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의원 "당 문제 외면않고 뚜벅뚜벅 나가겠다"

홈피에 장문의 글 올려... 수구 VS 민주개혁 당내 노선투쟁 선언

등록 2004.09.05 21:36수정 2004.09.06 10:00
0
원고료로 응원
30일 전남 구례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에서 이재오 의원(가운데)과 김문수 의원(왼쪽)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30일 전남 구례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에서 이재오 의원(가운데)과 김문수 의원(왼쪽)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난 주 연찬회 후 김문수 의원과 달리 침묵을 지켜온 이재오 의원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이재오 의원은 5일 자신의 홈페이지(www.leejo.net)를 통해 과거사와 당 정체성과 관련해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는 박근혜 대표와 대립각을 분명히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당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외면하지 말고 뚜벅뚜벅 나아가기로 했다"며 당 브레인인 박세일 여의도연구소 소장이 제출한 문건과 박근혜 대표의 연찬회 발언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박근혜 대표와 대립각 세워

이 의원은 우선 친일·독재 청산과 관련, 당내 흐름을 '싸안고 덮고 가자'는 수구파와 '털 것은 털고 가자'는 민주개혁파로 노선이 나뉜다고 전제한 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당의 정체성이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사과 없이는 자기 보호와 변명이 될 뿐"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 의원은 연찬회 당시 박세일 소장일이 '나라 선진화와 당의 진로' '올바른 역사관 정립을 위한 소고'라는 두 문건을 통해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좌파 반체제운동", "반민주·반민족·반시장"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 의원은 "자의적인 역사관으로 87년 6월항쟁을 모욕했다"며 "선진화를 이루자는 전당적 합의를 이용해 교묘하게 과거사를 은폐하고 표적을 바꿔치기하고 있는데 대하여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또한 "산업화와 민주화는 함께 가는 것이지 대립적이지 않았다"며 "'선 산업화 후 민주화론'을 통해 유신독재 과오를 은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또 "'역사청산론’과 ‘발전적 계승론’을 대립시켜 과거사를 합리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 지도부의 "민생이 시급한데 웬 역사 문제냐"라는 논리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이 진정 경제문제를 생각한다면 과거사 문제를 터는 데 흔쾌하게 동의하고 이의를 달지 말아야 한다"며 "그럴 때만이 이슈의 전도현상을 막고 과거사에 발목잡히지 않고 당 집행부가 현안 민생문제에 전념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당 정체성과 관련해 이 의원은 "한나라당의 뿌리는 3공-유신-5공의 반민주적 군사쿠데타가 아니"라고 못박은 뒤 "6월 민주항쟁과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 5공청산을 거친 신한국당 이후를 한나라당의 뿌리로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5.16쿠데타, 유신독재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

박근혜 대표가 자신을 향해 '3공 5공이 당의 뿌리인지 모르고 들어왔느냐'고 언급한 것에 대해 그는 "한나라당의 창당정신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위헌적 발상"이라고 일갈했다.

끝으로 이 의원은 "한나라당은 5.16쿠데타는 물론 유신독재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며 "이 점을 확실히 하지 않는다면 그런 지도자는 국민적으로도 합헌적 지도자가 될 수 없고, 당의 정체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박 대표를 압박했다.

다음은 이재오 의원이 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 전문이다.

<글머리에 I>

연찬회가 끝난지 꼭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내가 한말을 지키기 위해서 그동안 침묵했다.

그러나, 9월 3일 몇몇 동지들과 신행정수도 예정지인 공주?연기와 그 인근 지방을 둘러보고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큰 죄를 짓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렸다.

그들은 정치인들에게 큰 원망을 하고 있었고, 그 원성중에는 한나라당에 대한 원성도 많았다. “국가 중대사에, 또한 지역 주민들의 생사가 달린 문제에 당은 무엇을 계산하고 있는것인가?”이것이 그들의 피맺힌 절규였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당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외면하지 말고 뚜벅뚜벅 나아가기로 했다.
역사와 국민앞에 자랑스런 당이 되기 위하여, 나는 다시 한번 한나라당과 한나라당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생각을 전하고, 겸하하게 비판 받고 싶다.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나는 사과와 반성으로 나의 생각을 접을 용기도 있다.

<글머리에 II>

나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한나라당과, 진정으로 한나라당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글을 바친다.

