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자유는 운두령을 넘는 구름과 같고

사람을 만나는 잔잔한 여행(2), 강원도 평창의 목조각가 이규석

등록 2004.10.07 11:03수정 2004.10.07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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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행위의 대전제는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사는 곳으로 돌아올 계획이 없는 떠남을 여행이라 하지 않는다. 천상병 시인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하며 삶을 여행으로 친 것도, 우린 언젠가는 반드시 이승을 떠나 '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이승의 우리는 모두 여행자다.

대개의 여행이 '장소'를 찾지만 '사람'을 찾는 여행의 맛도 각별하다. 19년째 여행 중인 사람을 만난다면 그 맛은 어떨까.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속사리에 사는 목조각가 이규석(55)은 '사는 게 곧 여행'이다. 그가 사는 계방산 자락 속사리는 1968년 이승복 어린이 가족의 비극으로 잘 알려진 외진산골인 만큼 지금도 개발이 늦은 편이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속사에 가서 그를 만나면, 그가 사는 게 아니라 온 가족을 데리고 여행 중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젖먹이 때 데려간 딸을 이승복이 다니던 '속사국민학교 계방분교'에 입학시켜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그는 여행 중이다. 그의 딸이 다닐 때 전교생 15명이던 이승복의 모교 계방분교는 지금은 폐교되었고 속사초등학교는 아직 열려 있다.

이규석을 만날 때마다 그가 언제 여행을 마치려나, 정말 여행을 마치면 어쩌나 궁금하고 불안하다. 그가 여행을 끝내는 것은 언젠가는 그처럼 살고 싶어 하는 많은 이들의 꿈이 깨지는 일일 것이다. 다행히도 그는 적당한 선에서 현실과 타협을 하며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a '자유인'이라 불러주면 제일 좋다는 그의 말처럼 '자유' 그 자체인 흙집 '감자꽃 필 무렵'.

'자유인'이라 불러주면 제일 좋다는 그의 말처럼 '자유' 그 자체인 흙집 '감자꽃 필 무렵'. ⓒ 곽교신

자유인과의 첫 만남

처음 그를 본 곳은 실내인지 실외인지 구분이 안 되던 초가집이었다. 밭모퉁이에 간판이랍시고 어설프게 꽂아 세운 작은 판자쪼가리에 메밀꽃이 아닌 '감자꽃 필 무렵'이라 써 있기에 호기심에 문을 열고 들어갔고, 자유인 이규석씨와의 만남은 1992년 감자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에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른 데선 맛볼 수 없다며 권하는 '마가목차'를 한 잔 마시고 찻값을 지불하려는 내게, 그는 쌀 됫박만한 작은 통을 가리키며 "적당히 넣고 가라"며 쳐다보지도 않아 '손님은 왕'인 내 상식에 배신을 놓았다. 그의 말대로 돈 통에 적당히 돈을 넣으며 우연히 마가목차의 재료를 보고는 '장작을 가늘게 패서 끓여 차라고 주나'하며 '두 번째 배신'을 느낄 정도로 나는 마가목차에 대해 무식했다.


마가목차는 '마가목'이란 나무를 쪼개서 달인 물로 수도자들이 정신을 청량하게 할 목적으로 마시는데, 그때 느낀 독특한 향에 끌린 필자는 마가목차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마가목의 특이한 향을 싫어해서 감초와 대추를 넣어 끓여주는데, 원래의 맛이 더 좋다고 했더니 마당에 있는 마가목 가지를 잘라다 다시 끓여주었는데 그 맛을 보니 혀끝에 있던 옛 기억이 새롭다.

그는 서울에서 잘나가던 목공예판을 덮고 1985년에 이곳으로 들어왔다. 소공동의 특급호텔 개관기념 초대전을 열 만큼 그럭저럭 좋았지만, '그냥 여기가 좋아서' 왔다. 첩첩산중으로 가겠다는데 반대할 법도 하련만 부인 송옥선(49)씨도 좋아했다니 이 정도면 원조 찰떡궁합 아닐까.


지금은 제법 관내 '유지' 노릇을 하지만, 갓 내려왔을 때 그는 속사에 아무 연고가 없었고 무엇보다 돈이 없었다. 감자농사를 짓던 국도변 초가를 집만 30만원에 사들여 기둥만 남기고 안을 털어내 생활공간을 만들고, 밖에는 비닐하우스를 지어 목공예작업장으로 삼았다.

a 필자가 처음 본 것과 비슷한 이미지의 작품. 약 50센티 길이의 향나무 파편에 조각.

필자가 처음 본 것과 비슷한 이미지의 작품. 약 50센티 길이의 향나무 파편에 조각. ⓒ 곽교신

나뭇결을 다루는 그의 미적 감각은 놀라울 뿐이다. 그의 목조각엔 나무를 가공하되 가공한 티가 숨어 있다. 일본식 정원의 땅을 바닥부터 뒤집어엎는 철저한 인공미가 아니라, 흐르던 물은 흐르게 살리고 너럭바위는 평상으로 쓰고 바람도 원래 바람 길대로 흐르게 놔두는 우리 전통정원의 자연스러운 멋이다.

부러진 향나무 굵은 가지에 나뭇결을 따라 새긴 여인의 얼굴을 처음 봤을 때, 필자는 한동안 그 앞을 떠나지 못했다. 나무에 얼굴을 새긴 건지 얼굴을 새기고 나중에 나무가 자란 것인지 혼란하게 했던 그 무정형의 정형을 보며, '이 사람의 조형감각은 학교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고 단정했었다.

