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월북하고 은행 털고' 갱들의 한판 난장

[인터뷰] <갱스터스 파라다이스>의 연출 최원석씨와 배우 박수은씨

등록 2004.10.04 02:24수정 2004.10.0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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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청호의 소설 <갱스터스 파라다이스>(문학과지성사·2000)를 무대 위로 끌어올린 연극 <갱스터스 파라다이스>(원작 박청호·각색/연출 최원석)는 갱스터를 자임하는 젊은이들의 욕망과 고민을 거칠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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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쇼다, 이것도 쇼다!"

사회의 폭력과 부조리에 똑같은 폭력과 부조리로 맞서는 두 주인공 은채와 정수는 갱스터다. 이들은 비무장지대를 성역으로 규정하고 비무장지대를 사들일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을 턴다. 그리고 성역에 들어갈 수 없는 정·재계의 인사들을 상대로 테러를 벌인다.


a 극단 청색시대의 창단공연 <갱스터스 파라다이스>

극단 청색시대의 창단공연 <갱스터스 파라다이스> ⓒ 청색시대

황당한 이야기로 치부될 수도 있을 소설을 연극 <갱스터스 파라다이스>는 황당한 '쇼'로 변신시켰다. 그 변신의 두 주인공, 연출을 맡은 최원석씨와 은채 역의 박수은씨를 지난 2일 공연 후 만났다.

그들의 대답은 대체로 짧았는데-어떤 질문에는 "그냥"이라는 한 단어의 답을 하기도 했다- 거기에는 숨기지 않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박수은씨는 "힘들지 않았냐"는 의례적인 질문에 "힘들지 않았다"는 의례적이지 않은 답을 했고, 최원석씨는 "모성을 가진 은채는 최첨단 페미니스트"라는 재미난 주장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매번 뭔가 더 말할 것이 있는 표정으로 말을 멈추었기 때문에 질문 사이 사이 어색한 웃음을 2, 3초간 주고받아야 했다. 그 당당함과 의뭉스러움이 참 좋았다.

a 각색과 연출을 맡은 최원석씨

각색과 연출을 맡은 최원석씨 ⓒ 송민성

- 소설 <갱스터스 파라다이스>를 극화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최원석(이하 최) "재밌으니까. 인물이 전형적이지 않고 파격적이다. 남북 문제 등의 거대 담론을 다루고 있지만 교조적이지 않고 오히려 오락적이라는 점이 나를 흥분시켰다."

- 작품을 각색하면서 특히 신경쓴 부분이 있다면?
(최) "소설을 읽으면서 이 부분은 반드시 살려야겠다는 장면이 있었다. 김정수와 이은채, 정철호가 만나는 장면이다. 마침 박 작가도 반드시 그 부분은 살리되 나머지는 연출자의 재량에 맡기겠다고 해서 편안하게 각색했다."

- 소설의 배경(비무장지대, 한국은행 등)뿐만 아니라 그들이 펼치는 사건들도 매우 다양하다. 이것이 각색하는 데 부담이 되진 않았나.
(최) "장면이 바뀌는 것은 어차피 관객의 몫이다. 관객들이 상상해서 채워 넣으면 되는 것이므로 그다지 걱정하진 않았다. 자유롭게 그리고 자유롭게 떠올리면 된다."


연출자 최원석은 누구?

·1993년 2월 동국대학교 연극학과 졸업
·극단 서울연극앙상블 동인으로 4년간 활동
·1997년부터 2003년 4월까지 국립극단 전속연기자로 활동, 현재는 프리랜서 연출가 겸 연기자
·연출작으로는 <보이첵> <장엄한 예식>, 출연작으로는 연극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 <우룽왕>, 영화 <천년호> <시실리 2km> 등.
- 연습 기간이 짧다고 들었는데 힘들지 않았는가?
(최) "연습 기간은 25일이었지만 연습의 밀도는 보통의 10배 정도였다. 하루에 12시간씩 연습했다. 연출자는 어차피 연극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 전체를 총괄하면서 의사처럼 진단을 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배우는 배우대로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 고도의 집중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부분들이 있었다."

박수은(이하 박): "힘들진 않았다. 시간이 짧다고 안되는 게 되지도 않지만, 되는 게 안되는 것도 아니다. 2시간 정도의 공연을 하려면 그 정도의 집중력은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시간이 짧은 게 장점이었다."


- <갱스터스 파라다이스>의 인물들은 독특하다. 정수와 그의 친구 철호, 북쪽 병사 민주와 섹스를 하는 갱스터 은채는 더더욱 그러한데 그를 연출과 배우로서 각각 어떻게 이해하는가?
(최) "우선 은채는 사랑이 강한 여자다. 현재의 남성적 사회는 남성도 만들어내지만 여성도 이를 공고히 하는 데 책임이 있다. 나도 일부일처제의 구조에서 살고 있지만 이는 나의 본능에 굉장히 어긋나는 일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여성이 심각하게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그런 것이 참 싫다. 은채를 통해 성에 관한 고정관념이 부서졌으면 했다."

a 은채 역의 박수은씨

은채 역의 박수은씨 ⓒ 송민성

(박) "물론 사랑이 밑에 깔려 있지만 무엇보다 호기심이 많은 인물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행위들이 충동적이다. 대본을 읽으면서 그 충동적임이 좋았다. 내가 하고 싶지만 못했던 것을 은채는 한다.

