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배호 팬은 영원한 배호 팬

배호 노래를 사랑하는 열성팬들의 배호 부활 운동이 힘차다

등록 2004.09.05 20:22수정 2004.09.0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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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에 요절한 가수 배호가 다시 태어나고 있다. 1960년대 후반, 최저음을 달리다가 갑자기 최고음까지 솟구쳐오르는 호소력 짙은 노래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가수 배호.

한때 많은 전통가요 애호가들이 모창 테이프에 속아서 배호의 노래를 들어야 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배호 외삼촌이자 배호의 가요 스승인 '두메산골' 작곡가 김광빈옹, 배호 유족 대표인 배호 의제 정용호씨와 배호 팬클럽인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이하 '배기모')' 회원들의 배호 부활 운동을 통해서 이제는 진짜와 가짜임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게 됐다.

a 배호 독집 표지

배호 독집 표지

지난 8월 6일에는 배호 노래를 사랑하는 전국의 배기모 회원 100여 명이 강릉 주문진 해수욕장으로 피서 아닌 피서를 떠났다. 제6회 주문진 오징어 축제의 한 행사로 열린 제1회 강릉 배호 파도 가요제 참석을 위해서였다.

주문진은 아름답게 파도 치는 동해의 암반 위에 파도 노래비가 서 있는 곳. 환경 기금 조성을 위해 마련된 돌저금통에 500원 동전을 던져넣으면 갈매기가 춤추며 날아다니는 해안에 배호의 '파도'가 애절하게 울려퍼져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추억을 선사해 준다.


이 날 가요제는 배호 노래가 아니더라도 참가가 가능했는데, '황토십리길'을 부른 추석민씨가 '배호상'을 수상했다.

가수가 되기 위해 배호 모창으로 실력을 쌓아 온 데다 배호 노래를 종아해서 예명도 배일호로 지었다는 '신토불이'의 가수 배일호씨가 배호의 '파도'를 열창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래밭을 가득 메운 관람객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한 회원이 말했다.

"이보다 더 좋은 피서가 어디 있겠습니까."

배기모 회원들의 열성은 방송가에도 알려져, 지난 8월 26일에는 KBS '아침마당'(사회 손범수, 이금희)에 유형재 배기모 중앙회장과 정용호 배호 의제, 가수 배일호씨, 작곡가 이호섭씨 등이 초대받아 가수 배호의 노래를 왜 사랑하는지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추석민씨와 여자 배호로 소문난 조영순씨는 배호 노래를 불렀고, 호랑이해에 호랑이 그림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종철 한국화가는 여러 달에 걸쳐 완성한 배호 초상화를 선보이기도 했다.

오는 11월 7일은 배호 33주기. 배기모는 거기에 맞춰 배호의 참모습을 그려내는 배호 평전 출간도 준비하는가 하면, 배호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배호 유품 전시를 갖춘 배호 라이브 카페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강릉 배호 파도 가요제, KBS 아침마당 출연, 배호 라이브 카페 설립, 배호 평전 출간, 배호 일대기 영화 제작, 배호 기념관 건립 등 배호 부활 운동에 힘을 다할 것입니다."


지난달 28일, 새로 단장한 경주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 공원에 다녀온 유형재 배기모 중앙회장(경상대 경영대 겸임교수)의 의지는 힘차다.

a 주변 환경이 깨끗이 조성된 경주의 '마지막 잎새'(정귀문 작사, 배상태 작곡, 배호 노래) 노래비

주변 환경이 깨끗이 조성된 경주의 '마지막 잎새'(정귀문 작사, 배상태 작곡, 배호 노래) 노래비 ⓒ 배기모

현재 배호 묘지에 세워져 있는 '두메산골' 노래비,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 세워져 있는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 주문진에 세워져 있는 '파도' 노래비, 경주에 세워져 있는 '마지막 잎새' 노래비 외에도, 서울에 '안개낀 장충단 공원' 노래비, 영월에 '영월애가' 노래비, 인천에 '비내리는 인천항부두' 노래비를 건립하기 위하여 전국의 회원들은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 2002년 KBS '가요무대'가 머지않아 맞이할 방송 900회 및 17주년을 기념해 시청자들의 인터넷 기표(記票)를 이용, '한국인의 애창가요' 선정 작업을 벌인 적이 있다. 결과는 단연, '배호의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총 2716만 4329표 가운데 '돌아가는 삼각지'를 비롯한 배호의 노래가 투표 후보곡 300곡 가운데 1, 2, 3위와 9, 10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물론 '가요무대'를 보는 시청자가 좋아하는 노래 가운데 선정한 것이어서 소위 '요즘 가수'의 노래는 거의 배제된 셈이지만, 그렇더라도 총 투표수 가운데 36.48%에 해당하는 991만 81표를 차지했으니, 배호의 노래가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1981년 'MBC 창사 20주년 기념 한국가요 베스트 20'에서도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가 '가요계 기여도' 1위, 배호가 '좋아하는 가수' 1위에 올랐으며, 1990년 MBC 라디오의 '인기가수 여론조사' '목소리 부문'에서도 배호가 1위에 오른 바 있는데, 21세기 들어서도 여전히 1위의 인기를 고수한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훌륭한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고 박시춘 선생 등 저명 가요작가나 음악평론가들로부터 "10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가수"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대한민국 가요사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있는 불멸의 가수 배호.

한때 떴다가 사라져 버리거나 눈요기 무대로 인기를 끌어가고 있는 젊은 가수가 많은 요즘의 가요계 현실에서, 1만여 배기모 회원들의 배호 부활 운동은 참된 가수 정신을 찾아내고 가요계의 수준을 높이는 데 한몫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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