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차별도 없애야 하지 않니?"

[주장] 고교 등급제로 대표되는 입시제도 뜯어내야

등록 2004.09.16 12:49수정 2004.09.1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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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교시 수업이 사라진 교실, 이전보다는 아이들의 표정이 많이 밝아졌음을 느낍니다. 물론 아이들의 생활 패턴이 수능과 대학입시의 중압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7시 30분까지 등교하던 아이들에게서 40분 늦은 아침 시간의 여유로운 등교는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이들과 수업시간 도중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편입니다. 인생의 선배로서 때로는 친구 같은 심정으로 격의 없이 주고받곤 합니다. 누구보다도 힘들게 학교 생활을 했던 저로서는 그들의 주장과 의견에 많은 공감을 보냅니다. 무시하지 않고 의견으로서 적극적 듣기를 모색합니다.

아이들은 모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에게 투박하지만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현합니다. 반박하지도 질타하지도 않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나도 너라면 그랬을 거라고 맞장구를 쳐줍니다. 또한 제 이야기와 생각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면서 그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내용을 연관시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차별 받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리고 교사의 폭력을 경멸합니다. 특히 공정하지 않고 일관되지 못한 교사의 언행에 가장 큰 불만을 나타냅니다.

저 자신도 학교에 다닐 때 그런 교사들의 모습에서 실망과 분노를 느낀 적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차별,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차별에 학생들은 분노하고 좌절합니다. 특이 가해자가 자신보다 힘이 강하고 권력이 있는 교사일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조심하고 항상 되묻습니다. 나 자신은 혹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다른 말과 행동으로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데 아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더 심각하게 차별 당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잘 느끼지 못합니다. 고교 비평준화, 고교 등급제, 학벌만능주의 등 제도적으로 고착화 되어가는 차별의 현실을 보지 못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학교 안팎에서 교육받은 적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식이죠.


교사들의 눈에 보이는 폭력은 경멸하고 증오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폭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왜소하고 힘없는 친구에게 가해지는 집단 따돌림부터 피부 색깔이 다르다고 해서, 성적 소수자라고 해서, 여성이라고 해서, 장애인이라고 해서 가해지는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폭력적 차별에 대해선 무관심하거나 침묵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구 반대쪽에서 전쟁과 테러가 난무하고 많은 민간인들이 죽어가는 현실에서 파병을 강행하는 정부를 향해 파병반대를 외칠 수 있어야 하는데도 이를 부정하거나 무관심한 것이 오늘 우리 학생들의 현실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요?

지식 위주의 학교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이 아닙니다. 자신의 출세와 자신만의 행복을 위한 교육은 이제 끝나야 합니다. 학교 교육은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갖아야 할 가치관과 인생관을 정립하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고 함께 행복해질 수 있도록 자신의 사회적 존재와 역할에 대해 고민하면서 진로를 개척해 가는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이상적이라고요?

아닙니다. 지금의 잘못된 교육현실을 바꾸면 가능합니다. 현재 고교등급제로 대표되는 잘못된 입시 제도를 뜯어내면 됩니다. 구체적으로 수학능력시험은 과감히 폐지하고 대신 자격고사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고교 평준화를 포함하여 대학의 서열화를 최소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가 뒤따르고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을 바꾸기 위해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가르쳐야 하는 내용, 교육과정을 국민적 합의를 통해 제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교육이 정상화되고 바로설 때, 우리 사회에 미래가 있다고 봅니다.

돈과 물질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운데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학교와 교사가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며 인권, 평화, 평등, 통일, 환경, 노동, 과학기술, 역사, 철학의 보편적 가치가 삶의 원리와 목적이 되는 21세기는 이런 작은 노력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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