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릉에 대해 쓰느냐고 묻는다면...

공릉 시리즈와 오마이뉴스

등록 2004.09.10 23:34수정 2004.09.1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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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릉 무인석 ⓒ 한성희

공·순·영릉에 대해 시리즈로 몇 번 글을 올리자 오마이뉴스에서 전화가 왔다. 지역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오마이뉴스 가족이 된지 벌써 만 4년이 지났다. 파주에 대한 글을 항상 올렸지만 공릉(보통 이 지역에서는 공릉으로 부르니 이제부턴 공릉이라 표기)에 대해 계속 글을 쓰는 것이 의아했을 것이라고 본다. 단순하게 한두 번 취재해서 기사를 작성하는 것도 아니니 편집부가 궁금했을 것이란 짐작이다.

5개월 간 공릉에서 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하면서 관람객들에게 공릉에 대한 소개를 하기 위해 각종 문헌을 뒤적이며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고 공릉문화재청관리소에서도 자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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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혜왕후의 순릉 입구 ⓒ 한성희

모든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그렇겠지만 우선 자료수집부터 들어가야 한다. 사진, 팸플릿, 책 등 자료를 챙기고 취재를 하고 기사작성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시민기자들이 각 분야에 전문가인 경우도 있고, 주부에서 교수, 문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화려한 필진들이 개성이 돋보이는 글을 올린다. 한 분야에 대해 전문적으로 사는 이야기나 문화, 교육에 꾸준히 올리는 기자도 있고, 나처럼 사는 이야기, 문화, 사회, 교육 등 여기저기 몰개성하게 잡식성 기사를 올리는 사람도 있다.

이번 공릉 유적지에 대해 기사를 쓰기로 작정하면서 그동안 얻은 정보 외에 닥치는 대로 자료를 긁어모았고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해설하는 틈틈이 사진을 찍으러 숲을 헤매다가 벌에 쏘일 뻔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고 코앞에서 뱀을 만나 뱀이 사라질 때까지 오금이 저려 꼼짝도 못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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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이복형인 진종과 효순왕후가 잠든 영릉 ⓒ 한성희

자료수집과 취재를 끝내면 기사를 어떤 컨셉트를 잡아 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단순한 정보를 쓰면 유적지 관광정보 전달이나 역사 소개에서 그치는 재미없는 기사가 될 것이니 여태까지 긁어모으고 머리에 담았던 자료들을 온몸으로 육화한 뒤 내 시선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으로 들어가야 한다.

작년 11월에 '430년 잠에서 깨어난 ‘파평 윤씨 모자 미라’'를 써서 기자가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 중에 최고 조회수인 5만6000회 이상을 기록했고 독자에게 칭찬을 많이 들었다. 독자의견 조회수도 최고 7천회가 넘었고 5천, 3천, 3천 이상의 독자의견 조회수들도 많았다. 그 기사 역시 직접 취재를 마친 뒤에 수백 쪽에 달하는 모자미라 보고서를 전부 읽고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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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 숲의 조팝나무. 구멍이 어른 주먹이 들어가고도 넉넉할 정도로 크다. ⓒ 한성희

자신에게 만족하는 글을 쓰면 쓰기를 마친 순간 본능적으로 감이 온다. 아하, 이건 메인톱으로 올라가겠구나 하는.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온 전화도 나와 마찬가지로 만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훌륭한 기사를 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심혈을 기울여 쓴 것이니 읽는 사람도 만족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들은 기자가 속으로 '그렇게 훌륭하다고 칭찬하면서 왜 메인톱에 안 올렸지?' 하는 생각을 안 했다고 느낀다면 편집부가 바보 아냐?

역사에 관한 기사를 쓸 때면 연대나 사실의 정확도를 위해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는 것도 모자미라 후속 기사로 쓴 '‘파평윤씨 모자미라’에 얽힌 뒷이야기'에서 독자들에게 혼이 나고 나서였다. 기사 속에 '윤원형(1575-1534)'이라고 오기하자 당장 '출생이 어떻게 사망보다 늦냐'는 독자의 지적이 들어왔다. 가슴이 서늘해져서 부랴부랴 고치고 나중에 참고했던 문헌을 다시 들쳐보니 문헌에 오기 돼 있었다. 생몰 연도를 확인하지 않고 잘못된 자료를 무심코 보고 쓴 결과였다. 이럴 때는 오마이 독자들이 전부 사학 전문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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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 냇가 맑은 물에서 물장난 치는 어린이들. ⓒ 한성희

또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던 초기에 '크리스테바의 '시적 언어의 혁명'은 소설'이 아니라고 지적한 독자도 있었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기호학자이면서 철학자인 크리스테바의 저서가 소설인지 아닌지를 알고 지적할 정도라면 대단한 수준의 독자일 것이다. 그때 오마이 독자들이 보통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사실 덤벙대고 게으른 성격 때문에 교열을 제대로 안보고 후딱 올린 뒤에 실수를 발견한 건 하나 둘이 아니다. 문맥이 맞지도 않고 오자가 난 것도 여러 번인데 예리하고 무서운 독자들이 못 보고 그냥 넘어가주길 바란 적도 많다. 왜 교정을 볼 때 안 보이던 오자가 꼭 인쇄가 돼 나오거나 글이 올라가면 잘못된 게 선명하게 보이는지?

