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들은 매일 죽고 있어요"

[인터뷰]<인권>이 만난 사람 - 조성애 수녀

등록 2004.09.02 09:34수정 2004.09.0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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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오전 서울 용산구에 있는 샬트르성바오로 수녀원 실내는 청량했다. 20여 명을 살해한 용의자가 검거된 것을 계기로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양론이 날씨 만큼이나 뜨겁게 일고 있는 바깥 세상과 달리 정원에는 매미소리만 들렸다. 조성애(잔 바르꼬) 수녀는 조용히 작은 책자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한 수도회에서 나온 잡지였다.


"우리 형제의 글이 실렸어요. 가족들에게 보내줘야겠는데 이름 뒤에 사형수라고 적힌 것을 화이트로 지우려고요.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 아버지가 사형수라는 걸 숨겨야 하거든요. 나중에 좀더 큰 다음에 알려줘야겠죠."

매미소리마저 일순 잔잔하게 잦아드는 듯했다. 일흔넷의 노수녀의 표정은 평화롭기만 하다. 그동안 사형제도에 대한 세상의 바람이 이리저리 쏠리며 불어왔지만 한번의 흔들림도 없이 살아온 사람답다.

"사형수 형제들을 만난 지도 벌써 15년이 되었네요. 편지쓰기야 물론 그전부터 했지만요."

현재 전국의 교도소에는 모두 약 58명의 사형수가 흩어져 있다. '사형수의 어머니'라고 알려진 그가 하는 일은 사형수와의 만남뿐만이 아니다. 장기수들도 일일이 방문하여 상담활동을 한다. 또 밖에 있는 그들의 가족까지 챙기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일이다.

"그저께 한 형제가 세례식을 마쳤어요. 가족들한테 연락을 하고 싶어도 참 망설이게 돼요. 마음 아파할 것 같아서…. 결국 어젯밤에 전화했지요. 식구들이 울면서 그러대요. 수녀님, 잘 되어 가는 것 같더니 이번에 이런 사건이 생겼으니… 하면서요. 아들이나 배우자가 사형수인 경우에는 집안 전체가 사형수가 되어서 지내고 있어요."


15년간 이어진 생명의 기도

a 조성애 수녀

조성애 수녀 ⓒ 인권위 김윤섭

사형제도 폐지운동에 앞장서왔고 그 누구보다 사형수에 대해 깊은 연민과 사랑을 가지고 살아온 그이지만 이번처럼 강력 살인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는다.


"저는 이 일을 하면서 누구를 보는가 하면 저 자신을 봐요. 저희 수도자들은 매일 기도하고 반성하면서 살고 있잖아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묵상기도를 하면서 나는 잘못하는 게 없나 생각합니다. 만약 저 사형수들도 나와 같은 교육을 받았으면 저들은 나보다 낫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조 수녀는 사형수들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항상 자신을 그들의 높이로 맞추기를 잊지 않았다. 불완전한 인간으로 그들과 자신을 함께 놓고 뉘우치고 반성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공부를 하면서 그들 옆에 앉는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모르고 어떤 것에 욕심이 가득해서 그들은 그런 행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너는 그랬으니 꼭 죽어야 한다, 그런다고 무슨 결과가 나오나요? 사형을 시켜 범죄가 없어진다면 또 모르지요. 원인을 찾아서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우리가 어떤 모양으로든지 노력해야 합니다."

조 수녀는 지금도 매주 정기적으로 사형수들을 만나러 구치소로 간다. 만나서 못다 한 얘기는 편지로 메운다.

"많이 쓸 때는 하루에 열 통도 넘게 쓰지요. 오늘은 아직 세 통이 밀려 있네요. 형제들을 만나 보면 다들 잘 살아요. 그들의 기도나 말을 통해서 나도 다짐을 합니다. 그 형제들을 만나면 저는 너무 행복해요. 이 나이에도 결점 투성이인 제가 종교를 통해 그들과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1988년에 처음으로 사형수와 대면했다. 마음이야 그 오래 전부터 상담활동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젊었을 적에는 당시 할머니 수녀님들이 ‘아직은 안 된다’고 하셨단다. 그 대신 다른 활동을 하면서 편지상담은 할 수 있었다. 그렇게 20년을 보내고 그가 예순이 넘은 어느 날 허락이 떨어졌다.

