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월드컵 그 아날로그다움을 위해!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분투기(24)

등록 2004.08.31 06:38수정 2004.08.3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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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울 올림픽 공식노래 "손에 손잡고" 합창 모습(서울올림픽기록영화 캡쳐)

서울 올림픽 공식노래 "손에 손잡고" 합창 모습(서울올림픽기록영화 캡쳐) ⓒ 영상홍보원

그리스 전통이 물씬 풍기는 폐회식을 끝으로 108년 만에 고대 및 근대 올림픽 발상지에서 열린 2004 아테네 올림픽이 뜨거운 여름을 달군 채 17일간의 열전을 마감했다.


화려했던 개회식과 폐회식을 보니 지금은 기억 속에 아스라한 1988년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서울올림픽과 2002년도 월드컵 개막식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월드컵 개회식 동영상은 P2P로 비교적 손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16년이나 된 서울올림픽 개회식 동영상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어찌어찌 영상홍보원 사이트에서 디지털 동영상으로 리코딩된 서울올림픽 공식기록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a 2002 월드컵 개회식에서 나온 종이비행기 CG 장면, 아테네 올림픽의 종이배와 유사해보인다.(mbc 방송화면 캡쳐)

2002 월드컵 개회식에서 나온 종이비행기 CG 장면, 아테네 올림픽의 종이배와 유사해보인다.(mbc 방송화면 캡쳐) ⓒ 문화방송

10년이 넘으면 강산도 변하듯이 HD로 구현된 선명한 월드컵 개회식 동영상과는 달리 영화 필름 자체가 좀 낡은 상태에서 복제한 것같은 서울올림픽 동영상은 비교 자체가 안될 정도로 촌스럽고 화질 면에서 차이가 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서울올림픽 공식노래 '손에 손잡고'를 배경음악으로 해서 벌어진 개회식 화면을 보다 보니 유난히 디지털을 강조했던 2002년 월드컵 개회식과, 우리의 월드컵 개회식을 벤치마킹한 것같으면서도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이었던 이번 아테네 올림픽 개회식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묘한 강렬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a 2002월드컵 개회식중 천을 이용한 퍼포먼스, 아테네 올림픽에서 보여준 물 퍼포먼스와 유사해보인다.(mbc방송화면 캡쳐)

2002월드컵 개회식중 천을 이용한 퍼포먼스, 아테네 올림픽에서 보여준 물 퍼포먼스와 유사해보인다.(mbc방송화면 캡쳐) ⓒ 문화방송

지금의 기준으로 세련미는 당연히 떨어질지 모르나 강렬한 색감과 함께 인간끼리 부대껴 어우러진 원초적인 살냄새와 땀냄새가 더욱 진하고 생생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똑같이 공연된 우리나라 전통놀이인 고싸움 느낌처럼 말이다. 마치 올림픽이 좁은 학교 운동장에서 서로 어울려 함성을 질러가며 직접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면 월드컵은 마치 화질 좋은 모니터 속에서 잘 짜여진 3D 게임화면을 보고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침 흘려듣던 감상적이고 약간은 격앙된 서울올림픽 영상 속 멘트 속에서 갑자기 들린 몇 마디가 가슴을 한 대 때리고 지나간다.

a 서울올림픽개회식중 고싸움놀이, 인간끼리 부대끼는 원초적인 느낌은 월드컵이나 이번 올림픽 때보다 강한 것같다.(올림픽기록영화캡쳐)

서울올림픽개회식중 고싸움놀이, 인간끼리 부대끼는 원초적인 느낌은 월드컵이나 이번 올림픽 때보다 강한 것같다.(올림픽기록영화캡쳐) ⓒ 영상홍보원

"진리는 단순하며 승리는 진리이다"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 이 메시지의 유혹 때문에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의 이상을 구현한다는 올림픽에서도 시대를 불문하고 약물복용이나 오심, 기타 깨끗하지 못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승리하려는 사람들이 꼭 나타나나 보다. 승리가 진리일수는 있지만 모든 승리가 진리일 수는 없는데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무리 디지털 마인드로 포장한다고 해도 올림픽이나 월드컵이라는 이벤트 자체는 태생적으로 지극히 아날로그스러운 행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디지털 시대에 지극히 아날로그스럽고 원초적인 이벤트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가장 중심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아테네 올림픽은 막을 내렸고 사람들은 2년 후 독일 월드컵과 4년후 베이징 올림픽을 기약하고 있다. 그 때가 되면 여전히 사람들은 승리를 위해 쉴새 없이 노력할 것이고, 승리를 목말라 할 것이며, 승리자에게 환호를 보내며, 간혹 승리를 얻기 위한 과정에서 안좋은 추문도 반드시 나올 것이다.

아마 2년 후, 4년 후가 지나도 월드컵이나 올림픽은 10년 전이나 20년 전도 그러했던 것처럼 약간의 기술적인 포장과 분위기만 바뀔 뿐 그대로일 것이고 여전히 어떤 이들은 메달 하나에 개인과 국가의 자존심을 걸면서 치열한 경쟁을 할 것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이야말로 자칫 삭막해지고 개인화되기 쉬운 디지털 시대에서 집단으로서 인간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몇 안되는 인간의,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얼마 남지 않은 단체적인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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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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