자신이 실수한 것이면서도 편집부에 가끔 불만이 생기는 것도 이럴 때이다. 잘못된 문맥 정도는 좀 교정해줘야 하는 거 아냐? 예전에는 제목이나 문장에 거의 손 댄 적이 없는데 요즘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한두 군데 손을 본다.

제목과 문장을 고치는 거야 편집부의 권한이니 이의가 없지만(4년간 이 권한에 대해 인정했고 한 번도 이의를 제기 한 적 없다) 손을 댄 문장이 어색하고 문맥이 잘못돼 안 고치느니만 못한 경우도 더러 있다. 이점 오마이뉴스 편집진은 각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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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 숲의 나비 ⓒ 한성희

기자 역시 신문교열을 몇 년 보면서 실수 한 게 한둘이 아니다. 성과 이름 잘못 써서 항의를 받은 적도 있고, 오자가 그대로 나가는 건 지금도 가끔 있다. 정확성을 요구하는 신문 교열 자체가 머리에 쥐가 나고 피를 말리는 작업인데 자칫 방심하는 순간에 10일이 10월로 나가버린 적도 있다. 그것도 1면 제목에서라면 신문을 펼쳐들고 가슴이 철렁하는 심정을 알만 할 것이다. 이럴 때는 신문을 보면서 머리에 쥐가 또 끓는다. 이럴 때 기자가 직업 중에서 가장 명이 짧은 이유를 실감한다.

이런 것을 교열하는 사람들 은어로 "마가 꼈다"고 한다. 오자 하나 잡아내는 순간, 잡아낸 오자 바로 뒤에 있는 오자는 보이지 않는 "마"와, 평균 3번씩 교열 볼 때는 보이지 않던 오자가 숨어 있다 인쇄되면 튀어나오는 "마"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야기가 교정으로 흘러갔지만 다시 공릉으로 되돌아오기로 하자. 공릉(경기도 파주시조리읍 봉일천리)에 문화유산해설사로 자원봉사를 나선 지 벌써 5개월째다. 문화유산해설가가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들도 더러 있을 것이고 전국의 유적지나 관광지에서 문화유산해설사의 해설을 들어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문화유산해설사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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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과 아기 산초나무 ⓒ 한성희

기자가 문화유산해설사로 나선 이유는 단순하다. 대외적인 이유를 들자면, 어릴 때부터 단골로 소풍 다녔던 추억의 장소이고, 청정 지역인 공릉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운동도 하며, 관람객들에게 파주시의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자원봉사를 하면 지역사회에 조금 보탬이 되기도 할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신청서를 내고 경기도에서 교육 5일간 하루 8시간씩 꼬박 강의를 듣고 시험을 보고 문화유산해설사의 자격증을 받은 순간까지 문화유산해설사 담당자인 시청 문화체육과 김윤정씨가 협박성(?) 걱정을 했다.

"한 기자님 시간 낼 수 있어요? 활동 안 하면 자격증 도로 반납해야 해요."
"걱정 말아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야 시간을 못 내겠어요?"

얼마나 힘들게 낸 시간으로 교육받은 건데 내가 이걸 포기하겠나. 해설사 교육을 받은 이유는 공릉에도 문화유산해설사가 배치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평소에 역사유적에 대한 관심이 많기도 했고, 숲과 풍광이 좋은 공릉에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도 사회봉사도 하고 운동을 하면 건강에 좋은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겠다는 계산이 먼저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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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릉에 한창 분홍 안개 들판를 연상케 하는 여뀌(?)가 피어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 한성희

이런 과정 끝에 일요일은 거의 공릉으로 문화유산 해설을 위해 출근한다. 피치 못할 일이 생기거나 바쁠 때는 해설사들끼리 일정을 바꾸기도 한다. 파주시에 모두 36명의 문화유산해설사가 있고 임진각과 자운서원, 도라산역에서 활동한다. 이곳 공릉에는 10여 명이 있고 평일에 한 명, 주말에 두 명이 나온다. 하루에 세 번 정해진 시간에 해설을 하게 돼 있으나 단체 신청이 있거나 능을 다니다가 원하는 사람들에겐 해주기도 하니 10번 이상일 때도 있다.

공릉은 봄과 가을의 행락철을 빼고는 많은 사람이 찾지 않는다. 서울 근교에서 멀지 않는 곳에 이런 유적지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다. 능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여러 유형이 있다. 대충대충 스윽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고 가족 단위로 도시락을 준비해서 찾아와 숲에 돗자리를 펴고 휴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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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에는 이렇게 멋진 적송이 많이 있다. ⓒ 한성희

또 문화유적 탐방을 위해 단체로 찾아오는 경우와 예전에 수학여행 왔던 곳이라면서 외국에서 귀국해 찾은 사람, 풍수를 보러 오는 사람, 숲과 문화재 사진 촬영을 위해 오는 사람, 숙제를 하기 위해 어린이와 동반한 가족, 버섯에 관한 책을 내기 위해 사진 촬영을 온 버섯박사 등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릉에 대한 해설을 하고 만나는 것은 내게도 해설사가 아니라면 만나지 못했을 소중한 기회이고 외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파주를 소개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요즘은 문화유적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아이들을 데리고 정자각에 함부로 올라가 놀게 하는 것을 제지하면 몰라서 그랬다고 미안하다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서둘러 내려온다. 왜 안 되느냐고 못마땅해서 따지던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다.

