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가 우거진 앙가라강변의 산책로최성수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앙가라는 물 표면으로 나와 한숨을 지으며 바이칼빛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갈매기 한 마리가 큰 소리로 울며 날아왔다.
“갈매기야, 너는 어디서 날아왔니? 나도 너처럼 세상으로 날아가고 싶구나.”
앙가라가 한숨을 쉬며 갈매기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갈매기가 끼룩끼룩 소리를 내더니 앙가라에게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앙가라 아가씨. 물 속에서 사시기에 너무 힘드시지요. 아가씨를 위해 제가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그래, 고마워. 어서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렴.”
앙가라의 재촉에 갈매기는 날개를 퍼덕이며 어깨에 앉아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갈매기는 날마다 날아와 앙가라의 어깨에 앉아서 자신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본 온갖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하루는 갈매기가 앙가라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가씨가 살고 있는 호수를 따라 며칠을 날아가면 큰 강이 있는 마을이 나오지요. 그 강 가에는 수많은 꽃들이 피어 여름을 아름답게 빛나게 한답니다. 밤이면 달빛 아래 그 꽃들은 초롱불처럼 빛나지요. 낮에는 온갖 색깔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꽃들이 밤이면 호롱불로 일제히 피어나는 것이랍니다.
그 강가에 멋진 수염에 건장한 용사 한 명이 살고 있답니다. 예니세이라는 그 용사는 지금껏 수많은 싸움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지요. 구척 장신에 깎아놓은 듯한 얼굴, 중후한 인품에 그윽한 목소리, 세상의 모든 아가씨들은 예니세이를 흠모한답니다.”
갈매기의 말을 들은 앙가라는 예니세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 그것은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예니세이에 대한 그리움이면서 동시에 갇혀 살아야 하는 운명에 맞닥뜨린 존재의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했다.
‘아, 한번이라도 세상으로 나가 예니세이를 만나 볼 수 있다면….’
앙가라는 그런 소망으로 밤이면 가슴을 태우곤 했다. 그 그리움이 쌓이고 쌓인 어느 날, 앙가라는 바이칼이 잠든 틈을 타 호수를 빠져나갔다. 예니세이와 세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앙가라의 발걸음은 나는 듯이 빨랐다.
한밤 중, 잠결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퍼뜩 일어난 바이칼은 앙가라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바이칼은 바람처럼 날아 앙가라의 뒤를 쫓았다. 멀리서 앙가라가 마구 강을 거슬러 달음질치는 것이 달빛 아래 아득하게 보였다.
더 화가 난 바이칼은 자기 곁에 있던 커다란 바위를 번쩍 들어 앙가라의 앞길을 향해 집어던졌다. 바위는 거대한 굉음을 내며 날아가 앙가라를 덮쳐 버렸다. 세상을 향해 달려가던 앙가라의 발길은 아버지 바이칼이 내 던진 바위 아래 무참하게 깔려 멈추고, 앙가라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지금도 앙가라강의 입구에는 그때 바이칼이 던진 샤먼 바위가 그대로 남아 슬픈 부녀간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