최근 주장에 온갖 억측과 예단, 더 나아가 정치적 의도로 몰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진정과 본의가 어디에 있는가를 말하고 싶다.
이길이 당을 위하는 충정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동안 나를 사랑했던 동지들에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무엇을 털어야하고, 무엇을 덮을려고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고 싶다.

지금 한나라당에는 분명히 수구보수적 흐름이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그분들의 정체성이라고 아무리 주장하더라도,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사과없이는, 그것이 친일?독재에 대한 자기 보호와 변명이 될뿐이다.

또 하나는 부정적인 과거사를 털고가자는 민주개혁적 흐름이다.
이것을 좀더 선명하게 정리하자면 수구파(위헌세력)와 민주개혁파(합헌세력)로 나눌수 있을 것이다.

지도자에게는 자기의 신념을 관철하는것도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 신념이 잘못되었을 때 그 것을 버릴수 있는 용기가 더 중요하다.

나는 오도된 신념에 대한 철저한 사과와 반성을 지도자의 최상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이 국민들에게 신뢰받고 미래에 대안정당이 되기 위해서 다음 몇가지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

1. 당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1) 연찬회 제출 문건의 문제점들


한나라당은 8월 28-30일간 국회의원 연찬회를 가졌다. 여기에는 ‘나라 선진화와 당의 진로’, ‘올바른 역사관 정립을 위한 소고’라는 두 문건이 제출되었다. 그런데 이를 보면 당의 반성이 진정성이 없음에 놀라고,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시야가 좁음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우선 역사문제에 관해서 당당하게 털어야 할 것을 털지 않고 오히려 싸안고 덮어나가며 출처불명의 상대방의 역사관을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비판하고 있다. 선진화를 이루자는 전당적 합의를 이용해 교묘하게 과거사를 은폐하고 표적을 바꿔치기하고 있는데 대하여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아생연후에 살타’(我生然後 殺他)라는 바둑 격언이 있다.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이 살 길을 마련해야 하는데 남을 공격하기에 급급하다가는 망한다는 것이다.

두 문건을 보면 스스로의 잘못은 ‘제국주의나 냉전체제와 같은’ 요인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너그러이 양해해주고 오히려 ‘원인제공자를 비판해야’ 한다고 엉뚱한 새 표적을 내세우거나, 스스로 예수님의 경지에 올라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나?’라며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에게 ‘살아남은 자의 위선’을 되묻고 있다.

나아가 80년 이후의 민주화운동을 ‘반민주 반시장 세력이 그 중심을 이루어 왔다’고 규정함으로써 87년 6월항쟁을 모욕하고 있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투쟁)에 기초하고 있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다.

두 문건은 우선 일관성이 부족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한나라당의 기치로 내걸었는데 그것이 진정 당의 모습이라면 우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어긋나는 당의 과거 모습부터 반성하고 그 다음에 공이 있다면 겸손하게 공을 인정해주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뼈저리게 느껴야할 것은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20%대의 극히 낮은 지지도밖에 보내지 않으면서 탄핵소추결의가 있었을 때 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또 열린우리당의 총선압승 이후 인기가 1/3로 곤두박질쳐서 20%대로 떨어질 때조차 한나라당의 지지도도 20%대에 머물러 왜 마의 30% 선을 넘지 못하는가 하는 점이다.

반노무현 정서, 반열린우리당 정서로만은 반사이익선을 넘지 못한다. 또 잘하건 못하건 애정을 보내주는 한나라당의 적극 지지자들로만은 총선승리도 집권도 하지 못한다. ‘니나 잘해’라는 말처럼 우리 자신이 잘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우리에게 오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껍질을 깨는 아픔을 스스로 이겨내야 하고, 와신상담 분골쇄신 환골탈태 등 그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노력을 기울여야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두 문건의 의기양양함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신책구천문(神策究天文)이고 묘산궁지리(妙算窮地理)라 할지라도 먼저 해야할 일이 있다. 스스로의 반성이 선행하여야 한다. 스스로의 반성이 선행되지 않은 어떤 결의도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아니 어떻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운위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잔혹하게 짓밟은 과거 헌정유린사에 대한 비판이 없는가? 구체적 언급 없이 지나가는 듯이 한 줄로 ‘많은 문제점이 있었고 지금 돌이켜보면 철저히 반성하고 철저히 비판할 것이 많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족한가?

