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피티 박물관에서 본 마오리족의 전통적인 방어용 주거지 파(Pa)의 미니어처정철용
그런데 투루투루 모카이는 마오리 말로 '마른 머리들을 걸어놓는 효수대'라는 뜻이라고 한다. 당시 마오리족과 영국군 사이에 벌어졌던 타라나키 토지 전쟁의 격렬함과 끔찍함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것으로 알려진 투루투루 모카이 파를 그냥 지나쳐야만 했다. 하웨라 근교의 한 농장에서 묵고 난 다음날이었던 그날 아침, 우리는 예정된 시간보다 많이 뒤처져 있었다.
평화로운 농장의 아침 풍경과 귀여운 돼지새끼에 마음을 빼앗겨 꾸물거리느라 그날 오전 일정으로 잡아 놓은 투루투루 모카이 파와 타피티 박물관을 모두 다 둘러보기엔 시간이 많이 모자랐던 것이다. 둘 중 어느 한 곳을 선택해야만 했는데, 우리는 타피티 박물관을 선택했다.
타피티 박물관 : 역사는 패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가 투루투루 모카이 파를 제쳐놓고 타피티 박물관(Tawhiti Museum)을 선택한 데에는, 그 전날 밤 농장을 찾지 못해 도움을 청한 우리에게 직접 차를 몰아 농장까지 길 안내를 해 준 시골 아저씨의 추천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우리와 헤어지기 전, 내일 꼭 타피티 박물관에 가보라고 우리에게 신신당부했다.
여기에 '뉴질랜드 최고의 사설박물관'이라 소개하고 있는 안내 책자의 유혹도 쉽게 외면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투루투루 모카이 파를 건너뛰고, 하웨라 시내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타피티 박물관으로 바로 향했다.
겉에서 본 박물관 건물은 고색이 창연했다. 1917년에 건립한 치즈 공장을 개조하여 박물관으로 꾸민 것이니 그럴 만도 했다. 어찌 보면 역사를 품고 있는 박물관 건물로서는 더 없이 잘 어울리는 모습이기도 했지만, 많은 기대를 품고 찾아온 여행객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겉모습이었다.
그 겉모습처럼 먼지가 풀풀 날리고 곰팡이 냄새 가득한 낡은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으리라고 지레 짐작한 우리는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물관의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그러한 첫 인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