"그들은 매일 죽고 있어요"

a 빵 봉지를 가늘게 잘라 손톱만한 크기로 만든 짚신과 모자 모양의 장신구

빵 봉지를 가늘게 잘라 손톱만한 크기로 만든 짚신과 모자 모양의 장신구 ⓒ 인권위 김윤섭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국의 구치소에 있는 사형수들을 만나러 가는 그의 발길은 새벽이나 늦은 밤에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젠 우리 천주교 안의 교정 사목국이 전국적으로 자리가 잡혀서 전만큼은 많이 다니지 않습니다. 제가 철도회원인데 보너스도 나오고 그래요. 새벽에 나가서 첫차 타고 대구, 부산, 마산을 다녔지요. 요즘은 서울하고 청주와 공주에 가요. 대구에 있던 사형수는 죽어서 이젠 안 가지요. 교도소에서 면회를 늦게 허락해 주면 표를 바꿔서 입석으로 올라오고 그랬지요."

이 일을 하면서 공부도 많이 했다. 대학원에 들어가 교정교육 관련 석사논문도 쓰고 심리상담 공부도 했다. 사형제도의 허구를 이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나온다.

"저는 이제 이런 결론을 내렸어요. 머리와 마음이 가까워져야겠다. 내가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느냐? 마음을, 마음의 공부를 하고 싶다. 이제는 마음과 머리가 타협을 하게 하자. 우리나라에서도 그동안 사형폐지 운동을 해왔지만 뭐가 달라졌나요? 그래서 제가 다짐했지요. 이론은 이젠 안 돼. 마음을 가르치고, 마음을 배우고 마음을 알게 되면 길이 열리고, 길을 따라가다 보면 빛이 있고, 빛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 귀중한 생명이 있다."

그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렇게 덧붙인다.

"올해 들어서 이 말이 내 것으로 다가오네요."

그는 1997년 말에 있었던 사형집행을 가장 아프게 가슴에 담고 있다. 현재로서는 그때가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집행된 사형인데, 5명이 한꺼번에 사형되었다.

"전날 갑자기 연락을 받고 새벽 3시 기차를 타고 갔지요. 휘장이 걷히자 한명씩 한명씩 죽었는데… 우리 그렇게 죽을 수 있을까요? 못 그래요. 그 형제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잘 죽기 위해서 내가 오늘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얼마 전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특별법안을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이는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낭보다. 이번에도 역시 조 수녀는 기대가 아주 크다.

"너무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죽을 죄를 지은 사형수들이지만 그들도 인간입니다. 인간은 교육적인 동물입니다. 그들에게 가르침과 반성의 기회를 주는 것이 그냥 목숨을 빼앗는 일보다 얼마나 더 좋은 일이겠어요. 우리가 같은 일을 해도 ‘보다 더’ 좋은 것이 있잖아요?"

요즘 그의 건강이 전 같지 않다. 몸이 아픈 것은 겁나지 않는다. 다만 형제들을 못 만나게 될까봐 걱정이 크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형제들 못 봐도 괜찮으니, 편지만 쓰게 해달라고. 제가 끝까지 이 일을 하다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요."

그의 마음에는 항상 사형수 형제들이 함께 있다.

"밖의 모든 것을 끊고 들어가 기도하는 피정기간에도 형제들은 안 잊어버리지요. 장엄축복이나 그런 좋은 자리가 있으면 저는 언제나 제 앞에 그들을 앉혀 놓아요. 마음으로 말이지요. 특히 어려운 형제는 언제나 생각이 나요. 매일 마음에 와 있는 거예요. 오늘은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지 않을까, 오늘은 머리를 숙이고 고통을 당하고 있지 않을까, 그 형제들은 매일 죽고 있어요.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그들을 용서해 주세요"

a 조성애 수녀는 더 나이가 들고 건강이 나빠지더라도 편지만은 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조성애 수녀는 더 나이가 들고 건강이 나빠지더라도 편지만은 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 인권위 김윤섭

그가 잠시 자리를 뜨더니 작은 상자를 가져와 조심스럽게 열어 보인다. 비닐로 만든,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짚신모양 장신구, 십자가, 나비목걸이, 그리고 스케치 그림….

"모두 형제들이 만든 거예요. 이런 거 만들면 징벌을 받으니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려도 안 들어요. 사형수한테는 아무 일도 시키지 않아요. 미결수이기 때문이지요. 사형집행을 받는 순간 기결수로 넘어가거든요."

사람을 죽인 한 인간이 자신을 만나러 오는 노 수녀를 생각하며 만들었을 선물이다. 조 수녀는 그 선물을 볼 적마다 인간은 반드시 뉘우치고 새롭게 일어설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들은 사람을 죽였지만 제정신이 아니었던 겁니다. 오늘은 제정신으로 돌아와 피해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용서해 주세요, 정말로…."

생명에 대한 사랑과 불완전한 존재에 대한 용서를 노 수녀는 무릎 꿇고 빌고 있었다. 어느새 나도 그의 옆에서 함께 무릎을 꿇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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