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과 사회개혁을 한 솥에 섞어서는 안 된다

<참언론 참소리>

등록 2004.09.15 12:45수정 2004.09.16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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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도 어려운데, 개혁은 무슨....>을 주장하고 있는 언론보도, 사설들

<매일경제> 9월 14일 [사설] 모험정신 부족 정부도 책임

<동아일보>
9월 14일 [칼럼]“나라 그만 흔드시죠”
기사- "韓, 잠재성장률 4%로 추락 영원한 2류國 전락 위기"
8월 26일 [동아광장] 불감증의 시대
8월 21일 [사설]"칼 녹여 쟁기 만들라"가 민심이다
8월 20일 [사설]‘정권 향한 우려’에 귀 막을 건가
8월 16일 [사설]`과거`에 매달린 광복절 경축사

<조선일보> 9월 7일 [사설] "한국경제 문제 없다"는 경제인식의 문제

경제난 보도의 문제점

우리 경제가 심각한 위기국면에 처해있다는 언론의 지적이 줄을 이어왔다. 성장률, 실업률, 가계부채, 아파트 신규청약률, 소비지출감소율, 소비자평가지수와 소비자기대지수 등의 악화가 그 자료로 제시된다.

실제로 피부로 접하는 현 경제실태는 상당히 심각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는 남북한 화해분위기 조성, 과거사 정리 등 각종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현 정부가 그 개혁정책이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독점하고 있는 집단들로부터 저항이 있을 것으로 예상을 했어야 했다. 따라서 경제회복을 함께 추진하지 않은 개혁의 미숙함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현재의 경제난을 소리높여 부르짖는 주체들을 보면 주로 한나라당과 일부 소수 언론이 서로 그 주장을 주고받으며 상승작용을 끌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경제난을 현 정부가 애써 무시하고 있다는 주장 다음에 친일인사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과거사 정리, 남북화해정책,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한 비난을 반드시 덧붙이는 데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현재의 경제위기가 사실인 점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정치적인 주장을 하는 데에 이용하고 있는 점에 현재 경제난 주장의 불순함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예로 <동아일보>는 그 신문의 논설위원과 각 부문 부장들이 거의 매일 나서고 여기에 여론조사까지 동원하여, 경제난에 대한 융단폭격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러면서 반드시 현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정치 사회적인 개혁정책들을 그 자체로서 잘잘못을 따지는 토론의 마당을 펼쳐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 정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을 꼭 경제위기로 덮어서 이용하는 양태를 보이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정치 사회 문제와 경제 문제는 분리해서 차분하고 세밀하게 검토하고 논의해야 할 때가 왔다. 여러 문제를 뒤섞어 대충 도매금으로 넘겨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 수준은 분명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지면의 제약은 있지만 현재의 경제난을 차분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a 동아일보 9월 14일 칼럼

동아일보 9월 14일 칼럼 ⓒ 동아일보

현 경제난의 성격


사실 돌이켜보면 해방 이후 한국경제는 위기 아닐 때가 거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국민들의 갖은 노력으로 그 위기들을 돌파해 왔다.

1950년대엔 원조물자에 의지해 수입대체산업을 키웠으나 50년대 말에 그 원조물자가 급격히 줄어들어 경제위기를 겪어야 했다. 1960년대엔 차관자금에 의지해 주로 경공업 분야에서 공업화를 이루었으나 그 중 많은 기업들이 그 차관자금을 갚지 못해 1968년에 외자계 부실기업들을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정리해야 했다.

또 1970년대의 왕성한 중화학공업화는 세계적인 석유위기 와중에 중동 열사의 땅에 나가 온몸으로 때운 건설노동자 덕분에 진행되다가 1979년 2차 석유위기의 격랑에 휩쓸려 중화학분야의 투자조정을 정부가 나서서 해야 했다.

