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용산기밀' 누설자 색출

[정치톺아보기 71] '자주파' 축출 우려... 노회찬 무책임폭로 문제

등록 2004.09.23 09:00수정 2004.09.23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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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3일 밤 9시45분]

청와대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에 뭔가 '사고'가 터진다는 징크스가 있다. 지난해 5월 노 대통령이 취임 후에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부터 생긴 징크스다.

그래서 더 대통령비서실과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는 노 대통령의 러시아 순방기간에 바싹 긴장한 채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

'비상근무'중인 청와대 발칵 뒤집은 노회찬 의원의 용산기지 이전 관련 문건 공개

a 22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외교통상부 공문을 공개한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22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외교통상부 공문을 공개한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런데 21일 노회찬(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직무감찰보고서(용산기지이전 협상평가 결과보고)를 공개한 데 이어 22일 다시 외교통상부장관이 주한 미국대사관에 보낸 공문(미삼22000-D******)을 공개하자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2급기밀이 일부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즉각 유출자 색출작업에 들어갔다.

청와대 비서실과 NSC에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노 의원이 공개한 공문(미삼22000-D******)이 노 의원 주장대로 외교부가 '주한 미대사관'에 보낸 것이 아니라 '주미 한국대사관'에 보낸 것이라는 점이다.

노회찬 의원은 22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여야 의원 63명이 지난 7월22일 용산기지 이전에 대한 감사청구안을 제출한 다음날 외교통상부가 주한 미국대사관에 '감사청구안이 9월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면서 공문내용을 공개한 뒤 외교부의 해명과 국회 청문회 개최를 요구했다.


그러나 노 의원이 내용을 공개한 이 공문은 '외교부가 주한 미대사관에 보낸 것'이라는 노 의원 주장과는 달리 외교부가 주미 한국대사관에 보낸 공문으로 확인됐다.

그러자 노 의원측은 "우리가 주미 한국대사관에 보낸 공문을 주한 미국대사관에 보낸 것으로 착각했다"며 실수를 인정했고, 외교부 당국자는 "노 의원이 공개한 문건은 외교부가 재외공관에 국내 정치상황에 대한 정보 공유차원에서 주미 한국대사관에 보낸 것"이라고 반박했다.


노회찬 의원도 해명 보도자료를 내 "용산기지 이전 관련 기자회견에서 외교부장관이 공문을 보낸 곳을 미대사관이 아니라 주미대사라 한 것은 제보자의 착오였음이 밝혀졌다"면서 "중요 사안의 제보에 대해 보다 면밀히 확인하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외교부장관이 '미국간첩'이라면 노회찬 의원은 어느 나라 국회의원인가?

노 의원은 그러나 "제보자와의 정보교환 과정에서 발생한 착오가 진실을 덮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의, 저의 문제의식은 동일하다"고 해명했다. 요컨대 실수를 인정해도 이 문제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a 직무감찰보고서 전문을 공개한 '평통사' 사이트의 반기문 장관을 패러디한 포스터.

직무감찰보고서 전문을 공개한 '평통사' 사이트의 반기문 장관을 패러디한 포스터.

그러나 노 의원의 이런 주장은 옹색하다. 이날 오전 기자회견문의 제목은 '외교부 장관은 어느 나라 장관인가'였다. 기자회견문의 첫 문장도 "외교통상부장관은 어느 나라 장관인가"라는 힐문이었다. 회견문의 부제는 '외교부 장관이 미대사관으로 보낸 충격적인 공문'이었다.

즉 노 의원 주장대로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이 주한 미국대사에게 그런 공문을 보냈기에 '충격적인 공문'이고, '어느 나라 장관인가'라는 '섹시한 제목'이 성립한 것이다. 또 그렇다면 반기문 외교부장관은 한국 장관이 아니라 '미국간첩' 아니냐는 힐난이 나올 법도 하다.

그래서 노 의원이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외교부 장관이 이런 공문을 미대사관에 보낸 이유가 무엇이냐"면서 "여야의원이 제출한 감사청구안에 대해 장관이 '부결' 운운하는 것은 입법부의 권한침해"라고 따져도 '말'이 성립된 것이다.

그런데 그 공문이 주미 한국대사에게 보낸 것이라면 문제의 본질이 180도 달라진다. 그런데도 노 의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의, 저의 문제의식은 동일하다"면서 "착오가 진실을 덮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옹색하기 짝이 없다.

