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배려한 사대부집 실용과학의 놀라움

실학사상이 녹아있는 윤증 고택에 가다

등록 2004.10.02 02:18수정 2004.10.02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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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대 지어진 윤증 고택
1700년대 지어진 윤증 고택윤형권
사대부 집안의 제삿상에 떡과 전, 과자는 없고 대추, 밤, 감 등과 평소 음식인 밥을 올린다면 이를 믿을 사람 있겠나? 더군다나 보통 사대부가 아닌 조선시대 주자학의 거두이자 청렴한 선비의 표상인 명재 윤증(尹拯, 1629~1714) 선생의 후손들이 차린 제삿상이 그렇다면 더 더욱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이다.

지난 추석 하루 전 날, '사대부집 후손들의 차례상'을 취재하고자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윤증 고택(중요민속자료 제190호)을 찾았다. 아늑한 노성산을 뒤로 한 명재 선생의 고택은 세월이 가도 변함없이 찾아오는 이를 푸근하게 맞이한다.

간소하고 소박하게 보이는 제기와 제사상
간소하고 소박하게 보이는 제기와 제사상윤형권
여느 사대부집은 높은 울타리에 솟을대문과 행랑채가 양반가옥의 상징처럼 버티고 있으나, 사랑채 앞마당과 담장이나 울타리가 없는 연못을 가진 정원이 있는 윤증 고택에는 살아생전 집주인의 성품이 배어 있는 듯하다.

"사대부집의 추석 차례상은 어떻게 차리는지 취재를 하려고 합니다."

윤증 선생의 13세손 윤완식(49)씨가 고택 왼쪽 언덕의 '초연당'이라는 찻집으로 안내한다.

"차례상을 차리기는 하지만 기대하신 것과는 많이 다를 겁니다. 우리 집안은 차례상을 차리는데, 송편과 떡, 꿀로 만든 유밀과나 전 등은 제삿상에 올리지 않습니다. 대추, 밤, 감 등 과일과 평소 음식을 올립니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사대부집 추석 차례상에 송편도 없고, 전도 없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명재 윤증(1629~1714) 선생의 초상화
명재 윤증(1629~1714) 선생의 초상화윤형권
사연인즉 이렇다. 한국 양반가의 대표적인 파평 윤씨이며 조선시대 대학자인 윤증 선생은 백의정승(白衣政丞)이라고 불리는데, 학식과 인품이 높아 이조참판, 이조판서, 우의정 등 여러 차례 벼슬을 제수하지만 번번이 사양하고 이곳 향촌인 노성에서 백성들 교화와 학문정진에만 몰두한다.


윤증 선생의 높은 학문세계와 몸소 실천하는 고매한 인격 때문에 소장파인 소론들로부터 추앙을 받는다. 윤증 선생에게는 학문과 실생활이 동떨어진 게 아니라, 학문을 실생활에 반영하는 실학사상이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윤증 선생의 사상은 돌아가시기 전 자손들에게 남긴 유언에도 나타나는데, '제상에 떡을 올려 낭비하지 말 것이며, 일거리가 많은 유밀과와 기름이 들어가는 전도 올리지 말고 제물 장만할 때 종이로 입을 봉해 침이 튀지 않게 정성을 다하도록 하라'고 한 것. 그 뒤로 윤증 선생의 후손들은 제삿상에 떡과 유밀과 기름이 들어간 전 등을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로써 윤증 선생이 허례허식을 따지는 명분보다, 실학사상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으며, 또 여성을 배려한 사려 깊은 마음씨까지 있었음을 읽을 수 있다.

1년에도 수십 번의 제사를 모셔야 하는 사대부 집안에서 제삿상 차리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특히 제사 음식을 장만하는 것은 여성들의 몫이었기 때문에, 그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닐 뿐더러, 지나친 제삿상 차림은 낭비로 이어져 당시 사회적 폐단으로까지 지적될 정도였다.

