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도 평화를 원한다"

이슬람, 이슬람 사람들...김선일씨 사건 그 후

등록 2004.09.17 09:12수정 2004.09.1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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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인 티푸씨는 김선일씨 사건 이후 택시를 타면 운전기사가 “알라신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 경우를 자주 경험했다고 한다. 때가 때인지라 국적도 아니고 종교를 묻는 의도가 미심쩍고, 자신이 무슬림(이슬람교 신자)이라는 사실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지더라고 했다.

길거리에서 “꾸란에 김선일씨 죽이라고 했어?” “무슬림들은 왜 민간인을 죽여?” 하고 묻기도 하고, “알라신 믿는 사람 나쁜 놈들이야” 하고 말하는 이들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나도 알고 싶다. 그들이 왜 그랬는지. 어떤 종교건 신자 중에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지 않나. 이슬람교도 그렇다. 그런 사람들은 소수고 나는 무슬림으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전 세계에 17억(이슬람 자체 추산. 통계상으로는 13∼14억)이나 되는 무슬림을 모조리 싸잡아 테러리스트로 본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나?”

“나도 알고 싶다. 그들이 왜 그랬는지”

a 일요일 오후 안산 원곡동의 이슬람 식품 가게 앞에서 이야기 나누는 무슬림들

일요일 오후 안산 원곡동의 이슬람 식품 가게 앞에서 이야기 나누는 무슬림들 ⓒ 인권위 김윤섭

역시 방글라데시인 이스마일씨는 한 지역 이슬람 성원 앞에서 가게를 하고 있는데, 김선일씨가 살해당한 날 새벽 한국인 몇 명이 술 마시고 와서 “어떻게 사람이 사람 목을 자를 수 있느냐”고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그 일 때문에 무슬림이 욕 많이 먹었다. 그러나 그 짓을 저지른 이들은 무슬림 중에서도 말하자면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다. 제대로 이슬람을 공부했다면 그럴 수가 없다. 어떤 기술자도 만들 수 없는 이 아름다운 손을, 신은 우리에게 일하라고 주셨지 싸우거나 죽이라고 주지 않았다.”

파키스탄인 피다씨는 세 번, 아미르씨는 두 번 봉변을 당했다고 했다.

“직장 동료들은 서로 잘 알기 때문에 우리한테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 2주 동안은 인사말도 없이 싸늘했던 게 사실이다. 주로 거리나 지하철에서 불쾌한 일을 겪었다. ‘이슬람교는 사람 함부로 죽이냐’ ‘너희들은 적이다’라며, 어떤 이들은 우리를 모욕했다. 무슬림인 파키스탄인들도 이라크에서 두 명 살해당한 후 좀 진정된 것 같다.”


파키스탄인 모하메드씨는 길을 가다 시비 거는 무리를 만났다.

“그들은 나를 때리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인인 내 아내가 따지자 슬슬 물러갔다.”


안산에 있는 한 파키스탄 식당에는 술 취한 사람이 찾아와 반 시간 넘게 행패를 부렸다. 주인 칸씨에 따르면, 그 난동꾼은 손님들한테까지 ‘왜 죽였냐’ ‘○○놈’ ‘개○○’ 마구 욕설을 퍼붓다가 주인이 경찰을 부르자 사라졌다.

피다씨의 말대로 무슬림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인들이 같이 일하는 직장에서는 동료 사이라 길거리에서처럼 험한 일을 당하는 일은 드문 것 같다.

부산에 사는 방글라데시인 알롬씨는 김선일씨가 살해당한 다음날 한국인 동료가 “잠깐 이야기 좀 하자”며 불러서 “이슬람 종교는 사람 죽이는 종교냐”고 물었다고 한다. 알롬씨가 “이라크는 이슬람을 믿는 45개국 중 하나고 이라크 무슬림이 다 그런 것도 아니다”라고 해명하자 동료는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국적을 가진 이란계 한국인 토마스씨가 전해 주는 한 이란인의 사례는 우려스럽다. 그가 회사에 컴퓨터를 설치하려고 하자 회사측에서 ‘너는 위험한 인물이라 안 된다’며 막고, 한동안 출입마저 자유롭지 못하게 감시했다고 한다.

a 안산 이슬람 성원 앞에서 미스왁하는 무슬림들. 미스왁은 올리브 나무 등으로 만든 양치질 도구이다

안산 이슬람 성원 앞에서 미스왁하는 무슬림들. 미스왁은 올리브 나무 등으로 만든 양치질 도구이다 ⓒ 인권위 김윤섭

필자는 수십 명의 무슬림들을 만나 김선일씨 사건 때문에 부당한 일을 당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많은 이들이 “별일 없었다” “한국인들의 그 정도 반응은 이해할 만하다”고 답했다.

