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때를 볼 줄 알아야 고기를 잡는다

[현장경험] 무안군 청계면 구로리 어민들의 '개막이'

등록 2004.09.24 10:30수정 2004.09.2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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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해안의 전통 고기잡이는 간단한 도구나 바닷물의 흐름을 이용하는 죽방렴, 석방렴(독살), 개막이(전라남도에서는 '개맥이'라 부른다), 덤장, 밀그물질 등이다.


갯벌은 물이 빠지면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다양한 형태의 단순한 고기잡이 방법들이 성했었다. 호미나 조새를 이용해서 바지락이나 석화를 채취하거나 돌을 쌓거나 대나무를 엮어 물길을 막아 고기를 잡았다.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고기잡이 방법은 덤장, 개막이, 밀그물질이 있고, 석방렴은 해남, 신안, 무안, 부안 등 서남해역 흔적이 남아 있다. 죽방렴은 남해군 창선면 지족마을 손도라는 지족해협에 재현되어 고기잡이는 물론 소중한 문화자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a 구로리 갯벌에 설치된 건간망(개막이)

구로리 갯벌에 설치된 건간망(개막이) ⓒ 김준


개막이, 전통어업에서 불법어업까지

전통 고기잡이 중 지금도 많이 이용하는 어법 중의 하나가 개막이다. 일명 건간망(建干網)이라 불리는 개막이는 조석 차이가 큰 곳에서 조류를 이용하여 수산동물을 채포하는 것으로 띠 형태의 모양을 한 그물을 이용한다.

개막이는 5m여 간격으로 2-5m 대나무나 참나무로 만든 고정목을 갯벌에 박고 울타리처럼 그물을 쳐 고기의 퇴로를 막아 고기를 잡는 어구이다.


개막이 그물의 종류는 지역에 따라, 해양 환경에 따라 다양하지만, 활처럼 휜 모양(궁형), 직선형, V형, 함정형, 임통형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개막이 그물은 활처럼 휜 궁형으로 갯골이 발달하지 않고 바닥이 평평해 바닷물의 들고남이 그물을 설치한 전 구간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환경에서 이용한다.

직선형은 그물의 양 끝이 육지에 닿을 정도로 깊숙하게 만입된 곳에 설치하며, V형은 갯골을 이용해 설치한다.


그물의 형태는 아니지만 함정형은 개막이 그물의 양 끝에 사각 모양의 함정장치를 만들고 입구를 좁게 만들어 간조 때 들어온 고기가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게 고안하였다.

임통형은 개막이 그물의 중간에 몇 개의 긴 자루 모양의 쑤기통(자루그물)을 만들어 간조 때 조류에 따라 바다로 후퇴하는 고기들이 자연스레 모이도록 하는 장치를 한 그물이다.

지금은 건간망을 부업거리 정도로 여기지만 1970년대까지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림을 펼 수 있는 최고의 돈벌이였다. 특별한 기술과 제약 없이 개막이를 해왔지만, 지금은 건간망을 하기 위해서는 수산업법 제41조 제3항의 규정에 의한 정치성구획어업허가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마을지선어장이라 하더라도 개막이 그물을 마음대로 설치할 수 없다.

하지만 서남해 해역의 건간망 대부분은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다. 조상 대대로 갯골을 막아서 고기를 잡고, 새우를 잡아 왔기 때문에 불법인 줄도 모르고 그물을 치는 어민들도 많다.

a 개막이 그물의 쑤기통에서 고기를 턴다.

개막이 그물의 쑤기통에서 고기를 턴다. ⓒ 김준


a 물이 완전히 빠지면 그물 안쪽에 걸려 있는 고기를 줍는다. 수박서리처럼 바닷가 아이들에게는 개막이 그물에서 밤중에 고기를 슬쩍하는 '숭어도둑' 놀이가 있었다.

