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여문 산초로 장아찌 만들었습니다

등록 2004.09.23 14:01수정 2004.09.2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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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덜 여문 산초. 산초나무 근처에만 가도 산초향이 진동을 한다.

덜 여문 산초. 산초나무 근처에만 가도 산초향이 진동을 한다. ⓒ 박철

오늘 날씨가 좋아 산초를 따러 갔습니다. 온 들판이 황금물결로 출렁이고 있습니다. 가을 햇살이 머문 곳마다 환하게 빛이 납니다.


아직 산초가 완전하게 여문 것은 아니지만, 덜 여물었을 때 산초를 따다 된장에 박으면 산초향이 물씬 풍기는 산초장아찌가 되지요. 석모도를 마주하고 있는 수정산으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산 들머리부터 수풀이 우거졌는데, 가시나무에 찔려서 움직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산초나무에 산초가 별로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산초나무는 많은데 열매가 없습니다. 누가 산초를 따 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이 다녀간 흔적은 없는데 산초나무에 산초는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새들이 다 쪼아먹은 것도 아닐 테고, 짐작하기로는 올해 비가 자주 와서 수정이 안 되어 열매가 맺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쩌다 산초나무 끝에 산초가 달린 것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두어 시간 산 속에서 헤맨 끝에 간신히 한 됫박 남짓 산초를 땄습니다. 이만하면 된장에 박아 장아찌를 만들기에는 충분한 양이다 싶어 욕심 부리지 않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3년 전 가을이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산초 기름이 해소, 천식에 좋은데 시중에서 산초 기름 한 병이(소주 2홉)이 7-8만원 한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평소 내가 산이나 숲에서 지내는 것이 좋아 산 속을 돌아다니다가 교동에 유난히 산초나무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a 키가 작은 여자가 나보다 산초를 더 잘 딴다.

키가 작은 여자가 나보다 산초를 더 잘 딴다. ⓒ 박철

그런데 교동사람들은 산초나무나 산초기름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퍼뜩 산초를 따다가 기름을 만들어 팔면 제법 돈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때 아딧줄이 컴퓨터 사달라고 아침저녁으로 노래를 불렀던 때였지요. 잘 되었다 싶어 아내와 나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배낭을 메고 산을 올랐습니다.


산 속 숲은 여름내 자란 잡목으로 우거져 있었습니다. 산초나무에는 가지마다 뾰족한 가시가 달려 있어서 산초를 따다가 가시가 손가락에 박히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열 손가락에 배구선수들처럼 반창고를 칭칭 감고 하루에 7-8시간을 매달려 산초를 땄습니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갔지만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따면 아내와 합쳐서 두 말 정도 땄습니다.

아내와는 나는 눈만 빼꼼하고 완전 깜둥이가 되었습니다. 온 몸은 가시에 찔리고 긁혀 성한 데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완전 녹초가 되었습니다. 아딧줄은 엄마 아빠가 자기 컴퓨터 사주려고 산초를 따러 다니는 것을 알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a 잘 익은 산초씨. 씨가 새까맣다.

잘 익은 산초씨. 씨가 새까맣다. ⓒ 박철

그렇게 보름 동안 산초를 땄더니 두 가마를 땄습니다. 산초 크기가 일반 콩의 10분의 1도 안 될 정도로 작은데 그걸 두 가마니를 땄으니 어느 정도 양인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산초를 잘 말려서 도리깨질을 했습니다. 그러면 껍질은 벗겨지고 까만 씨만 톡 튀어나오지요. 산초 껍질은 추어탕을 만들 때 향신료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씨는 기름을 내어 아침에 공복으로 한 숟갈씩 석 달을 먹으면 오래된 해소 천식도 낫는다고 합니다. 강원도에서는 두부를 산초기름에 구워먹기도 하지요.

까만 산초 씨 알갱이를 자루에 담아 강화 재래시장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강화에서 산초기름을 짜주는 데가 딱 한 군데밖에 없었습니다. 독특한 향이 있기 때문에 산초기름을 짜고 나면 다른 기름을 짤 수 없다고 기름집에서 잘 짜주지 않습니다.

산초를 담은 자루를 어깨에 지고 재래시장으로 들어갔더니 산초 향이 진동을 합니다. 그랬더니 시장에서 한약 재료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산초냄새를 맡고 너댓 분이 달려들어 산초를 팔라는 것입니다. 아저씨가 받고 싶은 대로 값을 후하게 쳐줄 테니 팔라고 사정을 합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산초기름은 거의가 중국산이고, 산초기름은 엄청난 노동력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산초 채취를 잘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기름을 짜서 팔면 부가가치가 훨씬 높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팔지 않고 기름을 짰습니다. 생각만큼 기름이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속으로 저걸 다 팔면 한 160만원쯤은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름을 짜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부자가 된 것 같고 속이 뿌듯했습니다.

a 산초씨를 잔 가지와 함께 적당량을 된장에 넣고 버무려 2-3달 지나 숙성된 다음 먹으면 된다.

산초씨를 잔 가지와 함께 적당량을 된장에 넣고 버무려 2-3달 지나 숙성된 다음 먹으면 된다. ⓒ 박철

내가 산초기름을 짜 가지고 왔다는 소문을 듣고, 그리고 산초기름이 해소 천식에 좋다는 얘길 동네 사람들이 듣고는 한 병만 팔라고 부탁을 하는데, 잘 아는 처지에 돈을 받고 팔기는 뭐해서 그냥 주었습니다.

또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에게 한 병씩 선물로 주었지요. 그랬더니 누구는 그냥 주고 누구는 돈을 받고 팔겠는가 싶어 한 병 두 병 주다보니 한 달만에 산초기름이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단돈 만원도 벌지 못하고 산초기름 장사는 끝났습니다. 그때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 교인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더러 팔아주기도 하지만 내가 만든 물건은 한 번도 돈 받고 판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채취한 덜 여문 산초를 물에 잘 씻어 장아찌를 만들었습니다. 두 병을 만들어 한 병은 우리가 먹고 한 병은 내가 존경하는 선배에게 보내려고 합니다. 된장에 산초를 넣어 버무리면서 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산초 된장 장아찌를 대량으로 만들어서 한번 팔아볼까? 돈이 될 것 같은데?"

"더 크게 망해보고 싶으면 한 번 해보세요. 그러나 나는 끌어들이지 말고…."


곰삭은 산초 된장 장아찌가 어떤 맛일지 궁금합니다. 돼지고기 삼겹살을 호박 쌈에 얹어 산초 된장을 발라먹으면 그 맛이 끝내주겠지요. 생각만 해도 침이 넘어가네요. 얼마 되지도 않게 따 왔는데 온 집안에 산초향이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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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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