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작은 새'와 피아니스트

[나의승의 음악이야기] 달 없는 밤의 야상곡

등록 2004.10.04 15:15수정 2004.10.0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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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년 마리안느 페이스풀(Marianne Faithful)이 노래했던 < Little Bird >라는 곡이 있었다.

“There's a little bird that somebody sends/ down to the earth/to live on the wind/ Born on the wind and he sleeps on the wind/ this little bird that somebody sends/ He's light and fragile/and feathered sky blue/So thin and graceful/the sun shines through/this little bird that lives on the wind/born on the wind/and sleeps on the wind/this little bird that somebody sends/He fly so high up in the sky/out of resch of human eye/and the only time that he touches the ground/is when that little bird dies/”


“누군가 이 땅에 보낸 작은 새가 있었네/ 그는 바람 속에서 살고 바람 속에서 태어났으며 바람 속에서 잠들었다네/ 누군가 보낸 작은 새는 가엾고 연약했지만/ 섬세하고 은총스러운 햇살사이로 푸른 하늘을 누렸다네/ 바람 속에 살고 바람 속에 태어나고 바람 속에 잠든 작은 새는/ 사람들의 눈이 더 이상 닿지 않는 곳까지 높이 날아오를 수 있었다네/ 그러나 단 한번 그가 땅위에 추락할 때면/ 그때가 바로 죽는 때라네”


이 노래는 슬프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은 용기를 주는 노래다. 이 곡은 62년 존, 디, 라우더밀크(John. d. loudermilk)가 만들었다. 인디언 전설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었을 것만 같다. 노래는 추락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맞이하는 그 때까지, 버리지 말아야 할 소중한 마음을 간직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에서 인디언 추장은 백인들에게 말한다. “당신들의 음악을 들으면 전부 사랑노래 뿐이오. 그건 왜 그렇소? 당신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 아니오?”라고. 이런 노래를 들으면 그런 말이 생각나기도 할 것이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표지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표지sony
해묵은 노래를 새삼스럽게 꺼내는 까닭은 최근 쥬제페 토르나토레(씨네마 천국을 만든 감독)의 <피아니스트의 전설(Legend of 1900)>을 말하기 위해서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여객선의 볼룸에 놓여있는 그랜드 피아노, 장미목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피아노가 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새로운 음악에 대한 확신으로 기대했다던 질버만의 ‘피아노 포르테’에서부터 지금까지 몇 백년 동안, 피아노는 모든 악기의 왕자와도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쥬제페 토르나토레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최초의 ‘피아노 포르테’는 이탈리아의 바르톨로모 크리스토포리가 만들었다. 어쩌면 감독은 이탈리아의 명품 ‘파지올리(Fazioli)’ 피아노를 거기에 장치했고, 그것으로부터 피아노의 역사를 잠시 생각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에서 피아노는 조연에 불과하다.


주인공은 그 피아노 위에서 강보에 싸인 채로 발견된다. 그는 대서양을 횡단하는 거대한 배에서 1900년에 태어났으므로 ‘1900’이라는 희한한 이름을 갖고, 피아니스트로 성장한다.

작은새의 노랫말에서 그렇듯이 그는 거기서 태어났으며 그곳에서 살고, 잠든다. 영화적 매력이란 그런 줄거리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게다가 '당신'과 '작은새' 그리고 '피아니스트'. 이 세 단어는 '동의어'가 될 수 있다.


영화의 음악은 엔니오 모리코네가 맡았다. 인상 깊은 음악을 하나 고른다면 나는 주저함 없이 ‘달도 없는 야상곡(Nocturn with no moon)’을 꼽는다. 왜! 이 곡인가? 궁금하다. 베토벤의 월광(月光), 드뷔시의 달밤(Moonlight)을 생각하게 하는 이 곡목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려 했을까?

우리에게는 민족의 대명절‘추석’과 ‘대보름’ 같은 날들이 있어서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울, 향수, 낙원의 희망과 꿈 등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1900’의 야상곡은 슬픔과 절망의 야상곡이라 해도 될 것이다. 달이 없으므로…. 그 음악이 당신과 나의 가슴을 울릴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그는 배를 떠날 수 있었다. 그러나 떠나지 않는다. 죽음마저도 그가 원하는 곳에서 맞는다. 작은새가 추락할 때와 비교되는 그의 죽음,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지는 못한다. 뱃속 깊은 곳에 숨어서 그의 우주, 그의 세상과 함께 사라진다.

오스카 피터슨 <A NIGHT IN VIENNA> 앨범 표지
오스카 피터슨 앨범 표지VERVE
줄거리를 조금 바꿔서 피아노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스타인웨이(독일), 파지올리(이태리), 뵈젠도르퍼(오스트리아) 등은 우리 시대 최고의 피아노라 할 것이다. 최근 오스카 피터슨은 고희의 나이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뮤직 페라인’에서 뵈젠도르퍼(Bosendorfer) 피아노와 함께 공연을 했는데, CD와 DVD를 동봉한 음반을 내놓았다. 명연주 명녹음이다.

바흐의 생전에 나온 ‘피아노 포르테’, 그 시절 바흐는 ‘음악의 헌정’을 작곡했고 그리고 바로크 시대에 즉흥연주를 할 줄 모르는 연주가란 없었다. 전통 깊은 뮤직 페라인 홀에서 한 오스카 피터슨의 즉흥 연주는 그것을 생각하게 한다. 음악은 ‘풍경’이다. ‘사물’과 ‘배경’이 공존한다. 역사를 눈앞에 배경삼아 놓아두고, 오스카 피터슨의 음악을 듣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임어당은 20세기 초, <생활의 발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풍채를 갖춘 재사(才士), 미모를 갖춘 재원(才媛)은 오래 살기가 어렵다. 비단 신의 질투만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당대의 보배일 뿐 아니라, 만대의 보배이기 때문에, 그 신성이 모독될 것을 두려워하여, 조물주가 이 세상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엔니오 모리코네, 오스카 피터슨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신이 잠시 다른 곳에 신경을 쓰느라, 그들이 세상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그런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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