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의 탄핵반대집회는 역동적인 '혼성공간'으로 진화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권우성
신세대 건축가 스티븐 페렐라(Stephen Perrella)가 그의 책 < Hyper Surface Architecture >에서 주장한 혼성공간(Hyper Surface)의 개념은 바로 이 번개모임효과에서 유추할 수 있다. 사이버 스페이스의 체험을 통해 형성된 공간감각이 현실공간 위로 겹치는 현상(Superimpose)이 벌어지고 현실공간의 경험이 다시 가상공간에 영향을 미치면서 현실도 가상도 아닌 제3의 공간감각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필자는 스티븐 페렐라의 선구적인 개념을 차용해 사이버 스페이스 이후의 세상을 하이퍼 서피스라 칭하고자 한다. 사이버 스페이스를 가상공간이라 번역한 것처럼 하이퍼 서피스는 혼성공간으로 번역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혼성공간은 어떤 공간감각을 우리에게 심어줄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혼성공간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일까? 먼저 진정한 혼성공간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환경이 전제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이 가상공간을 탄생시킨 것처럼 유비쿼터스 환경은 곧 혼성공간을 필연적으로 탄생시킨다.
혼성공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차세대 휴대단말기를 지닌 B군이 점심시간에 회사근처의 식당을 찾아 나선다. 한 식당에 다가가자 위치정보서비스에 가입한 그의 단말기 스크린에 식당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와 식당을 이용한 사람들이 남긴 다양한 댓 글들이 즉시 떠오른다. 잠깐 일별만으로 B군은 그 식당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식사를 마친 B군 역시 소감을 현장에서 즉시 댓글로 남기거나 아니면 별 점을 줄 수 있다. 오로지 장소와 시간과 조건이 맞아 떨어지는 경우에만 선별적으로 작동되는 가상 게시판이지만 마치 식당 문 앞에 달린 게시판에 손님들이 포스트 잇으로 소감을 남기는 것과 다름 없는 효과를 거둔다. 혼성공간이다.
지난 3월의 탄핵정국으로 돌아가 보자. 탄핵반대진영에서는 광화문 4거리에서 대규모 시민집회를 열었고 거의 6시간에 걸쳐 축제를 방불케 하는 행사를 치렀다. 오마이뉴스 역시 현장을 생중계했지만 무려 2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시청 앞까지 물밀 듯 밀려들면서 대열의 후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연단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결국 어이없게도 현장에 있는 사람보다 오히려 오마이뉴스로 현장생중계를 지켜 본 사람이 행사의 전모를 더 쉽게 파악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만약 오마이뉴스가 위치정보를 이용해 현장에 모인 20만 명의 휴대폰을 타깃으로 삼아 무대에서 벌어지는 내용을 실시간 문자생중계 했다면 참여자들은 훨씬 더 다이나믹하게 집회를 즐길 수도 있었다. 이것은 야구장을 찾은 프로야구 팬이 라디오를 들고 와 전문해설자의 생중계와 함께 경기를 즐기는 것과 비견될 수 있다. 기술과 인프라가 있는데도 아쉽게도 실현시키지 못한 혼성공간의 체험이다.
주요 포털사이트에는 수많은 여행정보가 올라온다.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들 역시 여행기나 자기가 사는 지역에 대한 기사를 즐겨 올리는 편이다. 오마이뉴스가 이 기사들을 장소, 시간, 계절에 따라 바코드 처리해 저장하고 위치정보 서비스에 가입한 단말기를 휴대한 독자가 그 지역을 여행한다면 시민기자의 관련기사가 스크린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지능형 서비스를 상상할 수 있다.
독자는 시민기자의 여행기에 현장에서 바로 답 글을 달아 막상 와서 본 그만의 소감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의 체험이 사건이 벌어지는 그 현장에서 융합되어 혼성공간이 구현되는 순간이다.
사이버 공간이 콘텐츠 공급업자와 소비자의 주종관계가 아니라 네티즌들의 자발적 상호작용으로 풍부해 졌듯이 혼성공간 역시 통신업자의 일방적 정보서비스가 아니라 네티즌들이 현실과 가상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들만의 의견을 교류하는 다이나믹한 장소로서 기능할 때 그 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실공간, 가상공간... 이제 혼성공간의 시대다. 유비쿼터스 환경이라는 발음도 어려운 신종 테크놀러지에 많은 이들이 어리둥절해 하고 있지만 이것이 바로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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