물이 완전히 빠지면 그물 안쪽에 걸려 있는 고기를 줍는다. 수박서리처럼 바닷가 아이들에게는 개막이 그물에서 밤중에 고기를 슬쩍하는 '숭어도둑' 놀이가 있었다. ⓒ 김준


개막이를 하는 사람들

무안군에서 함평에 이르는 갯벌에는 많은 건간망들이 설치되어 있다. 특히 청계면 복길, 구로, 노대, 톱머리 해수욕장에 이르는 곳에 30여개의 건간망이 빼곡이 바다를 메우고 있다. 작은 것은 300m에서 큰 것은 1000m에 이르는 건간망은 갯벌과 물길에 따라 모양도 매우 다양하다.

남해의 죽방렴이 소중한 문화자원이듯 건간망도 바다와 어민 생업을 고려한 자원으로 전환한다면 볼거리는 물론 다양한 프로그램과 연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민들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하겠지만. 대형 건간망을 운영하고 있는 정순환씨의 개막이 이야기다.

"내 것까지 해서 강정리까지 열 두어 개 정도, 톰머리에도 열 두 세개 정도. 도대 사람들이 많이 하죠. 오도리 잡을 때만 하지요. 많이는 못 잡고. 각자 팔기도 하고 내가 걷어오기도 하고. 소재지에 가서 팔고, 시장에 활어차가 와서가 가져가요. 키로(kg)에 생산자들 우리가 주는 가격이 3만5천원에서 4만원. 2키로만 해도 일당 나와요.

하루에 두 물씩 봐요. 두 번 보기 힘드니까 하루에 한 번만 보지요. 3개월 동안, 8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3개월간 봐요. 많이 들 때는 3-4키로도 들고, 안들 때는 1키로도 안 들고. 강정리는 소형인데 바탕이 좋은 데는 4-5백은 해요. 농사지면서 하니까. 소득이 괜찮지요."

개막이는 자리를 팔고 살 수 있다. 엄격하게 말하면 자리를 사는 것이 아니고 어구를 사는 것이지만 사실은 자리가 중요하다. 자리를 사고 팔 수 없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어구가 팔리는 것일 뿐이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개막이 그물을 설치해 운영하는 경우는 우선권이 있으며 자식한테 줄 수도 있다.

a 겨울이 오면 그물을 철거한다(함평 돌머리, 03.12)

겨울이 오면 그물을 철거한다(함평 돌머리, 03.12) ⓒ 김준


a 그물 철거(03.12)

그물 철거(03.12) ⓒ 김준


물을 볼 줄 알아야

고기를 잡는 일이 모두 그렇지만 개막이도 물때를 잘 맞춰야 실한 고기를 잡을 수 있다.

개막이를 하기는 물이 살아 있는 것보다는 죽어있는 것이 더 좋다. 그래서 물때가 '사리'보다는 '조금'이 더 좋아, 두 물부터 다섯 물까지 물을 볼 수 있다(개막이를 할 수 있다). 태풍 등 기상이변이 없다면, 한 사리에 일주일은 개막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달에 보름 정도는 그물을 칠 수 있다.

운이 좋은 날은 하루에 아침물때, 오후물때 '두 물'(2회 그물을 턴다)을 볼 수도 있다. 많은 경우 개막이는 아침물때를 보는데, 아침에 들물일 경우에는 오후에 그물을 털어야 한다.

아침물때에는 새우 등이 드는 경우가 많지만, 오후 물때에는 잡어들이 주로 잡힌다. 주로 잡히는 고기들은 보리새우, 대하, 꼴뚜기, 밴댕이, 전어, 숭어, 망둥어 등인데, 아침물때에 들어온 고기들이 시장성이 있다.

이렇게 잡은 고기들은 많은 경우 젓갈용으로 이용되고, 일부는 시장에 판매한다. 무안 구로리에서 잡힌 고기들은 무안읍으로 가지고 가서 개별 판매하며, 보리새우 등 횟감으로 값이 나가는 것들은 수집상이 와서 걷어간다.

개막이는 봄철과 가을철로 나누어서 두 철 동안 이루어진다. 봄철은 숭어가 주어종이라면, 가을에는 보리새우가 돈이 된다. 지난 9월 5일 구로 앞 개막이 그물로 잡은 고기들이다.

