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을 통해 전통이 살아납니다

원주 한지문화제2004를 다녀왔습니다

등록 2004.09.19 23:14수정 2004.09.2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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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원
이게 무엇일까요?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 껍질을 벗겨 말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저렇게 말린 한지 껍질을 삶고 가공해서 만든 한지의 수명이 천 년을 넘는다니 참 대단하지요.

어린 시절 닥나무는 껍질이 질기고 단단해서 팽이채를 만들면 최고였습니다. 겨울철 닥나무를 꺾어 만든 팽이채와 팽이만 있으면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갛게 변할 때까지 얼어붙은 논바닥 위에서 놀았습니다.


닥나무 껍질을 가공해서 만든 한지 중에 어린 시절 가장 많이 본 것이 문에 바르던 창호지입니다. 추석이 다가오면 어머니가 시장에 가서 창호지를 사오십니다. 오랫동안 사용해서 누렇게 변하고 때에 찌든 창호지를 벗겨내고 새로 사온 창호지를 문에 바릅니다.

할머니가 따오신 코스모스 꾳잎을 예쁘게 붙여 장식을 하기도 했지요. 새 창호지를 붙인 문을 달고 방안에 들어가면 방안이 대낮처럼 환해졌습니다.

요즘 문화 축제의 핵심은 체험입니다. 지난 19일까지 열린 원주 한지문화제2004에서도 한지를 만드는 과정 뿐만 아니라 한지를 소재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직접 참가해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엄마, 아빠 손잡고 찾아온 꼬마들이 다양한 체험 행사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꼬마 손님들은 한지를 이용해서 생활용품이나 공예품을 직접 만들어보며 즐거워했습니다.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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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꼬마라고 하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칠 제법 큰 녀석들도 체험 행사가 즐겁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천연 염색 그릇에 옷을 넣고 염색물이 골고루 옷에 스며들도록 손을 넣어 주무르는 녀석들의 표정에는 신기함과 어색함이 함께 묻어 있습니다.


이기원
한지로 소망등을 만들어 다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사월 초파일에 연등을 달 듯 한지 소망등에 자신의 꿈과 소망을 적어 소망등을 다는 행사입니다. 소망등 터널을 둘러보면 소망등을 만든 이들의 꿈과 희망이 담뿍 담겨 있습니다. 주로 가족들의 건강을 비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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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소망등 중에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단단하고 야무지게 만든 건 아니지만 소망등에 적은 글귀 만큼은 솔직함 그 자체입니다. 남자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 시험을 잘 보고 싶은 바람, 로또 복권 당첨돼 부자가 되고 싶은 바람 그리고 엄마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 등이 소망등에 숨김없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기원
저렇게 떠올린 게 한지라는 종이가 될 수 있다는 걸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입니다. 한지뜨기 체험의 장입니다. 자원봉사하는 형의 시범을 따라 녀석도 조금 후엔 한지를 떠올릴 것입니다. 저렇게 떠올린 한지를 골고루 펴서 말리면 보드랍고 질긴 한지가 된답니다.

전통은 박제된 것이 아니라 현실과 만나 살아 숨쉴 때 비로소 새로운 가치로 재창조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시절 창호지 정도로만 머물렀던 한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6년째 이어진 원주 한지문화제가 우수한 한지 문화의 전통을 새롭게 계승 발전시키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행사장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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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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