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
개울 건너에는 쑥부쟁이가 지천으로 피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들국화려니 생각하며 무덤덤하게 보아 넘기던 꽃입니다. 요즘 가을 들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지요. 가을 들녘을 닮아 소박하면서도 잔잔한 향내를 간직한 꽃입니다.
쑥부쟁이 한 묶음 꺾어다가 빈병에 꽂아 시골집 방에 놓아두면 아무리 어두운 방이라도 금세 환해집니다. 들일 끝내고 오실 때에 아버지께서는 들꽃 한아름을 꺾어 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빈병에 꽂아두셨습니다.
아버지가 꺾어오신 꽃은 제철보다 일찍 피기도 했습니다. 추위가 가시기 전 아버지는 나무하러 산에 가셨다가 집채 만한 나뭇짐 위에 진달래 가지 한 묶음을 얹어서 오셨지요. 아버지가 가지고 오신 진달래 가지를 빈병에 물을 채워 꽂아두면 봄이 되기도 전에 꽃이 피었습니다. 제철의 붉은 진달래와는 달리 하얀 꽃잎의 진달래였습니다.
버들강아지가 껍질을 벗고 하얗게 피어날 무렵이면 버들강아지가 방안을 밝혀 주었습니다. 봄이 와서 산에 들에 진달래가 피어날 무렵이면 아버지는 붉은 진달래를 한아름 안고 오셨습니다. 여름이면 개울 건너 산기슭에 피어난 산나리꽃을 꺾어오셨습니다. 가을이면 쑥부쟁이가 우리 방을 밝혀주었습니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침침한 방
들일 끝에 안아 오신 꽃을
빈 소주병에 병보다 길게
거울 앞에 거울보다 환하게
계절을 갈아 꽂아 주시던
이제는
먼 길 끝
번한 새벽으로 계시는
아버지
-김영화, 그리운 가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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