1980년대에 그 짐을 안고 가다가 1986년 무렵 해운산업과 건설산업에서 다시 한번 부실기업정리를 했어야 했고, 그 다음 찾아온 3저호황 이후 1990년대 소위 자유화정책에 따른 무분별한 투자확대로 1997년 외환금융위기를 겪어야 했다.

현재의 경제난은 대외적으로 중국을 비롯한 후발개발도상국의 급속한 추격과 세계시장 잠식에 따라 현 상태로는 우리 산업의 입지가 급격하게 축소되고 있다는 데서,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아직 1997년 외환금융위기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외환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금융개혁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남발한 신용카드 대란이 아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경제난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주변 경제환경의 변화에 한국경제가 적응하는 과정에 겪고 있는 구조적인 위기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 경제는 그 경제 환경 변화가 너무나 빨라서 경공업화, 중공업화, 정보화 등 각 단계를 이루고 한 세대도 그 과실을 누릴 시간 여유를 갖지 못하고 그 다음 단계로 이행해야 하는 데서 오는 부조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제 중국 등 후발 개발도상국들을 뿌리치고 선진국으로 이행하는 것을 해방 이후 두 세대만에 해치워야 할 상황이니 사실 모두 제정신이 아닌 상황이다.

이제 세계화 또는 글로벌화 과정에서 세계표준으로 강요되는 미국 표준을 우리 나름대로 소화해가는 과정에서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의 50%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늘어나고,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금융부문을 비롯한 많은 산업부문에서 외국자본이 무차별 점령하는 등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최소 산업은 중국 등 다른 나라로 넘기고 과거 경공업화와 중공업화 초기에 그랬듯이 정보화 이행 와중에 반드시 들어가는 설비 및 부품의 대외 의존을 단시일 내로 줄이고 자체 생산하는 기반을 갖추어야 하는 것도 새로운 과제다.

게다가 선진국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환경파괴, 지역 간 불균형, 사회 최저 생활 계층에 대한 복지 문제 등에 대한 대책도 현 시기에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또 다른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 등 다른 나라의 급속한 공업화과정에 세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자원부족, 에너지부족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과거에 그랬듯이 지금도 이 문제들은 모두 결코 손쉬운 문제가 아니며 성공 즉 생존 아니면 실패 즉 파국의 외줄 위에 있는 것들이다.

a 동아일보 9월 14일 A8면 기사

동아일보 9월 14일 A8면 기사 ⓒ 동아일보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

반면 우리에게는 그동안 힘겹게 쌓아온 성과들도 있다. 과거에 우리가 아무리 생산을 많이 해도 절대 우리 상표로, 우리 기업 이름으로 수출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우리 상표로 세계시장에 내놓고 있고 또 선도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만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영토싸움을 벌이던 재벌 등 기업들이 이제는 세계시장에서 진검 승부를 벌이며 이류상품이 아닌 일등상품을 당당하게 내놓고 있다.

현재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디지털 상품, 정보화는 한국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고 있다는 실적자료와 해외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또 전자 조선 자동차 철강 화학 IT, 그리고 생명공학 분야 등 첨단 제품 전반에 경쟁력을 가진 몇 안되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와중에 그 이전에 차관 형태로 국내에 들어와 있던 외자를 직접투자 형태로 전환할 수밖에 없어서 많은 기업들의 경영권을 해외에 넘겨야 했지만 아직 다행스러운 것은 각 산업별로 국내기업들이 버텨주고 있어 산업 내에서 해외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가며 시장을 지키고 경쟁력을 배양할 최소 기반만은 넘겨주지 않은 상태라 할 수 있다.

여기에 그동안 우리 사회가 겪은 온갖 경험들을 농축시킨 문화상품이 아시아로, 세계로 나아가 그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여기에 후진국에 보편적인 독재권력을 우리 손으로 물리치고 민주화를 이루었고, 이제 미국 등 주변 열강이 마땅치 않아 하는 분단 조국의 재통합을 우리 손으로 추진하고 있다.