"숭어, 농어, 운저리, 전어, 돔, 꽁치, 보리새우, 바다장어, 삼식이,
요것 전어새끼 젓 담아서 겨울에 먹죠. 대미젓이라고, 이것도 젓 담고 배드락
숭어는 쌀무치 모치 참둥어 묵시리 댕가리 숭어 그래요. 크기에 따라.
농어새끼를 껄떡이라고 해, 농어새끼는 구워먹거나 찌개 해 먹죠
이것은 오늘 처음 물 본 것이요. 이것은 싹시라고 죽은 고기를 붙어서 파묵어."

a 개막이로 잡은 고기들

개막이로 잡은 고기들 ⓒ 김준


돈이 되는 보리새우, 맛이 좋은 전어

건간망으로 잡은 고기 중 가장 값이 나가는 것은 단연 보리새우(일본말 '오도리'라 부르는데 어민들은 보리새우보다는 오도리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이며, 맛이 좋기로는 전어를 꼽는다.

보리새우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낮 물때에는 보리새우가 드는 경우는 드물다. 저녁에 그물에 들어 아침물에 그것도 음력으로 보름 전후, 그믐 전후에 많이 볼 수 있다. 구로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정순환씨는 며칠 전 보리새우만 10kg을 잡았다.

산지에서 보리새우 1kg에 중간 수집상들이 3-4만원에 가져가기 때문에 10kg면 30만원은 훨씬 넘는 수익이다. 맨날 이런 날은 아니지만 이런 맛에 개막이를 한다는 것이 정씨의 이야기이다.

"보름에 일주일은 좋지요. 지난번에 오도리만 10키로 최소 30만원에서 40만원이요. 그런 목을 보고 하는 거죠. 오도리는 야행성이니까 아침물때에 좋고, 낮에는 운저리 등 잡어 들이죠. 아침물때라고 하는데 저녁에 들어간 물때에 털고, 썰물에 고기가 다들어가요.

물이 죽어야써, 죽어야 고기가 들어요. 사리 때는 조류가 빨라요. 고기가 별로 안 잡혀. 큰배 중선배들은 조금 때 들어오지만 우리는 조금 때가 좋죠. 조금 무심 한 물 두 물 다섯 물까지 좋고, 일곱 물부터는 물이 쎄서 안 되고."

a 지역 축제 프로그램으로 변모한 개막이

지역 축제 프로그램으로 변모한 개막이 ⓒ 김준


축제 단골 개막이, 어민 생업 우선 고려해야

요즘 개막이는 고기잡이보다는 축제 프로그램으로 더욱 인기가 있다. 지방자치 이후 앞 다투어 새로운 축제들이 생겨나고, 단체장이 바뀌면 또 다른 축제가 만들어지고 있다. '축제공화국'이라고 비아냥대는 소리도 들린다.

서남해역의 지방자치단체들도 수산자원, 해양문화자원 등을 이용해 대규모 축제를 만들고, 어촌마을은 어촌계를 중심으로 한 작은 축제들도 셀 수 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어민조직이나 어촌계 등이 직접 주관하는 축제라면 그래도 다행이지만, 일방적으로 행정기관이 결정해 추진하는 경우에는 어민들은 생업공간을 종종 도시민들의 호기심 충족을 위한 체험공간으로 제공해야 한다.

대표적인 체험 프로그램이 갯벌체험이며, 여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개막이다. 대형축제의 한 프로그램으로 개막이 프로그램을 넣는 경우도 있지만, 개막이 프로그램을 연중 행사로 추진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의 경우도 지역활성화를 위한 '체험관광'이 지자체별로 추진되고 있다. 히라도라는 일본 큐슈의 작은 섬도 '어부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직접 고기잡이는 물론 건조 가공하는 체험 행사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자체가 어민들에게 어떤 지원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체험공간과 생업공간을 분명하게 구분하여 어민들의 생업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어민들의 생업보장이 가장 중요한 사회보장 정책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제가 주민들의 생업공간을 파괴하고, 해양생태와 해양문화를 제대로 공유하지 못하고 도시민들을 체험이라는 이름으로 바다로 갯벌로 넣어두고 얼마나 다녀갔는지 숫자만 헤아리는 짓만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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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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