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년 된 회화나무에 깃든 전설

충남 홍성군 결성면 읍내리 면사무소 뒤에 있는 회화나무

등록 2004.09.08 16:45수정 2004.09.0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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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주변에 길다란 오색 헝겊이 둘러쳐 있고 나뭇가지에도 걸려 있다. 조금 쉰 듯한 막걸리 냄새가 역력하고 고사를 지낸 뒤 떡과 과일 등을 한지에 싸놓은 것도 눈에 띈다.

"지난밤 어떤 젊은 여인네가 와서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치성을 드렸슈."
"일년이면 수십명이 찾아와 치성을 드리고 고사를 지내유. 이 나무가 원체 용하다고 소문이 났거든유."
"워치게 됐거나 수(효험)을 보니께 찾아오지 그렇치 않으먼 오것슈."


나무그늘에서 쉬고 있던 50-60대의 촌부 5명이 너나없이 모두 한마디씩 했다.

결성 회화나무.

안서순
농어촌 지역 마을마다 이런 바위, 나무 하나 없는 곳이 없지만 충남 홍성군 결성면 읍내리 면사무소 뒤편에 520여 년을 의연하게 서 있는 회화나무는 여느 고목들과는 격을 달리한다.

1425년 결성현감으로 부임한 정 구령이 심었다는 이 나무는 묵은 세월만큼이나 우람한 체형을 자랑한다. 밑둥 둘레가 4미터 정도고 높이는 22미터 정도다. 아직도 성성한 이 나무는 홍성지방에서 가장 수령이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훼나무로 불리기도 하는 이 나무는 영험하기로 소문이 나서 이 지역은 물론 타지에서 일부러 찾아와서 정성을 드리는 신목(神木)이다.

홍성군 향토문화연구회 부회장인 황성창(68)씨는 이 나무에 얽힌 일화를 말해준다.

"왜정 때인 1935년 여름에 주재소 주임으로 온 야마구찌가 이 회화나무의 가지를 치고 하루 아침에 벙어리가 돼 왜 땅으로 되돌아갔고 이 나무를 건드리는 일본 사람마다 반드시 해를 입어 항일 나무로 불리기도 했거든유. 그러구 1970년대인가 방위병이 남들이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가지를 잘랐다가 그 이튿날 난데없이 죽었슈. 그런 뒤로는 아무도 이 나무를 건드리려구 허덜 않아유."


이 나무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두렵고도 신령스런 경외의 대상이다. 확실하게 기록된 것은 없지만 이 나무가 신령스런 존재가 된 것은 300년은 넘었으리라는 게 황씨의 말이다.

이 나무는 사시사철 굶는 날이 별로 없다고 한다. 온갖 치성을 드리는 사람에서 무속인에 이르기까지 거의 일년 내내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인근 주민들이 전한다.


이 회화나무에 제대로 된 제사상이 차려지는 것은 오월 단오날이다. 이 날은 이 나무를 심은 정 현감의 후손인 동래정씨 종친회와 결성 문화재 보존회 등이 모인 사람들이 먹을 수 있을 만큼 걸게 상차림을 한다.

1998년에는 결성농요단과 노인회, 문화재 보존회가 주축이 돼 이 회화나무의 유래를 알리는 유래비를 건립했다. 외래 종교가 깊숙하게 파고들어 나름의 문화를 창조하는 지금에도 결성지역 사람들에게 이 나무는 토테미즘을 넘어선 고유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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