이곳을 찾는 시민들은 능 내에서 함부로 행동하지도 않으며 고성방가를 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관람하는 태도를 보면 문화에 대한 긍지와 성숙한 시민의식이 높아졌다고 느낀다. 이런 시민들을 항상 보고 있으니, 한참 수준이 못 미치는 '검사들의 경복궁 만찬' 사건을 대하고 개탄과 함께 국민들의 질타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소위 지도층들의 문화유적에 대한 태도와 인식이 저 모양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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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년 수령의 영릉 전나무의 둘레는 어른 두팔로 감싸고 한팔 정도가 더 되는 아름드리다. ⓒ 한성희

기자가 이곳에 공릉에 대해 소개한 글은 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하면서 관람객들에게 설명해주는 것들이다. 조선의 국장제도부터 조선역사와 왕릉풍수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헌을 참고하고, 공릉문화재청관리소 직원들에게 배우기도 하고, 직접 다니면서 느끼며 체험하고 또 어떤 때는 찾아온 관람객에게 들은 지식을 모아서 쓴 것이다.

문헌이란 것도 지나간 역사들이니 서로 다른 기록이 있을 때도 있다. 풍수에 관한 것도 풍수 전문가들마다 다른 해석을 내릴 때도 있다. 그런 경우, 더 많은 문헌을 뒤져보고 정확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것을 참고한다.

문화유산해설을 위한 자료가 딱히 준비돼 있는 것이 아니니 해설사 자신들이 각자 찾아보고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설사로 나서고 거의 모든 일요일을 공릉에서 보냈지만 10년 만에 찾아온 폭염으로 헐떡였던 지난 여름, 공릉 덕분에 더위를 잊고 숲의 매력에 푹 빠져 지낸 것만 해도 큰 수확이라 생각한다.

문화유산해설사란?
문화유산해설사를 이용하자

며칠 전 한겨레 신문에서 문화유산해설사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문화유산 해설사로 활동하면서 일반시민들이 거의 이 제도를 활용할 줄 모른다고 느껴 문화유산해설사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경기도는 2001년 3월 수원화성, 남양주의 남한산성, 고양시 행주산성, 파주시 자운서원 등 9개 지역 12개 문화유적지를 대상으로 양성교육을 실시하여 158명의 문화 유산해설사를 시범 운영했다. 이후 지역을 확대, 현재 경기도 시·군 16개 지역 34곳의 유적지에 315명의 문화유산해설사가 활동하고 있다.

경기도 문화유산해설사 운영이 큰 성공을 거두자 올해 문화관광부는 경기도 문화관광국에서 시범 운영한 문화유산해설사 제도를 도입해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문광부에서 시행하기 이전, 경기도의 문화유산해설사 제도를 벤치마킹 해 운영하고 있는 도 지자체도 있었다.

문화유산해설사는 자원봉사자들로, 내국인과 외국인 관광객에게 훌륭한 역사 문화자원에 얽힌 이야기를 흥미롭게 설명해서 역사 문화 체험과 만족스런 관광경험이 되도록 관광객을 도와주는 문화알림이와 역사지킴이, 관광안내자 역할을 한다.

해설사를 뽑는 기준은, 퇴직교원, 향토사학가, 지역 문화원 및 문화유산에 대한 일정한 소양을 갖춘 시민으로, 관광지 해설기법, 관광자 심리,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 관광서비스 마인드 등의 소양교육 지역의 역사와 문화 및 문화유산에 대한 주제별 특강 현장에서의 현장답사 및 해설실습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그리고 이론시험과 해설 실기시험 등의 수료시험을 실시, 일정한 해설수준과 소양을 갖춘 문화유산해설사들을 선발해 문화유산해설사증을 수여한다.

문화유산해설사와 만나고 싶은 관광객은 누구나 해당 시·군 관광과에 사전예약을 통해 전문적인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예약을 하지 않더라도 지정된 관광지에 배치돼 있는 문화유산해설사들은 1일 3회 정기적으로 관광객에게 해설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들을 수 있다. 해설 비용은 무료다.

해설사들은 대개 그 고장 출신이거나 지역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일반적으로 알려진 유적에 대한 상식 외에 알려지지 않은 전설과 일화 등에 대해서도 자세하고 생생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문화유산해설사는 보수없이 각 지자체에서 책정한 일정 금액의 식사비와 교통비 정도를 지원 받는다. 각 도나 시·군에 따라 7천 원에서 3만 원까지 정해진 비용이 다르다. / 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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