은채는 세 남자를 사랑하지만 그 방식이 각기 다르다. 연극에서 보여 주는 것은 세 가지지만 이는 굉장히 함축적인 표현이고, 실은 사랑의 여러 가지 형태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은채는 나와 관객들의 호기심과 욕망을 충족 시킨다. 은채가 부럽기도 하다."

- 팸플릿에 보면 은채는 페미니스트로 소개되는데.
(최) "은채는 일단 통속적으로 이야기하면 여자(female)다. 정수를 만나면서 사랑을 하는 여인으로 훌쩍 커버린다. 비무장지대를 넘어 철호와 민주를 만나면서는 모성을 가진다. 사랑이 확장되는 것이다. 포용력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가지는 은채는 '최첨단 페미니스트'다.

배우 박수은은 누구?

·출연작으로는 뮤지컬 <가스펠> 연극 <내 마음의 삼류극장> <유행가단상> 영화 <국화꽃 향기> <시간지문> 드라마 <학교 3> <흐르는 것이 세월 뿐이랴> 외 다수.
(그것이 왜 페미니즘이냐고 묻자) 남성을 제압하지 않고 끌어안는다. 나는 남성의 공격적 세계관을 극복하는 것이 여성성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을 해야만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끌어안는 것이 진정한 페미니스트다."

- '페미니스트'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는 반면 극의 전환마다 나오는 댄서들은 하나같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섹시한 춤을 추는 여성들이다. 또한 은채가 중간에서 꼭 옷을 벗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최) "이 작품의 첫번째 메타포는 섹슈얼리티다. 카바레의 댄서는 당연히 섹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성의 성적 도구화도, 성적 비하도 아니다. 은채의 노출신에 있어서는 분명한 뜻이 있다. 바로 해방이다. 나를 옥죄고 있는 것을 떠나 버리는 행위다. 철호와 민주도 쉽게 옷을 벗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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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민성

- 연극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은행을 털고 국회의원들을 제거하는 등-은 언뜻 보면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 "이 연극이 80년대에 만들어졌다면 나는 아마 남산에 끌려가 죽도록 맞았을 것이다(웃음). 창작하는 사람들에게도 분단 구조로 인한 레드 콤플렉스가 상당하다. 나만 해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눈치보게 된다. 자기 검열을 통한 수위 조절을 하는 거다.

그게 바보짓이라는 걸 어느 날 깨달았다. 내가 생각한 이야기는 어차피 이야기인데 맘껏 해 버리면 되는 거지, 안 그런가? 정수는 은행 털어서 비무장지대를 사겠다는 꿈을 꾼 것이고 (그를 보면서) 그런 꿈을 못꾸게 하는 자기 검열 장치를 부셔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첫번째 장치가 이은채의 사랑이고 그 다음은 없다, 아무 것도 없다."

(박) "평범하고 일상적인 걸 굳이 연극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 그런 건 일상에서도, 텔레비전에서도 볼 수 있다. 평범한 것을 무대에서 원하는 관객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갱스터스 파라다이스>는 일단 한 가지를 만족시켜 준다. 또한 사회자가 등장해 계속해서 '이건 쇼'라고 상기시킨다. 사건 자체만 놓고 보면 황당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된다."

- 갱은 이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는 '직업'이다. 그들의 파라다이스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 "갱은 그냥 깡패고 도둑놈이다. 정수가 직업으로서 갱을 택한 것은 '너희들이 규정한 악의 상태에 들어가서 내가 악이 되겠다, 그래서 너희들의 질서를 부셔 버리겠다'는 의지였다. 그가 생각한 파라다이스가 바로 비무장지대다. 첫번째 각색 때는 이것이 잘 연결되지 않아서 두번째 각색 때는 좀 더 설명을 넣었다. 관객들이 편안하게 보라고. 쉴새없이 이야기하지 않았나, '우리들의 파라다이스는 비무장지대'라고(웃음)."

(박) "비무장지대이기도 하고 은채가 운영하는 카바레 이름이기도 하다. 어쨌든 모두가 쉴 수 있는 공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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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민성

- 이 질문은 작가에게 해야할 듯하지만 비무장지대가 파라다이스라는 설정은 좀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는가? 연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최) "그렇다. 이해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인물이 정철호다. 그는 매우 현실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 한국은행을 털자는 계획에도 문제 제기를 한다. 결말에서는 정수와 치고박고 싸우기도 한다."

- 원작에서는 한국은행을 털고난 후 정수만 사라지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여기서는 모두가 함께 사라진다. 결말에 차이를 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최) "갱단이니까(웃음). 다음 공연 때는 원작대로 각색해봄 직하다."

- 앞으로 한달여의 공연이 이어질 텐데 다짐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 "특별히 고쳐야 할 것은 안 떠오른다. 이번 공연 끝나면 떠오르려나?(웃음) 연극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줄을 잇기 때문에 그저 배우들 안 다치고 무사히 끝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박) "관객들은 좀 즐겼으면 좋겠다. 한국 관객들은 굉장히 보수적이다. 와서 편하게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라는데 안 한다. 재미없으면 가라고 사이에 화장실 갈 시간도 주는데 아무도 안간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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