‘인권(자유주의)침해 사례와 장기집권을 위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훼손한 사례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사과가 포함되어야’ 한다면서 바로 밑에 ‘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아 ‘누가 대한민국의 기본가치를 훼손했는가에 대한 철저한 논의’를 주문하는 것이 진정한 반성이라고 생각하는가?

왜 반성을 반성으로 끝내지 않고 꼭 토를 다는가? 80년대 민주화운동세력들을 반민주 반시장 세력으로 평가한다면 전두환 군사독재세력을 민주세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러고도 반성의 진정성이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는가?

2) 자유민주주의자의 현대사 평가 모델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입장에 서서 현대사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우리 헌법이 명시하고 있듯이 우리 정부의 법통은 상해임시정부의 대한민국이다. 김구 주석이 한탄하였듯이 우리 힘으로 독립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의 발언권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2차세계대전시 얄타회담에서 약속한 대일전 참전을 소련은 독일패망후 3개월 기한의 마지막 날까지 하지 않았으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투하로 일본의 패망이 짙어지자 8월 8일 마지막 날 자정에 임박해서야 전격적으로 참전선언을 하였다.

그러나 사회주의 세력의 팽창은 미국의 저지로 38선에서 저지되었다. 한반도 전역을 통치할 임시정부는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세력을 배제하려는 소련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엔에 의한 자유선거도 38선 이남에서만 치러졌다. 독립운동가출신인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공산주의자 출신도 등용하고 친일파 출신도 등용하여 나라를 건국하였다.

조봉암을 등용하여 농지개혁을 단행했는가 하면 친일파를 용서해주려다 반민특위를 해산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어 미국의 도움으로 6.25남침을 막아냄으로써 자유건국을 지켰다. 그러나 그 공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적 독점체제의 인위적 구축(장기집권)을 위하여 헌법을 유린했다.

직선제 발췌개헌, 4사5입 3선개헌, 3.15부정선거 등이 그것이다. 국민을 짓밟고 헌법을 유린한 행위로 인하여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의 손으로 축출되었다.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형성된 야당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공통의 플랫폼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헌법이 계승을 명시하고 있듯이 4.19민주이념은 인위적 정치독점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6월항쟁으로 우리 헌법에서 사라진 5.16 쿠데타는 4.19 민주이념을 짓밟고, 군사독재라는 총칼로 새로운 정치적 독점을 형성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3선개헌 10월 유신으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규범을 다시금 유린하면서 자신의 인위적 정치독점을 계속했다. 국민과 정치인들의 민주역량을 믿지 않은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다시는 자신과 같은 불행한 군인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자의식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긋지 않음으로써 아름다운 결말을 맺지 못하고 부마항쟁의 와중에 강경진압에 반대하는 측근의 총에 운명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80년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항쟁을 짓밟은 전두환 군사독재도 박정희 대통령의 아류로 비슷한 과정을 거쳤으나 6월항쟁으로 역사의 도도한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6월항쟁으로 우리 모두가 만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타협의 기운 속에 새로운 헌법을 만들었다. 이것이 현행의 민주헌법이다. 그러나 양김의 분열로 민주화세력은 집권에 실패했다. 그 후 김영삼 대통령은 노태우정권과의 타협을 통해서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협력으로 신한국을 창조하겠다는 길을 걸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 구제금융을 계기로 나라를 회복하는 것을 기치로 내걸었다. 이회창 후보의 두 번의 대선 실패 이후 동북아중심국가 건설을 내건 노무현 정권이 탄생했으나 지향점 실종과 민생불안정으로 국민의 많은 실망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제 군사독재세력은 거의 사라졌고 현존의 각 정치세력은 6월항쟁이 낳은 민주헌법이라는 공통의 플랫폼 위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하여 지금 국민의 지지를 얻기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상의 평가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입각한 과거사 평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사관이었던 공자의 춘추사관은 잘못한 것을 덮어두는 것이 아니다. 정당한 평가에 입각하여 잘못한 것은 사과하고 되돌릴 수 있는 것은 되돌려야 한다. 평가자는 오직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들이다. 유신이 잘된 것이라고, 인권탄압이 불가피했다고 강변할 수는 없다. 또 강탈한 정수장학회를 합법적이라고 강변할 수는 없다.

3) 선 산업화 후 민주화론의 독재과오 은폐 비판

한나라당은 아직까지도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산업화 초기에 선 민주화하고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나, 민주화와 산업화를 병진시켜 성공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어긋난 독재와 관치경제를 찬양하는 낯 뜨거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그러한가?

