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도 야무진 콩의 원조 '돌콩'

내게로 다가온 꽃들(78)

등록 2004.09.04 14:36수정 2004.09.0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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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들판에 피는 꽃 중에는 콩과 식물들이 참 많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돌콩 말고도 해녀콩, 여우콩, 만년콩, 새콩, 갯완두, 여우팥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거기에다 이름에 '돌'자가 붙은 것도 많습니다. 돌가시나무, 돌꽃, 돌단풍, 돌동부, 돌마타리, 돌매화나무, 돌바늘꽃, 돌배나무, 돌뽕나무, 돌양지꽃, 돌외, 돌잔고사리 등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이름에 '돌'다가 들어가면 일반적인 것에 비해 작거나 야생의 상태에서 자라는 것을 의미하며 '돌'자가 들어가는 것은 그 종의 원조격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돌콩은 지금 우리가 먹는 콩의 원조인 셈입니다.


지역마다 유명한 음식들이 있습니다. 식당이 밀집된 곳에 가보면 서로 '원조'라고 간판을 걸어 놓아서 정말 누가 '원조'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조할머니집'이 있는가 하면 '여기가 진짜 원조 할머니집'이라는 간판도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원조는 화려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북적거립니다. 맛이 살아있어서겠지요.

김민수
전래 동요 <깨끔깨끔>이라는 재미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서울갔다 오시더니
갑사댕기랑 꽃신 하나 사왔네
꽃신은 나주고 댕기는 시집갈 언니 준다네
올콩돌콩 깨끔깨끔 올콩돌콩 깨끔깨끔


'돌콩만한 녀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집은 작아도 야무진 아이들에게 하던 말입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돌콩만한 녀석이 제법 야무지네"하면 어깨가 으쓱거리던 어린 시절도 있었습니다.

잘 익은 콩은 얼마나 야무진지 모릅니다. 그 작은 콩이 야무지게 여물면 딱딱한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그 작은 콩을 깨뜨릴 수 없습니다. 지난 해 가을이 끝나갈 무렵 잘 익은 여우콩이 얼머나 딱딱한지 알아 보려고 깨물다가 이를 다칠 뻔했으니 돌콩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김민수
고기나 생선회를 먹을 때 주로 쌈으로 먹는 채소들이 있습니다.
상추나 배추, 치커리, 청경채 등이야 쌈밥집에 가도 늘 나오는 것이니까 새삼스럽지 않습니다만 제주에 와 보니 생선회를 먹을 때는 꼭 콩잎과 막된장이 따라나옵니다.

"콩잎도 날로 먹어요?"
"그럼요. 회 먹을 때 콩잎 없으면 맛이 안 나죠."


목덜미로 넘어갈 때 조금 꺼끌꺼끌하고 질긴 것 같아 처음에는 그저 그랬는데 요즘은 회를 먹을 때는 꼭 콩잎을 챙깁니다. "역시 회는 콩잎에 싸먹어야 제 맛이야!" 이렇게 감탄을 하면서 말입니다.

돌콩은 식용이 가능하지만 아주 작아서 요즘에는 식용으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한방에서 거담제로 사용합니다. 야생초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연한 잎을 따서 생식하기도 합니다. 연한 잎은 날로 된장을 찍어 먹어도 맛있더군요. 콩의 원조니 좀 작아서 번거롭긴 하지만 그 잎의 맛도 다르지 않습니다.

김민수
제주에는 바람이 많습니다. 특히 가을에는 다른 계절보다 바람이 더 많이 부는 것 같습니다. 가을 꽃들은 키도 크고, 꽃도 주렁주렁 많이 달아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이는 것이 좋은지 가을 바람을 즐깁니다. 바람도 잠에서 덜 깨어났는지 잠잠한 이른 새벽에는 괜찮지만 이내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면 흔들리는 꽃을 쯕으려고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작은 꽃은 때로는 한참을 씨름하다 돌아 와야 합니다. 지난 해 신양리 섭지코지에서 돌콩을 만났습니다. 가을 바람에 바닷바람까지 겹치니 찍고는 싶은데 여간 흔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한참 공을 들여 찍어왔더니 쓸 만한 사진이 하나도 없습니다.

"와, 돌콩, 그거 제법이 아닌데. 모델료 안 준다고 쉽게 안 찍혀 주네."

무엇이든지 의지하며 하늘로 향하는 돌콩, 그 작은 몸집이 참으로 야무집니다. 작아도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참으로 소중한 우리 들꽃이요, 우리가 먹는 콩의 원조입니다.

김민수
작은 불꽃 하나가 큰불을 일으킵니다. 그 작은 불꽃들이 하나 둘 모여 돌덩이도 녹여 내고 쇠도 녹여 냅니다. 그러니 작은 것 하나도 허투로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상은 큰 것만 향해 가고 있습니다. 담론도 '거대담론'이 아니면 안 되고, 기업도 대기업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고, 가게도 구멍가게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시대에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외침은 공허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다고 얕보지 마라.
내 안에도 천지의 모든 기운이 들어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녀린 줄기라고 안타까워 하지도 말아라.
한 번 잡으면 내 몸이 끊어지기까지 놓지 않는다.
너희는 언제 이렇게 목숨걸고 무언가를 잡아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단단하게 익어본 적이 있는가?'

돌콩이 가을 바람에 살랑거리며 이렇게 말하는 듯하니 내 마음을 담아 돌콩에게 화답을 합니다.

'그래, 작다고 얕보지 않고, 어떤 시련도 넉넉히 이겨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게. 나도 너처럼 한 번 잡으면 내 몸이 바스러져도 놓지 않아야 할 만큼 소중한 것들을 붙잡고 살아갈게. 그래서 비록 큰 삶이 아니더라도 야무진 삶을 살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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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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