오히려 노 의원은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가장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히 상대국이 있는 외교관련 사안에 대해 협상전략과 비밀을 노출하는 무책임한 폭로를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국익을 고려하지 않은 '노회찬 의원은 어느 나라 의원인가'라는 힐난도 나올 법하다.

청와대, 용산기지이전협상 관련 대대적인 기밀유출자 색출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직무감찰보고서에서 지적한 협상팀과 NSC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직무감찰보고서에서 지적한 대로 문제의 '90년 각서'는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외국과의 조약은 반드시 국회의 비준을 받도록 한 헌법 제60조 1항을 무시하고 국회 동의도 받지 않아 체결 당시부터 위헌이라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따라서 한국 정부 안에서도 일부 인사들, 특히 외교통상부 조약국이 중심이 되어 90년 각서를 그대로 인정하고 시작하는 용산미군기지 이전협상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나 외교통상부 북미국, 국방부 정책실, 그리고 이 협상의 감독책임이 있는 NSC는 조약국의 문제제기를 무시했다.

이렇게 해서 조약국을 한편으로 하고, 북미국, 국방부 정책실, NSC를 한편으로 한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논란이 분분하자 지난해 10월부터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조사에 나섰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11월11일과 14일 당시 서주석 NSC 전략기획실장, 위성락 외교부 북미국장,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 민간인 법률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문제점을 정리했다. 그 결과가 바로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용산기지 이전협상 평가결과 보고'라는 제목의 직무감찰 보고서인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NSC는 22일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에서 직무감찰보고서 전문을 공개하고 <오마이뉴스>에서 "친미 용산협상팀에 '국익'은 없었다" 제목의 기사로 협상팀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협상전략과 비밀을 외부에 유출했다는 것만을 문제 삼아 이날 대대적인 색출소동을 벌였다. 실제로 일부 행정관들은 이날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기밀유출자 색출 명목으로 이번에 '자주파' 축출될 가능성도

특히 청와대는 노회찬 의원이 공개한 "MOU(용산기지 이전 양해각서)의 법절차적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각서 내용을 포괄협정(UA)와 이행합의서(IA)로 나눠 UA만을 국회에 상정하기로 한다"는 '미래한미동맹정책구성회의(FOTA) 3차회의' 속기록 내용과 관련 문건이 국가기밀임을 들어 기밀 유출자를 색출하고 23일 노 대통령이 귀국하기 전에 관련자를 검찰에 고발 조처하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나 2급비밀로 분류된 'FOTA 3차회의' 속기록 등은 기밀문건이 노 의원측에 유출된 것이 아니라 노 의원의 정책보좌관이 국방부 문서 열람 통해 메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밖에 지난 11월 이석태 공직기강비서관이 주재한 평가회의에 참석한 NSC 서주석 실장 외 1인, 외교부 위성락 북미국장과 조약과장 외 3인, 국방부 차영구 정책실장 외 3인,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1인, 민간 전문가인 김영석 이대 법대 교수와 SOFA 전문가 이정희 변호사 등이 1차적인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당시 평가회의의 한 참석자는 "요약보고서만 보고 원문은 못봤다"면서 "그러나 당연히 조사를 받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청와대 보고서는 다 기밀이다"면서 "그러나 평통사에서 공개한 직무감찰보고서 내용은 충격적이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본질을 짚어야지 기밀유출이라는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그렇지 않아도 소수파인 이른바 '자주파'의 싹을 자르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NSC 고위 관계자는 공교롭게도 직무감찰보고서 문건이 공개되기 직전에 발매된 <신동아>의 'NSC 고위관계자의 직격토로'라는 부제를 단 인터뷰 기사에서 용산기지 이전협상을 비판해온 '자주파'를 맹비난해 눈길을 끈다.

이 고위 관계자는 "내가 대통령 지침 챙기고 있지, 나라 팔아먹고 있습니까"라며 청와대·정부 일각의 용산협상 비판론이 지나치게 파괴적·적대적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 고위 관계자는 용산기지 이전협상을 비판한 예전 외교부 조약국 사람들에 대해 인내심으로 참고 있을 뿐이라고 말해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신동아>와 익명으로 인터뷰한 이 'NSC 고위 관계자'는 이종석 NSC 사무차장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종석 차장이 이번 기회에 기밀 유출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이른바 '자주파'로 분류되는 견제·비판 세력을 대통령비서실과 NSC에서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종석 차장은 "기밀 유출자 조사는 민정수석실에서 하는 것이지 NSC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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