서구의 산업혁명이 봉건제도의 질곡이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일어났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와 동시에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일어난 것이다. 절대권력이 산업화를 이룬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은 권력의 제한과 개인의 자유 신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다.

영국은 마그나카르타나 명예혁명으로 개인의 재산권 및 자유가 확보된 후 산업혁명이 진행되었고, 프랑스도 절대권력이 타파된 후 발전하였으며, 미국 역시 독립혁명으로 영국 왕의 지배체제를 타파하고 민주체제를 확립한 뒤 비약적인 국력신장을 이루었다.

최근의 사례를 들면 대처나 레이건이 민주질서 속에서 과대국가와 인위적 독점의 질곡을 타파하고 자유를 확장한 결과 다시금 비약적인 국력신장을 이룬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혹여 그들이 사심을 품고 민주질서를 훼손하였다면 그들의 강제력 사용도 금방 정당성을 잃어 국가가 혼란상태에 돌입하였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선 산업화 후 민주화 논리는 다음의 점에서도 오류를 범하고 있다.

① 먼저 산업화와 민주화는 함께 가는 것이지 대립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류역사는 산업화세력이 동시에 자유화와 민주화를 추진하면서 발전하였다.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측면의 지적이라면, 공공재 특히 사회간접자본 및 R&D와 관련하여 국가의 역할이 경제발전의 촉진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미 밝혀져있다. 국가의 적극적 역할과 민주화 여부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으며 단지 국가라는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고자하는가 하는 노선선택 지도자선택과 관련된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유독 산업화세력이 민주화의 기수가 되지 못하고 민주주의를 경원시했던 것은 국가지도자가 정치를 무력으로 독점하여 위협을 가했기 때문이다. 국가지도자가 정치를 무력으로 독점한 이득은 장기집권과 치부였다. 독재의 유산인 정수장학회 논란 속에서도 보여지듯이 그 이득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② 다음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는 둘 다 합의된 사회원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산업화과정에서 욕구가 분출할 때 분쟁이 생기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은 법이다. 따라서 개인의 재산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법치하에서 산업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민주적 정권은 강력한 도덕적 바탕위에서 엄정한 법치를 할 수 있다. 물론 인치도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그것은 원시적일 뿐 아니라 자의적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아주 급박한 경우에는 물론 그런 수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로마에서는 위기의 시기에 임시독재관을 두었다. 우리 헌법에서도 비상조치권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독재권의 일신 전유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로마의 카이사르나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은 위임된 임시독재권이 아닌 일신 전속적인 종신독재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는 연찬회에 제출된 문건들이 한나라당의 인식이라면 법치와 독재를 구별하지 않고 있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공존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노동운동도 전태일의 요구처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였다는 점을 기억하자. 이를 억누른 것은 법치가 아니라 독재였다.

③ 세 번째로 산업화와 민주화는 둘 다 선택권의 자유로운 확대 속에서 발전한다는 공통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는 사람들이 더 나은 소비재를 구매하려고 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화폐로 더 나은 상품에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그로 인해 더 나은 상품을 만들어내는 쪽이 더 잘 선택되고 더 부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의 영역에도 일어난다. 어느 당이라는 상품이 더 낫다면 국민들은 다음 선거에서 그 당이라는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투표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존 집권당이라는 상품이 시원찮다면 국민들은 ‘다음 투표에서’ 그 당을 외면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그때를 기다리고 준비해야한다.

