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사진 속 추억과 감동을 찾아가세요"

오류1동 동사무소, 과거 주민등록증 사진 액자에 넣어주는 사업 펼쳐

등록 2004.09.10 18:42수정 2004.09.1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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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정리를 하다 혹은 무심코 책장을 넘기다 빛 바랜 사진을 발견하고는 그 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 미소지어 본 적이 있는가.


몇 년 전 혹은 수십 년 전 사진으로 세월과 함께 묻혀진 추억을 다시금 회상하는 기쁨을 전해주는 곳이 있다. 그곳은 자원봉사 단체도, 사진관도 아닌 오류1동 동사무소.

a 과거 주민등록증 사진과 편지

과거 주민등록증 사진과 편지 ⓒ 정현미

오류1동 동사무소에서는 지난 1일부터 주민들에게 무료로 오래 전 주민등록증 사진을 스캔한 후 확대인화 해 액자에 넣어주고, 여기에 편지까지 써주는 '감동사업'을 펼치고 있다.

'젊은 날의 모습 찾아주기' 사업은 지난 7월 새로 부임한 문용식 동장이 행자부 지침에 따라 주민등록표가 마이크로 필름으로 만든 후 파기할 예정인 것에 착안해 영영 사라져 버릴 지모를 추억 속 사진을 되돌려주자는 소박한 아이디어로 추진되었다.

디지털 카메라가 사진 수백 장을 찍었다가 바로 쉽게 지울 수 있게 해주고, 이메일(E-mail)과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통해 쉽게 메모를 전달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어쩌면 낡은 사진의 아련한 추억과 볼펜 냄새나는 편지지의 촉감을 잠시 잊고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업이 관심을 모은 이유 중 하나도 이런 시대에 낡은 사진을 돌려주고, 동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본 주민에게는 동장이 자필로 편지를 써서 사진과 함께 전해주기 때문이다.


a 동장의 자필로 주민들에게 쓴 편지

동장의 자필로 주민들에게 쓴 편지 ⓒ 정현미

매사 의욕적이고 솔선하시는 모습에서
사람 제대로 만났다고 생각을 합니다.
남의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고
무언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그저
흐뭇하게만 느껴지는 내 좋은 통장님.
좋은 일이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하며
총무님에게 걸어보는 관심이 큼을 느껴보시고
아름다운 일에 쓰이길 바랍니다.

1981년 11월
이상미 통장님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오류1동 주민이자 통장인 이상미씨는 동장이 전해준 편지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동장님이 손수 적어준 편지를 받으니 펜팔을 하던 시절도 그리워지고, 학창시절 선생님이 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성적표 뒷면에 글을 적어주던 것이 생각나 잊고 있던 정감을 다시금 느끼게 되네요."

어떻게 일일이 주민에게 다른 편지를 쓸 수 있느냐는 질문에 문 동장은 "이것은 큰 일이 아니라 관심과 무관심의 차이"라며 "오류1동에서 근무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더 많은 사람을 알고 편지를 써주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며 아쉬워했다.

이 사업은 주민 신청을 받은 지 보름 만에 240여 명이 신청을 했고 지금도 하루 7∼8명씩 신청자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문 동장은 "이제는 신청자가 너무 많이 밀릴까봐 걱정"이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청자마다 예전 주민등록 카드를 찾아 사진을 오려내고 스캔한 후 인화를 하고 그것을 다시 액자에 끼운 후 편지를 쓰는 모든 과정을 업무시간 이후 남아서 하기 때문이다. 스캐너와 프린터를 사용하는 시간이 길어 업무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문 동장은 근무시간 이후에 몇몇 직원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보통 10시 정도나 되어야 퇴근을 한다고.

이에 대해 이상미씨는 웃으며 "사업 추진 초기에는 남아서 일하는 직원들이 속으로 불평했을지도 모른다"며 "하지만 '시간외 수당'도 안 주는데도 주민들을 위해 늦게까지 일하는 동장과 주민들의 높은 호응에, 이제는 직원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도와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희순씨도 "문 동장이 오시고, 이 사업을 추진한 후로는 동사무소 직원들도 경직된 모습 대신 밝고 친절한 태도로 주민들의 민원을 처리해 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문 동장은 "그동안 공무원들에게는 '지시'와 '단속'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던 것이 사실"이라며 "동사무소에서도 도로신설, 주차단속 등 공공 업무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감동과 기쁨을 선물해 '함께 하는 오류1동'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a 주민등록증 사진을 들고있는 주민들과 동장(오른쪽 맨끝에 앉은 사람)

주민등록증 사진을 들고있는 주민들과 동장(오른쪽 맨끝에 앉은 사람) ⓒ 정현미

문 동장은 또 "이 사업에 대한 주민의 호응과 성과가 높자, 구로구청장님이 지난 6일 확대간부회의에서 구로구 전 지역에서 이 사업을 함께 추진하자는 의견을 내 놓은 바 있다"고 밝혔다.

한편 주민들에게 이 사업 홍보를 해오고 있는 조성찬 통장 친목회 회장은 30년 전 사진을 손에 들고 감흥에 젖어 말했다.

"30년 전 내 기억을 다시 찾은 것 같은 느낌에 감격스럽네요. 연탄 난로에 두부를 부쳐서 나눠먹으면서도 행복했던 시절이 이 때인데…."

이렇듯 작은 생각의 변화가 속도를 중시하고 여유와 정이 메말라 가는 현대 사회에 '한 박자 천천히' 과거를 회상하며 웃음 짓게 하는 계기가 돼줄 수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사람은 과거를 기억할 때 나쁜 경험보다는 행복한 경험을 선별해서 기억하려는 습성이 있다고 말이다. '젊은 날의 모습 찾아주기' 사업은 젊은 날의 사진을 돌려주는 사업만이 아니었다. 그 낡은 사진을 통해 지난 세월 속 행복했던 기억과 감동 그리고 잃어버렸던 정을 다시금 찾아주는 사업이었던 것이다.

이 추억과 감동을 전해주는 사업이 앞으로 구로구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확대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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