 의견

29일 찾아간 팽성읍 안정리 주민들은 김 위원장이 전한 현지 분위기에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토지 수용지역 주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현실적으로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막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적당히 변화에 대처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의견이 많았다.

팽성 주공안정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모(주부·51)씨는 "미군기지 확장이전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결국 보상금 문제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니냐"며 "어차피 미군기지가 들어오는데 수 조 원이 들어간다니 그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보상금을 줘버리면 해결되는 것 아니냐"며 반대 운동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농협안정지점 옆에서 유흥업을 하고 있는 한 주민은 더욱 거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정부에서 지금보다 보상금을 한 3배 정도 준다고 했을 때도 반대하는 사람이 있겠냐"며 "괜히 타지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들어와 농민들을 부추기고 주민들을 이간질 시키고 있다"며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미군기지 확장이전에 대한 평택시와 팽성읍의 온도 차, 팽성읍 안에서도 대추리 지역 등 토지수용 예정지와 안정리 등 주변 지역과의 인식 차, 종사 업종에 따른 주민간의 입장 차이가 평택 문제를 복잡한 상황으로 만들고 있다.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는 요즘도 각 지역을 돌며 '미군기지 확장'의 부당성을 알리는 주민설명회를 연달아 개최하고 있다. <팽성지킴이>란 소식지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반대 투쟁 진행상황과 정당성을 조목조목 전달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군기지 주둔으로 입었던 주민 피해를 접수하는 활동을 벌이는 한편, 각 지역에서 주민총회를 개최해 정부 측의 토지수용에 절대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결의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회를 개최 토지수용 거부 입장을 밝힌 곳은 도두1·2리, 함정1·2리, 신대1·4리 등이다. 대책위는 앞으로 팽성 서북부 전 지역에서 총회를 개최해 토지수용 거부를 확산시켜나갈 예정이다.

"촛불·자치언론·카메라 통해 평택의 아픔 담아내겠다"

대책위는 미군기지 확장이 ▲평택의 군사도시화로 경제발전을 가로 막고 ▲이주 주민들의 생존권이 박탈될 뿐만 아니라 ▲기지 주변 주민들의 고통과 피해가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점 등을 확장 반대 이유로 홍보할 예정이다.

대책위는 앞으로는 팽성농협 안정지점 앞에서 지속적으로 '촛불행사'를 연다고 한다. 김지태 위원장은 "찬성하는 사람들 한 가운데서 미군기지 확장의 부당성을 알려나가기 위해 그곳을 장소로 택했다"고 밝혔다.

팽성읍 현지에는 캠코더를 들고 주민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현지 고등학생들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평택 기계공고 이재영(17)군은 "평택에 살지 않는 제3자 입장에서 이 문제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현장을 담고 있다"고 말하며 친구들과 함께 바쁜 걸음을 옮겼다.

다큐멘터리 감독을 꿈꾸는 이 학생들은 평택 문제를 "힘겹게 정착한 농민들의 삶의 터전이 정부에 의해 마음대로 유린되는 현장"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평택 한광고에 다니는 강석원(17)군은 "지금 찬성하는 분들이 몇 년 후에도 과연 같은 입장을 보일 지 의문스럽다"며 "함께 살아온 농민들께 지금 자신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되돌아 볼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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