4) ‘역사독점’을 통한 독재과오 은폐 비판

산업화 민주화 병진 불가론, 선 산업화 후 민주화론의 입장에서 거듭 과거사를 합리화하더니, 한발 더 나아가 이제는 역사에 대한 태도 일반론에서 또 역사 이론상으로 ‘역사청산론’과 ‘발전적 계승론’을 대립시켜 과거사를 합리화하는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법은 역사독점적인 태도의 발로이다. 여태까지의 역사평가가 잘되었다면 모르되 그렇지않다면 다른 의견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여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 친일과 독재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역사뒤집기 불가’를 3원칙의 하나로 삼아 이를 방어하고(!), 또한 이를 ‘발전적 계승론’이라는 논거로 덮어두는 것은 친일과 독재세력이 집권하고 있을 때의 역사해석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지적이 나올까 두렵다. 그러나 쿠데타 등에 대한 시효정지이론을 원용한다면 친일과 독재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금 터져나오는 것에 대해 우리가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자라면 산업상의 특권이나 권력의 정치적 독점에도 반대하지만 역사의 독점에도 반대하여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자라면 역사의 독점에 반대하고 ‘비판적 방법을 통한 발전’(칼 포퍼)의 입장에 서야한다. 자유민주주의자라면 공자의 춘추필법으로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 그것은 과거의 불가피한 상황에 도덕적 잣대를 대자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상에 대한 결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비판적 방법에 의한 발전의 시각에서 과거사를 보아왔다. 때만 되면 이야기하는 일본에 대한 식민지배행위 사과요구는 지금의 일왕이 책임이 있어서라기보다 그가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말고 평화선린관계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이지 ‘당사자를 여러번 죽이는 결과’를 즐기기 위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일본 수상의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것은 전범들에 대한 참배를 하지 않음으로써 현재의 평화헌법을 지키라는 메시지다. 그러나 이를 어기고 신사참배를 강행하는 고이즈미 정권은 평화헌법을 고치려고 하고 있고 우경화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우리의 우려는 그들을 창피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과거의 잘못된 길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상기시켜주는 우정어린 태도인 것이다.

과거사의 잘못을 불가피성으로 변명하기보다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는 없었을까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야만 발전이 있는 것이다. 지금 노무현 정권하에서 아무리 난국이라고 해도 스스로 대안세력으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취해야 하지, 일부의 무책임한 선동처럼 군이 명령을 불복하라고 하는데 환호할 수는 없다.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으면 하고 바라서는 안된다. 일부의 무책임한 선동이 있으면 나서서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말라고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보기에 한나라당이 제대로 반성을 하고 있다고 보고 다시는 독재의 길을 걷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왜 이런 모습을 당에서 발견할 수 없는가?

비판없이는 발전이 없다. 비판은 자학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비판적 태도를 ‘자학적인 역사관’으로 곧바로 단정하는 단세포적 태도에서 우리부터 벗어나야한다.

오히려 바람직한 당당한 태도라면 ‘덮고 나아가자’는 수구적 역사평가, 그리고 비판적 입장에서 ‘털 것은 털고 나아가자’는 민주개혁적 역사평가를 두고 국민의 선택이라는 시장에 내놓는 것이 옳을 것이다. 역사는 평가를 달리할 수는 있어도 덮을 수는 없다. 지금 한나라당에는 이 두가지 노선이 공존하고 있다.

5) 민생이 시급한데 웬 역사문제냐하는 반론은 잘못된 문제제기이다.

일부에서는 노무현 정권의 과거사정리에 대해 역사문제는 민생이 시급하므로 덮어두자고 한다. 물론 국민들은 정략적 발상이 섞여있는 노무현 정권의 태도를 간파하고 있다. 더욱이 경제활동인구의 중심에 있는 40대에서 노무현 정권의 잘못된 이슈설정에 대한 실망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문제를 큰 이슈로 만든 공범은 바로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이 과거를 떳떳하게 파헤치는데 동의한다면 왜 이것이 큰 이슈로 되는가? 합의에 의해 이미 실무적인 절차로 단순하게 들어갔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자꾸 반대하니까 TV토론도 만들어지고 신문에서도 계속 다루는 것이다. 한손만으로는 손뼉소리를 낼 수 없다.

한나라당이 진정 경제문제를 생각한다면 과거사문제를 터는데 흔쾌하게 동의하고 이의를 달지 말아야 한다. 그럴 때만이 이슈의 전도현상을 막고 과거사에 발목잡히지 않고 당 집행부가 현안 민생문제에 전념할 수 있다.

6) 당의 정체성에 대하여 - 위헌적 발상을 뿌리까지 뽑아내자.

이러한 맥락 위에서 당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보자.

한나라당의 뿌리는 3공-유신-5공의 반 민주적 군사쿠데타가 아니다.
군사독재는 이미 ① 6월민주항쟁으로 ②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으로 또 ③ 5공청산으로 끝이 났다. 신한국당 이후는 군사독재정당이 아니라 그와는 단절된 민주정당이다.

3당합당은 군사독재와 목숨을 걸고 싸웠던 민주화세력이 갑자기 비굴해져서 군사독재에 굴종한 것이 아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군사독재를 스스로 마감하고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평화적으로 만들 것에 동의하였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민주화세력의 정통성과 산업화세력의 테크노크랫이 합친 것이다.