자기들도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상황은 괜찮았고, 일부 한국인들의 동요도 한 달이 지나자 잠잠해졌다는 것이다. “비자 문제 말고는 한국에서 일하는 데 아무 문제없다” “한국인들이 백인들보다 낫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면에 “그런 일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들이 약자고 겁나서 말을 못하는 것뿐이다. 만약 문제가 생겼다가는 쫓겨나니까”라는 의견도 있었다. 방글라데시인 자니씨는 이렇게 정리했다.

“무슬림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일한 지 오래됐지만 아직까지 무슬림이라고 죽거나 다친 적은 없지 않나. 김선일씨 사건 이후에 있었던 일들은 한때의 감정적 반응이었다.”

매일매일 인종 차별

그러나 과연 ‘한때’일까?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들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단체의 활동을 비난하는 반대 글이 많이 올라오는데, 이들 중에는 이슬람교가 나라의 장래를 잠식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예컨대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 사이트를 보자.

‘요즘 동남아, 아랍인들하고 결혼하는 한국 여자들이 있는데 이것은 한국 남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한국 여자가 사라져서 연애, 결혼하는 데 있어서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실질적인 피해이다.’(2003.12.6. ‘외국인’)

‘차후에 이슬람이 국내에서 뿌리를 내리면 어떡합니까? 조금만 이념이 틀리면 그때 가서는 국내 테러 분명히 생깁니다.’ (2003.6.24. ‘리비아 토목 기사’)


a 서울 한남동 이슬람 중앙성원에서 기도를 올리는 무슬림들. 금요일 정오에는 건물 바깥까지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찬다

서울 한남동 이슬람 중앙성원에서 기도를 올리는 무슬림들. 금요일 정오에는 건물 바깥까지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찬다 ⓒ 인권위 김윤섭

아랍=이슬람교=이주노동자=테러. 아랍계와 무슬림과 이주노동자와 테러리스트를 동일시하는 과도한 일반화, 즉 편견이 김선일씨 사건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있다.

‘합리적인 외국인 노동자 대책을 촉구하기 위하여 결성되었다’고 하고 불법체류자 추방을 요구하는 시위도 벌이는 ‘외국인노동자대책 시민연대’ 사이트에는 이런 공식 아닌 공식에 충실한 글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현재 중동국가에서 일어나고 태국 남부, 필리핀,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에서 일어나는 종교 전쟁 반정부군이 누굽니까? 바로 이슬람입니다…. 과거의 무슬림은 사우디나 쿠웨이트에서 돈 가져와서 포교하려고 학교에 투자했지만 이제는 이들이 이 땅에서 돈 벌어서 지들 세상 만들려하고 있습니다. 맨 몸뚱어리 하나 와서…’(2003.6.10. ‘동방의 등불’)

‘회교도의 정주화는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예에서 보듯이 회교도로 인한 테러 및 문화와 사회적 이질감이 매우 심합니다.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 특히 폐쇄적인 회교도들이 정주화하게 되면, 사회 통합이 매우 어렵게 될 것입니다. 특히 회교도들의 중혼 관습은 우리나라 결혼 제도에 배치되며, 수많은 갈등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03.7.17. ‘토박이’)

‘또한 인도네시아도 일단 이슬람권에 속하므로 이슬람권의 온갖 추악한 양태들을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므로 역시 요주의 대상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2003.7.29. ‘X슬람’)


이란계 한국인 토마스씨는 기독교인이고 사업가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얼굴색이 짙은 아랍계라는 이유만으로 매일매일 인종 차별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은 백인들한테는 못 그러면서 아랍계는 무턱대고 무시하고 적대감을 드러낸다고, 그는 꼬집었다.

