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 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이라고 답하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제일 존경하는 인물로 그 두 분을 꼽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신사임당이라고 대답하는 게 무난했었지요.
그 후 안중근 의사와 유관순 누나를 거쳐 제 아버지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게 된 것은 결혼을 해서 제 자신이 두 아이의 아비가 된 최근의 일입니다. 어렵고 힘들게 자식을 키워 오신 그간의 노고가 아니더라도 아버지라는 그 이름만으로 충분히 존경 받을 자격이 된다는 사실을 아비가 되고 나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제 아버지는 한 때 아파트 경비원이었습니다. 평생 양복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일 해 오던 아버지께서 양복점을 접으시고 할 수 있었던 일은 그리 많지 않았기에 경비원 일을 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아파트 경비원이 하는 일은 경비 일만이 아닙니다. 각 가정에 사소한 고장이 발생했을 때 직접 연장을 들고 가서 고치는 기술자이면서, 아파트 안팎의 미화를 담당하는 환경미화원이기도 했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보살피는 보모 역이나 노인 분들의 말벗 역할도 해야 합니다.
명절이 되면 아파트 주민 중 몇 명이 그 동안 수고하셨다면서 비누나 양말 같은 걸 선물로 건넸는데, 그러면 아버지는 그 동안의 힘든 기억은 다 잊고 보람을 느낀다고 이야기 하시곤 했습니다.
경비 일을 하시면서 가장 힘들어 하신 것은 동네 불량배들의 행패였습니다. 아파트 주위에 불량배들이 모여 있으면 아파트 주민들은 아이들이 불안해 한다면 경비실로 전화를 합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불량배들에게 자리를 옮겨 줄 것을 부탁하지만 쉽게 말을 듣지 않습니다. 경찰에 연락해 봐야 그들이 사고를 치지 않는 한 따로 조치를 취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가끔은 불량배들이 부모 뻘 되는 제 아버지의 멱살을 잡고 행패를 부리거나, 술병을 깨고 아파트 기물을 부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그들이 어질러 놓고 자리를 떠나면 그 곳의 청소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런 날은 아버지도 술로 마음을 다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아버지가 경비 일을 그만 두고 다른 일을 찾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동네 불량배들의 행패를 도무지 혼자 힘으로 감당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새삼스레 아버지의 경비일을 떠올리게 된 것은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이 60대 경비원을 폭행했다는 소식 때문입니다.
보도에 의하면 경비원이 술자리가 언제 끝날지 알아보기 위해 열려진 문 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다 눈이 마주치자 김태환 의원이 욕설을 해댔고, 나중엔 비닐포장된 건어물로 얼굴을 때렸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발길질을 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선거 때는 표를 달라고, 심부름 잘 하겠다고 노인정에서, 시장통에서 유권자를 향해 큰 절을 아끼지 않았을 국회의원이 단순히 눈이 마주쳤다고 60대 경비원을 폭행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거기에 더해 김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 일을 두고 "남자 입장에서 큰 폭행한 거 아닙니다. 사실 공인만 아니라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건데…"라고 변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60대 노인에게 욕설을 하고, 뺨을 때리고, 발길질을 한 것을 두고 큰 폭행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은 그의 행위가 결코 술김에 우발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국민을 우습게 보고, 욕설과 폭력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그의 평소 사고방식의 연장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그런 비정상적인 사고를 갖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직을 계속 수행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한나라당은 당기위원회를 소집하여 김 의원을 출당시키는 것이 평소 어른을 공경하는 정당이라 주장해 온 당의 정체성에 합당한 조치일 것입니다. 국회 차원에서도 윤리위원회를 소집하여 국회의원의 품위에 먹칠을 한 김 의원을 제명 조치하는 게 옳습니다.
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김 의원을 폭행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합니다. 경찰과 검찰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폭행사건으로 대충 처리해서는 안됩니다. 국민의 손에 의해 선출된 공직자가 국민을 대상으로 한 폭행입니다. 하극상도 이런 하극상이 없습니다.
특히 김 의원의 지역구인 구미(을) 지역 유권자들은 지금 바로 김태환 의원의 소환을 추진해야 합니다. 폭행 당한 경비원이 곧 우리 아버지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합니다.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국회의원은 두 번 다시 국회에 발을 붙일 수 없다는 선례를 만들어 놓아야 또 다른 아버지의 눈물만큼은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김태환 의원의 행위를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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