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 색깔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인터뷰]케냐 '에벤에셀 특수학교'에서 만난 김수정씨

등록 2004.10.10 14:40수정 2004.10.1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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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지난해 나사렛대 유아특수교육과를 졸업한 25세의 사회 2년차 특수교사. 그러나 그는 지금 남들과 다른, 특별한 길을 걷고 있다. 대부분 동료들이 국내의 특수교육 현장을 지키고 있지만 김씨는 머나먼 이국 땅인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장애 아동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케냐에서 꽃피는 한국의 특수교육 요람 '에벤에셀 특수학교'

a 아프리카 케냐에서 특수교사로 봉사하는 김수정씨

아프리카 케냐에서 특수교사로 봉사하는 김수정씨 ⓒ 이철용

지난 추석 기간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350여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에벤에셀 특수학교'에서 만난 김씨는 적도 지역을 의심케 할 정도로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특수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카바넷(KABANET)은 해발 7000피트(2133m)에 위치한 고산 지역이다.

기자를 만난 김씨는 약간 쑥스러워 하면서도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랜만에 한국인을 만나서인지 상기된 얼굴이었다. 오느라고 고생했다며 시원한 물을 건네는 그의 팔에는 부스럼 같은 상처가 보였다. 다름아닌 케냐의 장애아동들과 생활하며 얻은 피부질환이었다.

장애를 선진국 후진국으로 나눌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경제소득이 높지 않은 케냐는 위생과 보건이 취약하다. 그러한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질환들이 많고 때문에 장애인 수도 증가세에 있다.

특히 빈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대부분 신발을 신지 않고 생활하기 때문에 발에 작은 상처를 입은 경우에도 2, 3차 감염으로 치명적인 질환이 발생하고 급기야 절단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른다. 물이 부족한 지역이라 제대로 씻지 못하기 때문에 피부질환도 만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장애아동을 돌보는 김씨도 피부질환에 걸린 것이다. 하지만 김씨의 얼굴은 맑기만 하다. “이거요, 약 바르면 돼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의 웃음 속에서 어떤 힘이 한 젊은이를 이토록 강하게 만들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김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는 유아특수교육을 공부하며 한가지 꿈을 키웠다. “장애인들이 기독교의 정신인 예수의 사랑 안에서 평화롭고, 모습은 다르더라도 사회에서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것.” 대학 졸업 후 천안에서 장애아동들과 생활하던 김씨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길을 찾았다. 친구를 통해 우연한 기회에 케냐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 것이다.


“피부, 인종은 달라도 기독교 정신으로 하나되었으면”

a 김씨는 장애아동들의 작은 변화가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장애아동들의 작은 변화가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한다. ⓒ 이철용

이 소식을 들은 김씨는 주저하지 않고 직접 전화를 걸었고 결국 케냐에 오게 되었다. 아프리카라는 지역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디든 장애아동들을 가르치고,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더 먼 곳이라도 갈 수 있다'는 것이 김씨의 마음이다. 하지만 집안에서 반대도 있었다. 조부모,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김씨는 1남 3녀 중 장녀다. 게다가 케냐에 오려고 결심할 당시 할아버지께서 간암 판정을 받고 가족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케냐로 가겠다는 수정씨의 말은 가족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어머니는 오지로 떠나겠다는 딸의 뜻에 크게 반대했다. 다행히도 아버지께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웃에게 도움을 주며 사는 것이 무엇보다 인생에 중요하다"며 지지해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03년 11월 케냐의 카바넷 ‘에벤에셀 특수학교’에 도착해서 약 1년 동안 젊음을 불사르고 있다.

에벤에셀 특수학교는 2002년 강남대와 한국의 파라다이스복지재단이 산학협력을 통해 캐냐에 설립한 장애인 특수학교이다. 파라다이스 복지재단은 특수학교 설립에 있어서 단순한 금전적 지원뿐만 아니라 학교 건축은 물론이고 집기와 교육과정, 교재 개발 등 특수학교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분야를 총괄했다.

