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개방 '관세화 유예' 무너지나

[DDA 농업협상 쟁점] 협상 재개한 정부는 '고민중'

등록 2004.09.14 18:28수정 2004.09.15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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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10일 미국을 시작으로 개별협상을 재개한 정부는 쌀의 관세화냐 관세화 유예냐를 놓고 전략적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농민들은 관세화를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사진은 10일 정읍에서 열린 쌀개방 반대 농민대회.

지난 10일 미국을 시작으로 개별협상을 재개한 정부는 쌀의 관세화냐 관세화 유예냐를 놓고 전략적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농민들은 관세화를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사진은 10일 정읍에서 열린 쌀개방 반대 농민대회. ⓒ 오마이뉴스 권우성


"관세화 유예 연장조건이 최대한 유리하게 되도록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연내에 끝낼 수 있을지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쌀 협상에서 관세화 유예를 기본 입장으로 정했지만, 상대국 요구조건이 과도할 경우 실리 확보 차원에서 재검토할 수 있다."

지난 3일 이재길 외교통상부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대사는 외통부 정례브리핑을 통해 쌀 협상에서 정부의 '입장 변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지금까지 정부 입장은 93년 UR협정에 따른 쌀의 '관세화 유예'를 유지하면서 의무수입물량(MMA) 확대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었다. 관세화 유예와 추가개방 반대 등은 전농을 비롯한 농민단체들도 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대사의 발언은 정부가 '관세화 유예'에서 한발 물러나 '관세화'를 할 수도 있다는 듯한 인상을 남겨 농민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그렇다면 이 대사가 고 이경해씨 사망 1주기를 앞두고 농민들의 감정이 격화되고 있던 민감한 시기에 이같은 발언을 내놓은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미국·중국 등 주요수출국들과 연내에 개별협상을 타결해야만 하는 정부의 '말못할 고민'이 숨어있다.

수출국, '관세화 유예' 과도한 대가 요구

일단 쌀 협상과 관련한 정부의 공식 입장은 현재까지도 '관세화 유예-의무수입물량(MMA) 최소화'다.

김주수 농림부차관은 지난 10일 농정현안 브리핑을 통해 "우선은 관세화 유예 조건을 협의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상대국 요구가 과도할 경우 관세화 등 다른 방안을 검토할 수 있으나, 지금으로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정섭 농림부 농업통상정책관 역시 지난 9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쌀의 관세화를 검토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고민은 '쌀 관세화 유예'의 조건으로 미국과 중국 등 수출국이 내건 요구가 너무 과도하다는데 있다. 단지 '관세화 유예'를 지키기 위해 수출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관세화를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농업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다는게 정부 측 설명이다.

아울러 관세화 유예의 대가로 늘어날 의무수입물량(MMA)은 훗날 관세화 되더라도 TRQ(저율관세 의무도입물량)으로 전환돼 의무적으로 계속 수입해야 한다는 점도 정부의 큰 고민거리다.


최정섭 정책관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언제든지 관세화를 하면 그동안 사주던 MMA 물량을 사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인식하는데 그것은 아니다"라며 "관세화를 시켜도 TRQ(저율관세 의무도입물량)으로 계속 수입해야 할 의무를 진다는 것은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관세화 유예'를 고집했을 경우 걱정되는 점과 반대로, 당장 쌀을 관세화 했을 경우에도 이를 제어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정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최정섭 정책관은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쌀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이라고 밝혔다.

엇갈린 전문가 반응 "관세화 무책임한 주장"-"관세화도 고려 가능"

정부의 이같은 고민에 대해 외부의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전농 등 농민단체와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끝까지 관세화 유예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많은 전문가들은 "쌀 개방 반대만이 최선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박옹두 전농 정책위원장은 "쌀의 관세화와 관세화 유예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얼마를 들여오느냐는 '양'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가장 큰 문제는 수입되는 쌀에 대해 정부가 수급조절, 유통조절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또 "관세화로 갔을 경우 정부가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다"고 말하며 쌀의 관세화를 반대했다.

일부 전문가들도 현 시점에서 '관세화'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윤석원(중앙대 산업경제학) 교수는 "아직 DDA 협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판단기준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관세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또 "정부는 협상 전략 차원에서 관세화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일반학자들이 아무 근거도 없이 관세화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관세화 유예를 유지하며 최소한의 의무수입물량을 받는 것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때에 따라 관세화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쌀 협상에서 중국의 요구사항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그는 "중국의 경우 관세화 유예를 조건으로 국내 쌀 시장물량의 16%를 의무수입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관세화를 통해 시장을 개방하더라도 중국쌀이 국내 시장의 16%는 장악하지 못한다"며 "이처럼 관세화가 관세화 유예보다 더 나을 경우 관세화도 고려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양준석(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지난 8월 <한국일보> 기고를 통해 "그동안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아 농업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킨 측면도 있다"고 밝히며 "쌀 시장 개방 반대가 능사는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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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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