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쌀한 삶의 아픔을 간직한 '참취'

내게로 다가온 꽃들(93)

등록 2004.10.11 08:44수정 2004.10.1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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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취'자가 붙은 식물들은 대부분 나물 또는 쌈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참취와 곰취요, 개미취나 미역취는 묵나물로 많이 이용됩니다. 묵나물이란 '오랫동안 묵혀 두고 먹는다'는 의미인데 나물을 채취할 때 한가지 나물로 분류하지 못해 여러 가지 나물이 섞인 것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산나물을 채취하다 보면 한종류가 아니라 이 나물, 저 나물을 뜯어다 한데 섞어서 삶은 물에 데칩니다. 데친 것을 곧바로 먹기도 하지만 말려 두었다가 먹기도 하는데 그중 가장 많은 것이 취나물 종류입니다.


취나물 중에서 많이 알려진 것은 곰취와 참취입니다. 특별히 참취에는 '참'자가 붙었으니 취나물 중에서도 '진짜' 취나물의 맛과 향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나물인가 봅니다.

김민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음식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이 있습니다. 다양한 음식 문화의 차이를 통해서 종교적인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가치 체계까지 명쾌하게 서술하고 있는 재미있는 책입니다. 겉으로는 비합리으로 보이는 문화 행위일지라도 인간의 생태적 적응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 숨어 있는 합리성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으로 다른 문화의 식습관이나 관념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봄에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다 보면 여러 가지 산나물을 많이 보게 되는데 취나물도 심심찮게 많습니다. 육지에서는 취나물을 보고도 뜯지 않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길 텐데 제주에서는 고사리를 꺾다 말고 취나물을 뜯으니, 그것도 먹는 것이냐며 육지 것들은 별걸 다 먹는다고 합니다.

요즘이야 제주에서도 취나물을 많이 먹고,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농가도 생겼지만 옛날 제주에서는 취나물을 많이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 맛난 나물을 왜 먹지 않았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한겨울에도 푸른 채소들이 밭에 있으니 애써 묵나물 같은 것을 만들었을 필요도 없을 테고 자연스럽게 나물 문화가 육지보다 발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김민수
그러나 그 속내에 들어가 보면 더 아픈, 그래서 쌉쌀한 취나물의 맛과도 같은 삶의 아픔이 들어 있답니다. 사시사철 푸르니 풍성할 것 같지만 제주의 땅은 척박해서 조나 보리, 콩 같은 것이 주작물이었고, 유채도 60년대 이후에나 재배되기 시작했답니다. 감자, 당근이나 밭벼 농사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먹을 것이 풍성하지 않으니 풍성한 밥상은 고사하고라도 그저 허기를 면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맛난 반찬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 생겨나는 법이니 그저 일하다 말고 찬 물에 밥을 말아 된장 풀어 훌훌 마시는 것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척박한 땅에 매달렸던 것입니다. 척박한 땅을 종일 일궈야 살아갈 수 있으니 복잡한 조리 과정을 거치는 음식은 사치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문화라는 것도 최소한의 안정된 생활이 뒷받침되었을 때 발전하는 법이니 제주도 육지에 비해 음식 문화가 그리 발달하질 못했습니다. 그만큼 변방의 섬 제주인들은 고된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겠지요.


김민수
김민수
봄이면 누님들과 나물을 뜯으러 다니고 여름이면 버섯도 따러 다니고, 가을이면 도토리와 밤을 따러 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자연에서 군것질거리를 거반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아카시아순은 물론이고 찔레순, 괭이밥 이파리와 며느리밑씻개 이파리의 시큼한 맛에 대한 기억으로 요즘에도 괭이밥이나 며느리밑씻개를 보면 침이 고입니다. 그렇게 자랐으니 산나물이 있으면 과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노란 꽃이 피는 곰취는 쌈으로 먹을 때의 아쌀한 맛을 가장 좋아하고, 참취는 너무 푹 삶지 않고 질긴 듯한 묵나물로 먹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건강에 대해서야 자만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크게 병치레 안하고 지금까지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어려서 먹었던 자연 그대로의 것들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때에는 소시지 같은 맛난 반찬을 못 먹는 가난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시대가 변하니 제가 먹던 그 모든 것들이 돈주고도 사기 힘든 청정웰빙식품이었던 것입니다.

김민수
참취의 꽃말은 '이별'이라고 합니다. 참취의 꽃이 질 때쯤이면 가을의 끝자락입니다. 가는 계절을 아쉬워 하는 마음을 담아 '이별'이라는 꽃말이 붙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연은 그런 것 같습니다. 이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별을 통해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이별은 아픔입니다. 우리도 살면서 이별을 합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픔입니다. 이렇게 붙잡고 싶다고 마냥 붙잡을 수 없는 것이 인생사인가 봅니다. 아픔은 성숙하게 합니다. 깊어지게 합니다. 사랑하는 것과도 이별할 수 있는 삶인데 놓아 버려야 할 것을 붙잡고 살아가면 우리의 삶도 그만큼 일그러지겠죠.

김민수
너의 아픔을 어디에 담을까
작은 꽃에 담기에는 너무 큰 아픔
보이지 않는 뿌리에 담기에는 숨겨두기엔 너무 깊은 아픔
줄기에 담기에는 너무 넓은 아픔
그래서
너의 쌉쌀한 아픔을 이파리에 담고 피어났는가?
그래,
아파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이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그렇게 아파하고 헤어지면서도
늘 그 자리에 피고 지는 것이 삶이고, 인생이다.
<참취> 자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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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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