이슬람에 대한 무관심과 차별

“17년 동안이나 한국에 살았지만 여기는 얼굴색이 검은 외국인들에게는 지옥 같은 나라다. 아랍계는 죄다 후진국 출신이고 무슬림이고 테러리스트라는 편견이 분명히 있고, 이런 편견이 있는 한 무슬림이 피해를 당하는 사례가 없을 리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난 6월 15일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 사이트에는 이란인 하미드씨가 국가기관으로부터 감시를 받고 있다고 호소하는 동영상이 떴다. 이란인들 각자에게 전화를 걸어 어느 기관인지, 왜 그러는지도 밝히지 않고 단지 나라가 시키는 일이라고 윽박지르며, 어디 살고 무슨 일을 하며 어떤 곳을 오가는지 따위를 꼬치꼬치 캐묻는다는 것이다. 하미드씨는 이란이 이라크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테러를 의심해서 그러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우리가 테러리스트라면 이렇게 일하고 있겠나. 우린 여기 일하러 왔는데, (국가기관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 직장 구할 때 외국인이니까 위험하다고 취직 못한다.”

필자는 그를 만나고자 했으나 이미 연락 두절 상태였다. 센터의 김재근 사무국장은 아마도 하미드씨가 그런 전화를 하도 많이 받아 스트레스 때문에 연락을 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떳떳하게 일해 돈 벌어 고향에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게 너무 어렵다. 경찰만 나타나면 합법적 체류자이든 불법 체류자이든 무조건 도망간다. 그만큼 주눅이 들어 있다. 김선일씨 사건 후 이슬람 성원을 보호한다고 경찰이 둘러싸자, 자기들을 잡으러 온 게 아닌데도 불법 체류 무슬림들은 기도 드리러 가지 못했다.”

a 이슬람 경전인 꾸란. 흔히 알려진 것처럼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을'이라는 말과 달리 꾸란은 평화를 가르치고 있다

이슬람 경전인 꾸란. 흔히 알려진 것처럼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을'이라는 말과 달리 꾸란은 평화를 가르치고 있다 ⓒ 인권위 김윤섭

아랍계, 무슬림, 이주노동자, 테러리스트의 동일시가 한국인들에게는 편견이겠지만 무슬림들에게는 숨이 막히는 차별이며, 특히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 될 수 있다. 파키스탄계 한국인 자말씨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김선일 씨의 죽음에 그토록 비통해하던 한국인들이, 왜 하루에 200∼300명씩 죽어가는 이라크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무관심한가?”

이슬람 중앙 성원의 이주화 선교교육국장은, 이라크인들이 싫다고 거절하건만 오히려 우리가 도와주겠다는데 왜 그러느냐고 화를 내는 게 온당하냐고 묻는다. 그들의 자존심과 문화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선일씨 사건으로 분통 터진 사람들이 우리 이슬람교도한테나마 하소연할 수 있었다는 걸 나는 차라리 다행으로 여긴다. 꾸란은 114장인데 113장이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고 묵묵히 실천할 뿐 신앙을 강요하지 않는다. 비록 생사여탈권을 점령자가 가진 상황에서 일부 무슬림들이 테러로밖에 저항할 수 없다 할지라도, 방법이 틀렸다. 악을 악으로 퇴치할 수 없다. 테러는 이슬람 교리상으로 변호될 수도 용납될 수도 없다.”

이행래 이맘(이슬람 교단 조직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말)은 세계를 구하는 방법은 비폭력밖에 없다고 말한다.

“경제는 세계 몇 위 국이고 말로는 세계화를 외치면서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은 최하위다. 다른 피부색이나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출신 국가 등에 강하게 집착한다.”

a 말레이시아 무슬림 한나씨

말레이시아 무슬림 한나씨 ⓒ 인권위 김윤섭

이희수(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 교수는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다양성을 받아들일 때 이슬람교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이라크에서는 기독교 교회에 대한 공격까지 벌어져 종교분쟁의 조짐이 보이고, 한국군을 이라크에 보내 놓았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추가 보복 테러를 당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우리가 종교 분쟁과 테러에 반대하기 위해서도 그보다 높은 차원의 인식을 가져야 한다. 종교를 정치나 국가, 민족 감정으로 매도해서는 안 되고, 개인 또한 상대방이 가진 신앙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 약 13만5000명(한국인 3만5000명, 외국인 10만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무슬림. 그들은 그 숫자만큼의 한 무리가 아니라 각자 인권을 가진 13만5000명의 존엄한 인간들이며 개성이 다른 개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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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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