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목조 교회를 매장으로 꾸며 놓은 공예품 가게 '교활한 여우'의 내부windwand
그리고 넓은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햇빛이 그 공예품들에 반사되어, 스무 평 남짓한 그 내부는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빛을 높은 천정에 고인 깊은 어둠과 윤기 나는 바닥마루의 은은한 나무질감이 부드럽게 흡수하고 있어서 눈이 피로하지 않았다.
도시의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에서 자주 느끼게 되는, 눈을 찌르는 그런 금속성의 매끈하고 차가운 빛과는 달랐다. 오래 들여다보게 되고 자꾸 손이 가게 만드는 그런 편안한 분위기에 휩쓸려 평소에 쇼핑을 즐기지 않는 나도 이것저것 오래도록 만지작거리면서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이러다가 별로 소용도 없는 것을 여행 기념품 삼아 충동구매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얼른 아내와 딸의 손을 잡고 그 ‘교활한 여우’의 집을 빠져나왔다.
이어서 방문한 ‘도둑고양이’의 집은 도예가 수잔의 작업실인데, 그녀가 직접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주로 도예 작품들과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 매장은 ‘여우의 집’보다는 작았지만 작품들의 가격은 훨씬 고가품들이었다.
그 가격에 지레 놀라 대충 둘러만 보았더니, 우리가 들어섰을 때는 친근하게 쳐다보면서 말을 건네던 수잔은 이내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리고 만다.
'그렇구나. 이들 예술가들에게 우리는 관람객이 아니라 고객이구나. 그들도 돈이 없으면 생활이 안 될 터이니, 이렇게 찾아오는 손님들이 단순히 구경만 하고 돌아간다면 힘이 빠지겠구나.'
근대 이후 성립된 자본주의는 예술품마저도 상품으로 만들었고, 예술가들의 창조행위에도 이제는 비싼 가격을 매겨 놓았다. 마치 미다스 왕의 손처럼 부르주아의 손길이 닿은 모든 것들에는 가격표가 매겨지고 말았다. 예술품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어서,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에 담은 창조성은 이내 화폐 가치로 변질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활한 여우'와 '도둑고양이'라는 저 매장과 전시실의 이름은 얼마나 적확한 상호(商號)인가! 그것이 비유가 아니라 진실이었음을 내가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 총연장 105킬로미터에 달하는 ‘파도타기 고속도로’를 달렸다. 도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내륙 쪽으로 깊이 들어와 있어서, 바다는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낼 뿐 잘 보이지 않았다.
목걸이의 구슬처럼 도로가 꿰뚫고 통과하고 있는 작은 마을 몇을 지나, 서쪽 끝에 있는 에그몬트 곶(Cape Egmont)의 등대를 구경하고 나왔다(이번 여행에서 내가 만난 등대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니 등대 이야기는 여기서는 생략하자).
파도타기 하는 젊은이들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