단순한 물리적 통합이 아니라 최선의 체제와 제도를 선택하는 과정으로 그것을 진행하고 있다. 소위 한류 열풍은 그 짧은 시간에 겪은 우리의 간난신고를 아시아와 세계인이 공감하고 평가해주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조건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혹은 세계사회를 이끌 도덕적 정당성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것은 당장 경제와는 관련 없는 추상적인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경제 선진화에 크게 뒷받침이 될 정신적 자산임이 틀림없다.

a 조선일보 9월 7일 사설

조선일보 9월 7일 사설 ⓒ 조선일보

현재 경제난 극복을 위한 해법

일반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이 성적을 50등에서 40등으로 올리는 것은 조금만 하면 되지만 10등에서 5등, 5등에서 3등으로 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고 농담삼아 얘기한다. 그만큼 벼락치기로는 어렵고 기초가 받쳐주는 위에 응용능력까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 경제가 선진국에서 설계 도면을 비롯해서 설비와 부품을 가져와서 외국 구매자의 품질 감독 아래 대충 상품을 만들어 해외 구매자의 손에 넘기기만 하면 되던 시대는 지났다.

기초부터 맨 위까지 탄탄하게 다듬어진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 선진국, 노벨상 등등의 목표는 자연스럽게 획득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곳곳에 당장 눈에 띄지 않는 곳들을 다지는 세심하고 차분한 자세가 필요하다. 기초과학과 기반기술을 육성해야 하고 기초체력을 배양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를 휘감는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영역을 꾸준히 지켜가되 변화를 착실히 수용해서 창조적으로 적응해가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예컨대 대구의 주종산업인 섬유산업의 경우에도 고급소재산업으로 발전하는 것도 모색하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패션산업의 발전도 추구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활발히 진출도 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그 과정이 결코 과거와 같은 속도를 가질 수는 없고, 따라서 그런 속도감을 느낄 수도 없다. 어떤 사람이 얘기했듯이 우리는 그동안 급속한 변화에 익숙해 있어서 이른바 ‘고속도로 증후군’을 안고 있고 그것을 서로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적응에 당혹감을 느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그 속도를 여전히 요구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또 과거와 같은 속도로 부를 축적하기가 쉽지 않으니 해외로 나가서 부동산투기 열풍을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정된 부동산으로 투기의 성을 쌓아가는 것은 결국 그 막차를 탄 한국인 또는 현지 외국인에게 그 덤태기를 씌우는 불안하고 위험한 룰렛게임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 필요할 때다. 사실 과거 한국사회에서는 정부가 목표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목표달성에 필요한 온갖 물적 자원을 재정 금융 해외부문 창구를 통해 조달해 주었다.

또 기업들은 기업 발전 과정에 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미국과 일본의 기업들에서 읽을 수 있었다. 선배 세대의 기업가를 폄하할 필요는 없지만 사실 냉정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은 그만큼 호시절이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온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 온실의 벽이 걷힌 상태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국이 주로 연구역량과 소재 부품을 빌려오는 미국의 대학 등 연구역량과 일본의 중소기업 등 기술역량을 보면 그들의 창조적인 능력은 역시 그들의 착실함의 결과일 뿐임을 배우게 된다.

결국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크게 볼 때 경제를 이용해 정치를 농단할 수도 없고, 정치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단계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미세한 부분에서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기야 하겠지만 거기에 모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아니겠는가. 정치와 경제의 분리가 우리 사회의 기본 틀이 되고 있고, 되어야 한다.

사회개혁을 추진하는 정부는 그런 만큼 경제문제에 소홀해서는 안 되고, 다른 한편 경제분야 문제와 국가보안법, 남북한 해빙, 과거 친일문제 등 정치ㆍ사회적인 문제를 엮어서 얘기하는 얘기 방식 등은 이제 더 이상 계속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노골적으로 그러한 얘기 방식을 동원하고 있는 일부 언론을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공공의 문제를 호도하는 불순함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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