게다가 이회창 후보를 중심으로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합친 한나라당은 김영삼 대통령의 인치 스타일마저 극복하여 민주주의 법치주의의 플랫폼을 당의 정신으로 굳혔다. 이러한 정신은 근대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이 힘을 합쳤다고 당헌상에 표현함으로써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정신에 입각해서 과거사를 보는 시각도 ‘퇴행적 잔재를 남김없이 청산’(당강령 전문)한다고 선언되어있다.

크게 보아 민주화가 당의 뿌리인 것이다.

이를 전제로 볼 때 당내 논의 중에서 3공 5공이 당의 뿌리인지 모르고 들어왔느냐는 언급은 한나라당의 창당정신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이야기이다.

더욱이 그런 이야기야말로 위헌적 발상이다. 4.19 민주이념 계승을 선언하고 있는 헌법 하에 정당활동을 보장받으면서 쿠데타 전통을 계승하는 정당이라니 그 무슨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인가? 한나라당은 5.16쿠데타는 물론 유신독재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 이 점을 확실히 하지 않는다면 그런 지도자는 국민적으로도 합헌적 지도자가 될 수 없고, 또 당적으로도 이 당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

2. 민주개혁세력으로 거듭나 선진화로 나아가야 한다.

1) 왜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하는가?


노무현 정권에 실망한 많은 사람들이 지금 마음줄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선뜻 한나라당에 정을 주지않고 있다. 그것은 도대체 한나라당이 무엇을 하는 정당인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친일을 감추려고 애쓰는데도 놀랐지만 이미 형기를 다 마쳤을 뿐 아니라 독재시절 막걸리 반공법 등 과잉 인권탄압 수사로 오히려 신원(伸寃)을 해주어야 할 판에 친북용공으로 공격하겠다는 수구적 냉전논리에 더 놀라고 있다.

헌법에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되어있는데도 반성은커녕 반헌법적인 5.16쿠데타 10월 유신 5.17쿠데타를 엄호하며 3공 5공을 당의 뿌리로 간주하는데 놀라고 있다.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
정당이라면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운동을 하는 모임이다. 그런데 어떠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는가? 또 그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고자하는 진정성이 어디에 있는가?

2) 지금 한나라당에 진정 필요한 것은 용기이다.

지금 한나라당에 필요한 것은 용기이다.
과거사를 당당히 털지 못하는 용기부족만이 아니다. 미래를 향한 용기도 부족하다.
한나라당은 대선 때 수도이전문제에 대해 실컷 반대하였다. 그런데 총선을 앞두고 금방 찬성으로 돌아섰다.
한나라당은 경제살리기에 대해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글로벌 수준의 기업투명성과 노동유연성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 누구의 반발도 사지 않기 위해서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남을 욕하기에 앞서 자기 기준부터 세우려는 뼈를 깎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용기부족은 혼이 없는 것과 상통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도 누구의 잘못으로 돌리기보다는 우리 스스로의 혼과 용기를 자책하여야 한다. 당원간에 다시금 혼을 불러일으키고 다시금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다시금 당의 미래비전을 가지고 토론의 장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3) 주인의식을 가지고 민주개혁세력의 플랫폼 위에 서서 미래로 나아가자.

당의 정체성에 벗어나는 세력을 의식하고 눈치를 보는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우리 스스로 주인이 되어 민주개혁세력의 중심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친일 ? 독재의 위헌적 전통에 대한 향수’를 버려야 한다. 지원연설하나로 굴종을 요구하는 그런 공사(公私)조차 구별못하는 수준 앞에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기대를 가질 수 있는가?

장기적으로는 유신적 발상을 가진 채 국민을 속일 수는 없다. 오로지 자유민주주의의 플랫폼 위에서서 민주개혁세력이 중심이 되어 당을 바꾸어내는데 주력하자. 이에 성공하면 한나라당을 주저하던 사람들도 용기를 내어 동참할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맞는 실력과 세계적 전망을 가진 선진세력들을 영입하자. 그들이 동참할 때 한나라당은 또다시 민주화세력과 산업화 세력 글로벌 세력이 하나가 된 선진정당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한나라당이 바로 설 때 비로소 우리는 자랑스럽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전통과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고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다.

나는 당이 승리하는 날 까지 사랑하는 당원들과 국민들을 믿고 그들과 함께 거침없이 나갈 것이다.

2004년 9월 5일

북한산 아래에서 국회의원 이재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2. 2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3. 3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4. 4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5. 5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