여성을 배려한 실학사상이 드러난 윤증 고택

채광을 얻기 위한 과학. 왼쪽 창고와 오른쪽의 부엌이 수평으로 나란한게 아니라 약간 틀어지 배치를 함으로써 남쪽의 햇볕을 좀 더 많이 받게 할 수 있다.
채광을 얻기 위한 과학. 왼쪽 창고와 오른쪽의 부엌이 수평으로 나란한게 아니라 약간 틀어지 배치를 함으로써 남쪽의 햇볕을 좀 더 많이 받게 할 수 있다.윤형권
윤증 고택에 대한 건축학적 고찰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윤증 고택에서 볼 수 있는 안채와 사랑채의 구조는 당시 남존여비의 엄격한 관습과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볼 때, 대단히 파격적이다. 여성을 배려한 섬세한 구조에는 놀랄 만한 과학이 숨겨져 있다.

사진에서 보면 왼쪽 건물이 창고이고 오른쪽 건물은 안채에서 안방과 부엌 쪽이다. 사진 뒤쪽으로 산이 보이는 방향이 북쪽이고 왼쪽의 창고가 서쪽 방향이며 안채가 동쪽 방향이다. 사진의 건물과 건물사이 패어진 곳은 물길인데 앞쪽과 뒤쪽 폭에 차이가 있다.

이것은 창고와 안채의 배치를 나란히 하지 않고 좀 틀어지게 배치했기 때문인데, 두 건물이 처마를 마주할 정도로 바짝 붙어 있는데도 안채에서 남쪽의 햇볕을 잘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안채는 4계절 내내 따뜻한 햇볕을 잘 받아 효율적인 보온이 되고 적절한 채광의 확보는 안방과 부엌을 어둡지 않게 해준다. 넓지 않은 대지에 최소한의 건물을 배치하면서도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미칠 채광과 보온 등을 배려한 과학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며느리가 거처하는 건넌방에 대한 배려

안채의 동쪽은 며느리나 시집을 가지 않은 규수들이 거처하는 '건넌방'이 있다.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당시에 집에 갇혀 사는 것은 여성들로서는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딸이나 며느리가 기거한 건넌방.
딸이나 며느리가 기거한 건넌방.윤형권
윤증 고택에는 여성들의 이런 고통을 배려한 섬세함이 돋보이는 건넌방 정원의 배치가 눈에 띈다. 건넌방 정원은 열 대여섯 평 남짓한 아담한 면적이다. 꽃을 심은 화단이 있으며 나무도 심어져 있다.

그런데 나무가 심겨진 정원은 1m 이상 높게 흙을 돋우고 매실나무를 심었다. 이것이 며느리나 출가하지 않은 딸들에 대한 배려의 흔적이다. 이곳에 올라가면 집 밖 동네가 훤히 보인다. 집 안에 갇혀 지내는 답답함을 이곳에서 풀도록 한 것이다.

안채에 거주하는 여성을 위한 출입구 벽의 구조

안채에 들어서면 내외벽이 먼저 보인다.
안채에 들어서면 내외벽이 먼저 보인다.윤형권
여자 주인이 기거하는 안채
여자 주인이 기거하는 안채윤형권
안채는 여성들만의 공간이므로 함부로 남자들이 드나들 수 없다. 그러나 남자들이 안채와 사랑채를 오가는 일이 있을 수 있는데, 윤증 고택에는 안채 입구에 행랑채 역할을 하는 내부 벽이 있다.

이 벽은 '내외벽'이라고 해서 안채에 들어서면 곧바로 안채가 보이지 않고 오른쪽으로 한걸음 돌아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내외벽 밑이 뚫려 있다. 이렇게 뚫어 놓은 것은 외부에서 안채로 들어오는 사람의 발이 보이게 해서 그 사람의 신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안채에서 여성들이 기거하다가 외부에서 남자 손님이 오면 당황하지 않고 손님을 응접하도록 한 과학적 구조가 숨어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윤증 고택에는 수많은 과학이 숨겨져 있다. 오늘날 집의 구조는 집 안에 사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건축과 설계에 있어 기능적인 것에만 치중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300년 전에 지어진 윤증 선생의 고택에서 볼 수 있는 여성에 대한 섬세한 배려는 매우 인간적이며 놀라운 실용과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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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는다는 것은 마음을 다듬는 것"이라는 화두에 천칙하여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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