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밭에서 소설 주인공이 되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의 무대 봉평에 다녀오다

등록 2004.09.23 09:32수정 2004.09.24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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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나는 '봉평'에 가보고 싶었다. 가산 이효석의 고향이기도 하거니와 우리나라 단편문학의 백미라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때만 되면 신문과 방송, 잡지까지 효석문화제를 홍보하기에 바빴고 심지어 여행관련 책자에서조차 봉평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여행코스 중 하나였다.

"도대체 뭐가 얼마나 그렇게 좋길래 이리들 난리일까?"

이런 호기심이 어느 사이엔가 동경으로 바뀌어 어서 빨리 때가 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되었다. 마침내 그 '때'가 왔다. 8월부터 이미 9월에 있을 효석문화제 여행상품이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서둘러 예약을 했다. 그리고 뿌듯한 마음으로 호기롭게 집사람에게 얘기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내는 화를 내고 있었다. 왜 남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예약을 했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난 절대로 안 가!"

그 후 틈만 나면 아내의 마음을 돌려보려 노력을 했으나 모든 것이 허사였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예약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마지막 비상수단을 꺼내 들었다. 책을 읽어 주겠다며 10살과 7살된 아이들을 부른 다음 아내가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바로 '메밀꽃 필 무렵'이었다.


유난히 책 읽는 걸 좋아하는 큰아이는 단 한 번 읽어준 소설의 줄거리를 벌써 '이해'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질문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 그럼 동이가 허생원의 아들인가요?"

아들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많이 풀어진 눈치였다. 나는 회심의 결정타를 날렸다.


"이 여행은 앞으로 우리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 국어공부를 하는 동안 빠지지 않고 나오는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실제 무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어찌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아내는 결국 '항복'했다.

여행사를 통해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이번 여행은 이른 아침에 출발해야 했는데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그러나 출발지에 도착해서 보니 예약자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모였다. 참으로 대단한 열정들이다.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뚫고 봉평으로 출발!

허브나라를 둘러보고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했다. 비가 내렸지만 소설속에 등장했던 당나귀를 보고 큰 아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섶다리도 건넜다. 소금을 뿌린 듯 새하얀 메밀꽃밭도 구경했다. 점심으로는 메밀국수와 메밀전, 그리고 버스를 타고 와야 했던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인 '동동주'를 곁들였다.

기온이 내려가 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는 '국밥'같은 걸 기대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맛은 있었으나 차가운 음식만 먹었더니 한기가 서려 몸이 오스오슬 떨려왔다.

식당을 나와 여기저기 둘러 보았다. 효석문화제를 진행하는 측에서 장이 서지 않는 날 관광객을 위해 봉평장을 재현해 놓은 곳이 있었는데 들어가 보니 바로 여기 펄펄 끓는 '국밥'이 있다. 아뿔싸! 여기서 점심을 먹을 걸!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토종닭으로 닭싸움을 하는 곳도 있고 공연을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골동품 비슷한 기념품을 팔기도 한다. 시골 할아버지는 짚신을 만들어 와 펼쳐 놓으셨다. 나는 청나라 시대의 중국 동전을 몇 개 골랐고 큰 아이는 짚신을 한 켤레 샀다.

a 장터에서 짚신을 팔던 할아버지. 조금 깎아달라고 하자 "깎지 말고 그냥 사!" 하신다.

장터에서 짚신을 팔던 할아버지. 조금 깎아달라고 하자 "깎지 말고 그냥 사!" 하신다. ⓒ 이양훈

구경을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다 되었다.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생각해 본다. 비가 오는 등 날씨가 좋지 않아 기대했던 만큼 감동이 있었던 여행은 아니었다. 또 머릿속에서 그렸던 것과 달리 메밀꽃밭도 그리 대단치는 않았다. 그러나 자그마한 것 하나라도 잘 가꾸어 보여주려고 하는 노력은 마땅히 칭찬받을 만한 것이었다.

당나귀를 갖다 놓았는가 하면 물레방아간을 꾸며놓기도 했고 섶다리와 징검다리를 놓아 실제로 건널 수 있도록 했다. 장터를 만들어 기념품이나 메밀음식을 비싸지 않은 가격에 팔기도 했다.

화려한 볼거리와 맛있는 먹거리가 준비된 쾌적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국어공부를 하면서 '가산 이효석'이라는 이름과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알게 될 때에는 반드시 오늘의 이 귀중한 체험을 기억하리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a 주최측에서 만들어 놓은 듯한 '섶다리'와 '징검다리'

주최측에서 만들어 놓은 듯한 '섶다리'와 '징검다리' ⓒ 이양훈


a 메밀꽃밭 입구에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당나귀앞에서 한 장

메밀꽃밭 입구에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당나귀앞에서 한 장 ⓒ 이양훈


a 메밀꽃밭에서도 한 장

메밀꽃밭에서도 한 장 ⓒ 이양훈


a 당나귀 네 마리가 있었다.

당나귀 네 마리가 있었다. ⓒ 이양훈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훗날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이 소설을 읽게 되었을 때 오늘 보았던 이 새하얀 '메밀꽃밭'과 '당나귀'와 '물레방아간', 그리고 장터에서 짚신 팔던 할아버지까지도 다함께 우리 아이들과 함께 친근한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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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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