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그 '성공'과 '실패'의 뒷이야기

[서평] 오연호 지음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

등록 2004.09.02 17:16수정 2004.11.0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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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누가 뭐래도 일단 '성공'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지지자와 반대자들에게 이미 하나의 '신화'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그 '성공'과 '신화'의 내역을 일일이 재론할 필요는 없다 싶습니다.


시민기자 3만5천여 명이 저마다 겪어서 너무나 생생한 현재 진행형의 삶의 이야기일 테고 오연호 대표가 쓴 책에서도 지난 4년의 행적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돈해 놓고 있으니까요.

알다시피 모든 성공에는 실패의 흔적들이 따라 나옵니다. 하지만 그런 실패는 대부분 성공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을 이야기이지요. 그러니까 성공한 다음에야 돌아보고 재론하는 실패입니다.

성공의 영예라는 빛에 쏘여서 각색될 수밖에 없는 실패인 겝니다. 박물관의 유물처럼 이미 성공했기에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실패의 무용담으로서 고색창연하게 전시되는 것이지요. 성공의 포대기 안에 잘 쌓여있는 '예쁜 실패'라고 할까요.

요즘 MBC 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영웅시대'는 일제 식민지와 개발 독재 시대에 사업을 일으킨 기업 총수가 주인공인데 젊은 날의 크고 작은 실패들을 보여줍니다. 그때마다 주인공은 딛고 일어나서 언제나 감동을 주지요.

누구는 그 실패 앞에서 주저앉는데 주인공은 다시 일어나 성공합니다. 비결은 항상 신념과 끈기와 성실에 있다는 식이지요. 불굴의 강철 인간이 만들어내는 7전8기의 극적인 성공 이야기입니다.


이렇듯 성공의 부록처럼 등장하는 실패의 흔적은 훈장처럼 느껴집니다. 실패를 맛보는 당시에 이미 성공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당당하고 빛나고 멋있는 실패기 때문이지요. 한마디로 실패가 아니지요. 실패를 가장한 성공입니다. 따라서 성공에 이르는 실패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못하기 쉽습니다.

실패의 교훈은 좌절의 공포를 상기하고 상처의 고통을 웅변하는 것입니다. 희미하나 죽기살기로 잡은 실낱같은 마지막 끈이 무엇이었으며 얼마나 망설이며 붙잡았는지를 되살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실패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지요.


이 점에서 오연호 대표의 책은 약간 달랐습니다.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는 한 마디로 성공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뒤따라 나오는 실패의 이야기는 거의 보이지 않더군요. 그렇다고 시종일관 잘난 척 하지도 않습니다. 마치 새로운 시민운동의 성공적인 개척사를 읽는 기분이었지요.

게다가 자긍이 자만으로 넘어가지 않고, 희망이 허풍과 섞이지 않고, 성찰이 거룩해지지 않고 있는 바로 그 점이 오연호 대표의 성공 이야기가 갖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이내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거울 속의 나는 한 손에 빈 밥그릇을, 또 한 손에는 수저를 들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서 있는 곳은 화장실 속의 거울이었다. 내가 왜 빈 밥그릇을 들고 화장실에 와 있지? … '아, 과로사라는 것이 바로 이렇게 찾아오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오연호 대표 자신의 '과로해서 황천길 갈 뻔한 사연'이 짤막한 단상으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건강의 위기는 성공을 무위로 돌리는 또는 성공을 대가로 치르는 가장 큰 실패지요. 책에는 그렇게 몸으로 뛰고 몸으로 때워서 쌓아올린 성공의 벽돌들 사이에 개인의 어떤 실패(희생)가 있었는지 살짝 귀띔해주고 끝납니다.

"<오마이뉴스> 3만번째 뉴스 게릴라로 등록한 지 24일만이다. … 내 원고료로 아내의 결혼기념 선물을 살까 하고 원고료(모두 25여건의 기사를 쓰고) 청구를 했는데 드디어 첫 원고료가 나온 것이다. 단 돈 몇 만원!"