추측대로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다. 난 그가 미술대학을 거치지 않은 것을 하늘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미대를 거쳤다면 그의 물 흐르는 듯한 자연미는 '자연사'했을 것이다. 제도권 역사교육이 내 역사인식의 80% 정도를 가뿐히 망쳤듯이.

사진을 찍는 사이, 취재노트의 이주동기를 적은 부분에 그가 자필로 '그냥 좋아서'를 강조해서 써놨다. 예전에, '그 사람 사는 모양이 왜 좋냐'고 물은 친구에게 '그냥 좋다'고 대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혼자 웃음을 지었다. 가장 좋은 것은 그냥 좋은 법이다. 가장 이상적인 사랑은 그냥 사랑하는 것이다.

옛날의 감자꽃

아궁이의 장작불이 조명의 일부였고 쇠죽을 끓였음직한 커다란 가마솥엔 물이 끓고 있었다. 초가의 내부를 트고 비닐을 벽에 덧대 마당을 끌어들여 공간을 넓혔고, 폐목을 다듬어 만든 의자와 탁자들이 놓인 실내가 간신히 찻집 분위기를 냈다.

적당히 매캐한 아궁이 연기와 가마솥에서 오르는 생김에 직선으로 새어드는 햇살이 어울려 묘한 첨단(?) 무대효과를 내고 있었다. 손님은 나 혼자였고 청하지도 않았는데 그가 좌정하더니 북채를 잡았다. 무대는 아궁이 열로 온돌을 데우는 부뚜막 옆 한 평 남짓의 공간. 빙긋이 웃다가 "그 때으 청이가~~~"하며 심청가 한 대목을 들려주던 기억이 짜릿하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팔에 소름이 돋는다.

장작 타는 냄새, 가마솥에서 오르는 생김, 흐느적거리는가 하면 맵게 몰아치며 침침한 실내를 휘젓던 북장단에 실린 한 맺힌 소리.

서편제 대가들이 그의 소리를 '감자제'라며 놀린다지만, 판소리가 그렇게 내 속을 아리게 후벼판 것은 그때가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딸 이소영(22. 중앙대 음악극과 2년)이 세종문화회관에서 그 힘들다는 완창무대(심청가)를 가졌던 꽤 알려진 소리꾼이 되었으니 그의 소리는 기가 죽었음직한데, 그는 여전히 '감자제'를 뽑는다. 어쩌다 딸과 아버지가 함께 맞추는 북장단 무대를 만난다면 '감자 꽃 필 무렵'을 찾는 객들이 맞는 최고의 행운이다.

이런 사람을 만나는 여행에선 새벽바람 같은 향기가 난다.

지금의 감자꽃

"결국 돈이 없어 쫒겨난 거지 뭐"라고 정리한 이규석의 말로 초가집을 내준 사연을 대신한다. 옛 집을 내준 그는 근처 길가 산비탈을 깎았다. IMF바람에 아직도 지붕이 빚에 눌릴 지경이지만, 자유롭게 휘어진 자연목과 흙을 주재료로 자유롭게 지은 예쁜 집에서 바람처럼 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찻집에서 운두령 쪽으로 조금 올라가서 있었던 그의 옛 초가가 더 그립다. 그의 부인도 그 집에서 느끼던 평화가 자주 그립단다.

a 이규석이 현관 머리에 얹어둔 화투장. 바람처럼 살고싶어 '풍'을 얹었다고.

이규석이 현관 머리에 얹어둔 화투장. 바람처럼 살고싶어 '풍'을 얹었다고. ⓒ 곽교신

달마가 던진 '자유'가 큰 화두라는 그는 지금 달마에 심취해 있다. 나뭇결의 흐름대로 앉힌 달마상은 또 다른 그의 자유이다. 그의 조각이 달마를 거쳐 어디로 갈지 궁금하지만 묻지 않았다. 알아서 뭣에 쓰랴. 그의 계획도 자유의 일부인 걸.

얘기 도중인데 갑자기 "우리 운두령에 올라갈까?"한다. 가서 시작하는 단풍을 보며 막걸리를 죽 들이켜고 오잔다. 그의 얼굴은 막걸리와 단풍 생각에 희열에 차 있는데, 나는 '그럼 올 때 운전은 누가 하나'가 먼저 떠올랐다. 나의 걱정은 경찰청에서 반기겠지만 이규석의 자유는 바람과 구름이 반길 것이다. 이건 적법성과 불법성으론 해석이 안 되는 일이다.

도시와 시골을 모두 버리지 못해서 전원주택이라는 어정쩡한 편법까지 생각해낸 요즘의 우리들에게 자유인 이규석은 우리 시대의 '일그러지지 않은 영웅'이다.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가게 이름도 퍼져나가 영업에만 신경 쓴다면 이문이 쏠쏠할 텐데, 장삿속에 휘몰리지 않고 예전의 초가집 시절을 이어가는 그의 순수가 참 좋다. 똥고집도 이 정도면 똥냄새가 아닌 향기가 날 것이다. 난 그의 향기와 용기가 늘 까무러치게 부럽다.

내 불가능의 대리만족이며 상상의 노리개인 그가 여전히 여행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며 언젠가 그처럼 살 야무진 희망을 다진다. 그렇게 살 용기가 없는 대부분의 우리가 그를 만나는 시간은 그대로 카타르시스다. 운두령을 넘나드는 이규석의 자유가 부럽다. 그와 나눴던 대화의 한 토막을 한 글자도 안 바꿔 그대로 옮기는 걸로 그의 무한한 자유를 독자들께 전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 집을 지으신 게 정확히 언제였죠?"

"음, 가만 있자, 올해가 몇 년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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