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75

두 개의 천뢰탄 (3)

등록 2004.10.01 14:42수정 2004.10.0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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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은 오랜 세월 동안 왜문을 돌아다녔다.

오랫동안 밥 먹여 기른 개가 주인을 잡아먹으려 달려들면 어찌 해야 하는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백이면 백 그 개는 미친개이니 반드시 죽여야 한다 할 것이다.


무단히 침입하여 선무곡의 산하를 피로 물들이며 수많은 인명을 말살한 왜문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던 화담은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일념에 풍찬노숙하며 산지사방을 쏘다닌 것이다.

병법(兵法)에 이르기를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하였다. 상대의 허실을 알면 결코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래 전, 왜문에서 선무곡을 집어삼키려는 음모를 꾸몄을 때에도 왜문에서 파견한 수많은 간세들이 선무곡 산하(山河)를 이 잡듯 뒤지고 다녔다. 지형지세를 간파하기 위함이었다.

화담이 방랑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왜문은 외세로부터 침탈을 당한 적이 없는 곳이기에 다소 경계가 느슨한 편이었다. 따라서 기습적인 공격을 가하면, 적은 힘으로도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여 지형지세를 완벽하게 파악한 뒤 최상의 공격방법을 구상하려 하였던 것이다.


뜻을 세우고 잠입한 화담은 수십 년 동안이나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끝에 모든 지형지세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지형도(地形圖)를 제작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는 동안 그는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이게 되었다. 왜문을 응징할 가망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생각하였기 때문에 늘 이맛살을 찌푸리고 다닌 결과이다.


하여 피부가 닭의 그것처럼 쭈글쭈글해지고 머리카락은 학의 깃털처럼 온통 세어버려 계피학발(鷄皮鶴髮)이 된 것이다.

왜문을 응징하려면 전략도 전략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막강한 병장기나 힘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이 지형도를 만드는 동안 막강한 위력을 지닌 병장기를 준비하는 한편 제자들의 무공이 고강해지도록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냈어야 한다.

이러한 일이 가능하도록 할 사람들은 장로원 소속 장로들이다. 그들의 재가가 없으면 움츠렸다 뛰려 해도 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로들은 온갖 부정부패한 방법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한편 자신이 속한 붕당의 이익만을 추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이뤄낸 것이 없었다.

장로원이 존경받고 능력 있는 장로들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백 번 죽여도 시원치 않을 개 같은 놈들만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왜문은 남몰래 병장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무적검에 못지않은 막강한 병장기들을 만들어냈다. 무림천자성의 밑을 닦아주는 동안 제조비법을 하나둘 빼간 결과이다.

평생 염원하던 일이 무산되었을 때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화담은 왜문으로 향하기 전 아들로 하여금 선무곡의 대소사를 처리할 동량(棟梁 : 마룻대와 들보)이 되도록 훈육한 바 있다. 따라서 자신이 없더라고 훌륭히 일을 처리해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제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닌 준재(俊才)라 할지라도 제 뜻을 펼칠 장(場)이 없으면 범재(凡才)나 다름없다는 것을!

호법이 된 화담의 아들은 장로원에 나아가 자주 방위를 하려면 힘을 키워야 한다 열변을 토하였다. 하지만 이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만일 선무곡에 위기가 닥치면 무림천자성이 나서서 지켜줄 터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언제까지고 외세에 안보를 위탁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며 눈물로 호소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는 나날이 지났다.

그러던 중 그의 주장이 극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변(異變)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이를 율곡사업(栗谷事業)이라 칭하였다.

늘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던 장로들이 밤나무 무성한 계곡에서 잔뜩 술에 취한 채 재가(裁可)하였기에 붙은 명칭이다.

장로들은 맨 정신일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한 화담의 아들이 사비(私費)를 들여 잔뜩 취하도록 만든 결과였다.

천신만고 끝에 재가된 율곡사업의 요점은 선무곡의 자주 방위를 위해 제자들을 보다 강하게 조련함과 동시에 좋은 병장기를 개발해 내거나 외부로부터 구입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막대한 은자가 소모될 일이다.

화담의 아들은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장로들이 개떼처럼 달려들어 뜯어먹기 바빴기 때문이다.

점창파에서 개발한 파암노를 구매하려다 결정적인 순간에 무림천자성의 그저 그런 병기인 만한검으로 바뀐 것도 이런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율곡사업은 장로와 호법 등 수뇌부들의 배만 불리는 사업이 되면서 허울만 남게 되었다.

이일로 치부(致富)를 한 장로와 호법 등은 백 번 죽여도 시원치 않을 반역자나 마찬가지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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