장생주 기자의 첫 원고료 받던 날의 풍경도 마찬가지입니다. 24일간 기사를 25여 건 썼으면 하루에 기사를 하나씩 쓴 셈인데 한달 원고료가 단 돈 몇 만원입니다. 그런데 장생주 기자는 글에서 무척 뿌듯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지요. 이 사연에도 틀림없이 기자 개인의 어떤 실패(희생)가 깔려 있을 겝니다. 단지 말하지 않을 뿐이고, 실패를 누르는 더 큰 보람을 찾았기에 성공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긍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원고료가 5만원이 넘던 날, 곧바로 원고료를 신청했다. 며칠 뒤에 통장에 입금된 것을 찾아서 직장동료 세 명과 함께 삼겹살과 소주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이상훈 기자의 '원고료가 5만원이 넘던 날' 또한 주요 언론사 기자들이 갖고 다니며 쓰는 법인카드의 사용 한도액에 비하자면 역시 개인의 실패(희생)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맛있게 먹었다'는 한 마디에 그 어느 언론사 기자보다 더 성공한 이상훈 기자의 이야기가 담겨있지요. 시민기자로서 '원고료가 5만원이 넘던 날'의 성공은 오늘의 <오마이뉴스>를 만든 무수한 시민기자들의 무수한 성공들을 상징하는 하나의 표본입니다.

결론을 말하지요. 독자들께서 오연호 대표의 책을 읽을 때 한번은 "핵심 컨셉이 세계 유일인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는 <오마이뉴스>의 성공 비결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 보시고, 또 한번은 표현되고 있지 않으나 책 어디에든 내재되어 있는 성공 밑바닥의 무수한 실패 이야기들을 길어 올리기 위해서 보시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열 번 실패하면 한번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열 번 실패가 발효되어 성공으로 변하는 것이라면 독자는 이 책에서 그 열 번 실패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캐내야 책 본전을 뽑는 것이니까요.

<오마이뉴스>가 자랑하는, 책에서 '네티즌혁명'으로 '시민참여저널리즘'으로 '젊은 세대의 참여 정신'으로 일컫고 있는 적잖은 '신화'들 역시 흥미롭게 보시면서도 그 너머에 널려있는 척박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현실까지 함께 호흡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네티즌에 의해 순식간에 거액이 모금되는 가슴 벅찬 '신화'들은 자판기처럼 누른다고 언제나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요체는 도대체가 신화가 되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현실에 두 발을 딛고 그 너머에서 신화를 끄집어와 물길을 댈 수 있는 상상력과 절실함이니까요.

오연호 대표의 말대로 <오마이뉴스>는 이제 겨우 첫 발 디딘 것이고, 보수 대 진보의 언론 지형이 8 대 2에서 고작 7 대 3으로 막 이동한 것에 불과할 수 있지만, 한발 떨어져서 <오마이뉴스>를 지켜보는 저 같은 사람 눈에는 여전히 <오마이뉴스>의 '성공'과 '신화'가 앞서는 이미지라서, 독자들은 책을 통해서는 그 '성공' 밑바닥의 실패들을 맛보고 '신화' 너머의 현실들에 당도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더 좋겠다 싶어서 꺼낸 이야기입니다.

<오마이뉴스> 4년, 그 '성공'과 '신화'는 앞으로도 길이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동시에 또다른 성공들과 신화들로 대체되고 풍부해져야 하겠지요. 그러자면 <오마이뉴스>의 4년을 몸소 살아냈던 선배들 각자의 '실패'와 '현실'의 이야기 또한 후배들에게 대물림해서 전해질 역사 교과서로 남아 있어야 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오마이뉴스> 10년을 기념할 때는 <오마이뉴스>의 '성공' 밑바닥을 배운 후배들이, '신화' 너머 현실에서 출발한 세대들이 힘찬 새 역사를 쓰고 있을 겝니다.

사족입니다만, 오연호 대표의 눈물 섞인 통성 기도를 엿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남습니다. 책 말미에 잠깐 오연호 대표의 성경 읽는 장면과 기도하는 장면이 언급되어 있던데, <오마이뉴스>의 지난 4년에 걸쳐있는 '실패'와 '현실'들 앞에서 어떤 기도를 올렸을지, 1시간 남짓 대화를 나눠본 오연호 대표를 떠올려보면, 가냘픈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 숙여 두 손을 움켜잡고 '뜨거운 기도'를 꽤나 하지 않았을까 싶어서입니다. 누구 그 기도 들어보신 분 없으신가요?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

오연호 지음,
휴머니스트,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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