건축에는 한국의 건축 전문가가 3개월간 자원봉사로 현지에 파견되어 현지 건축을 진행했다. 학교 운영과 관련해 2년여간 60여명의 특수교육 전문가들이 매년 2차례씩 2주간 머물며 국제적인 규모의 커리큘럼과 시스템을 도입해서 한국에 비해서도 뒤떨어지지 않는 학교의 면모를 갖추었다.

a 에벤에셀특수학교의 수업 장면. 모든 환경미화도 한국의 특수교사들이 만든 것이다.

에벤에셀특수학교의 수업 장면. 모든 환경미화도 한국의 특수교사들이 만든 것이다. ⓒ 이철용

교실에서 수정씨는 5명의 장애아동을 나란히 앉혀 놓고 케냐의 현지 언어로 장애아동들 한명, 한명을 지도하고 있었다. 4명의 장애아동들은 그 지시에 따라 둥근 스펀지를 굴리고 벽 모양의 공간을 통과한다. 어렵사리 통과하게 되면 장애아동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기뻐한다.

“피부 색깔은 문제가 아닙니다.”

때론 부드럽고 때론 강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김씨의 모습에서 피부의 색깔은 중요하지 않았다. 김씨가 1년 전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언어 소통의 어려움이 가장 컸다. 장기간 준비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사실 그보다 더 힘든 게 바로 한국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당시 한국 사람들은 단기 봉사차 1년씩 머물렀는데 그 관계가 쉽지만은 않았다. 공동 생활에서 발생하는 오해로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는 언어소통 외에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사전을 들고 다니며 대화해야 했지만 준비를 다하지 못한 수정씨로서는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아이들은 깔끔한 편이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척박한 생활 환경 때문에 제대로 씻지 못해서 질병들이 많이 생겼다. 우리가 흔히 ‘도장 부스럼’이라고 하는 ‘링웜’은 대부분 아이들이 앓고 있었고 교사들도 쉽게 감염됐다.

a 피부색과 인종, 그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김씨.

피부색과 인종, 그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김씨. ⓒ 이철용

더욱 안타까운 것은 풍토병이었다. 신발을 신지 않고 다니는 아이들의 상처에 벌레가 들어가 알을 낳아 치명적인 질환이 되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장애아동들은 통학이 힘들기 때문에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방학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면 상황은 다시 악화되고 만다.

케냐는 아직 무상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에벤에셀 특수학교의 장애아동들도 일정액의 학비를 내야 한다. 다른 곳에 비하면 50% 수준이지만 열악한 가정 환경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학기가 한창 진행중인 지금까지도 학비를 내지 못한 학생들이 있다.

현재 에벤에셀 특수학교는 김씨 외에 현지인 물리치료사 1인, 보모 2인, 한국인 자원봉사자 등 5명이 17명의 장애아동들을 가르치고 있다. 교육 시스템은 설립시 세팅이 되어 특별한 어려움 없이 진행되고 있다. 교육을 위한 비품과 교구 등도 한국의 특수학교 못지 않게 잘 갖추어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특수교육을 현지화한 것이기 때문에 김씨와 같은 교사들이 지도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아이들의 작은 변화들, 가장 큰 보람입니다”

김씨는 근 1년여를 지내며 “아이들이 조금씩 변화되는 것을 느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침을 흘리던 아이가 어느날 침을 흘리지 않고, 손을 못 움직이던 아이가 손을 움직이고, 말하거나 걷지 못하던 아이들이 변화를 보일 때, 그때가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한다.

a 현지어를 섞어 가며 수업에 열중하고 있는 김씨

현지어를 섞어 가며 수업에 열중하고 있는 김씨 ⓒ 이철용

17명의 장애아동들은 6세에서 14세까지의 장애아동들로 다운증후군을 비롯한 발달장애 아동들이 대부분이고 경증의 뇌성마비 아동들도 함께 생활하고 있다.

김씨는 치료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발달장애 아동들에게 언어치료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지의 산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특수교육과 관련한 자료 확보와 흐름 등에서 멀어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김씨는 이곳에서 1년간 더 봉사한 후 2005년 11월 귀국할 예정이다.

대화를 마치며 수정씨는 “이거 해 볼 만한 일입니다. 인종을 떠나서 선생님으로 정말 보람도 느끼고,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특수교육에 대한 시야도 많이 넓어지고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렇게 지구 반대편, 오지의 땅 아프리카에서 김수정씨는 피부병에 걸려가며 젊음을 불사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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