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죽은 것인가, 소설가가 죽은 것인가?

마루야마 겐지의 쓴소리 <소설가의 각오>

등록 2004.08.31 11:43수정 2004.08.3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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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쓰다. 마루야마 겐지의 산문집 <소설가의 각오>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소설가들에게, 그리고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떨떠름한 쓴맛을 제공한다. 하지만 쓴 것은 몸에 좋은 법.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가 시간을 뛰어 넘어서, 국가를 뛰어 넘어서 오늘날 한국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도 그 까닭이다.

마루야마 겐지는 통신회사를 다니다가 <여름의 흐름>이라는 작품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 그 후에 자연 속에 들어가 순수문학을 추구하는 전업 소설가로 올곧은 소설가의 정신을 몸소 보여주는 인물이다.

<소설가의 각오>는 독특한 삶을 살고 있는 마루야마 겐지가 등단하면서 겪은 이야기, 다른 소설가들을 보면서 갖게 된 생각, 소설가 지망생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묶은 산문집이다. 이 산문집은 특별하다. 명성을 얻게 된 소설가들이 산문집을 발표하는 건 의례적으로 여겨지는 일이지만 이 책은 의례적인 범주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돌 맞을 각오를 하고 쓴 소리들로 가득 채운 책, 그것이 <소설가의 각오>다.

“그들이 쓰는 소설은 어떠한가. ‘사소설’이라니. 마누라가 어쨌다는 둥, 아버지가 어떻다는 둥 하다가 나는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다는 넋두리. 아아, 인생이란 이다지도 고달픈 것인가, 급기야 태어나서 미안해요, 라고 말한다. 그런 소설은 세상에 발표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벽장 속에나 넣어두고 저 혼자 읽어야 할 글이다. 원고료와 인세로 밥을 먹는 주제에, 돈과는 무연하다는 표정으로 세상의 불행을 온통 저 혼자 짊어지고 있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참으로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작자들도 없을 것이다.”

“그러자 상대방은 문학 이야기나 신나게 하지요, 라고 말했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가 싫었다. 하물며 문학 패거리들과 교제를 하다니 소름이 끼쳤다. 문학은 읽는 것이며 쓰는 것이지, 논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소설쓰기를 목표로 하는 자는, 문학론 따위와는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해야 한다.”(소설가의 각오 中)


<소설가의 각오>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사람들을 향한 쓴소리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마루야마 겐지의 호통은 자연스럽다. 문학계가 처한 상황도 비슷하면서 또한 출판사의 부진과 함께 문학이 죽었다는 담론이 진부할 정도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 그렇다.

사실 <소설가의 각오>는 일본 내에서, 전 세계적으로 떠들썩한 ‘문학의 죽음’에 대한 반박이라고 할 수 있다. 마루야마 겐지가 소설가들을 비판하는 것은 ‘문학이 죽어서 문학이 죽었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소설가들이 죽었기에 문학이 죽었다’는 사실을 꼬집기 위함이다.

“서재에 틀어박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그런 생활에서 나오는 특징은 가식적이고 평면적인 것에 불과할 테니 그런 소설가는 한 명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술집이니 서재니 출판사, 때로는 골프장 등 지극히 한정된 장소를 오가면서 거의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는 주제에 그럴싸한 구실을 구질구질 늘어놓는 소설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엇비슷한 생활에서 엇비슷한 작품이 태어나고, 엇비슷한 가치 판단에 의해 엇비슷한 평가가 가해지고, 마침내 독자의 취향마저 엇비슷해진다. 결국 그런 취향의 독자들만 남고 나머지 독자들은 진저리를 치고 소설에서 멀어져가도 좋은 것인가.”(소설가의 각오 中)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는 통렬하다. 그리고 현실을 엄중히 비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에 얼굴을 붉히게 된다. 그렇기에 <소설가의 각오>는 유명작가의 산문집을 넘어서 문학개론보다 더 중요한 한권의 책으로 자리 잡았다.

“소설가는 오직 소설로 대답한다”며 말할 수 있는 소설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비판할 줄 아는 마루야마 겐지의 대담함은 문학을 걱정하는 사람들과 문학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쓰디쓴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고 있다.

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문학동네,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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