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 훨훨 날고 싶은 '나비나물'

내게로 다가온 꽃들(92)

등록 2004.10.08 16:06수정 2004.10.0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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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사람들에게 꽃과 어울리는 곤충이 무어냐고 물으면 무엇을 가장 많이 답할까요? 아마 이 질문을 읽는 순간 '나비'를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꽃과 곤충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공생공존의 관계로 그 중에서도 나비만큼 꽃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곤충은 없습니다.

꽃 사진에 곤충이 어우러지면 더 아름답기 때문에 한참을 기다려서라도 꽃과 곤충이 어울려 있는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나비 같은 것은 인기척만 나면 날아가 버리니 꽃과 함께 나비를 담는다는 것은 행운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꽃 사진은 주로 접사로 찍게 되는데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람 부는 날이면 바람 소리 때문인지 꽃을 찾는 손님들이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는 경우가 많아 나름대로 사진을 찍을 만합니다. 어떤 때는 초점을 다 맞추고 찍으려는 순간 나비가 날아와 횡재를 하기도 하고 기껏 초점을 맞췄는데 날아가 버려 허망할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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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이번에 소개할 꽃은 그 이름이 '나비나물'입니다. 어디가 나비를 닮은 것일까 관찰해 보니 이파리가 영락없이 나비의 날개를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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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나비나물은 가을에 피어납니다. '나물'이라는 말이 붙는 식물은 식용 가능한 경우가 많은데 나비나물도 여린 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요즘이야 시장에 나가면 제철을 가리지 않고 나물을 구할 수 있지만 야생의 나물은 봄철에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비나물은 다른 나물이 여름 햇살에 뻣뻣해져 먹을 수 없을 때에 여린 순을 내고 가을에 꽃을 피웁니다. 나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에 익은 나물이 아닐 때는 조금만 해 와서 시식해 봅니다. 그렇게 시식하고 아무 이상이 없으면 다음부터는 본격적으로 식구들의 식탁에 내놓습니다. 아이들은 나물류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빠의 성의를 봐서 먹는 시늉은 합니다.

"아빠, 이거 먹어도 되는 거?"
"그럼, 어제 아빠가 임상 실험했다. 아빠가 먹고 24시간 지났는데 아무 이상 없고, 몸에서는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
"아빠는 별걸 다 먹어."


우리 아이들을 산야에 풀어 놓고 먹을 것을 찾아 보라면 몇 가지나 찾을 수 있을까요? 항상 슈퍼마켓에서 사먹기만 하는 우리 아이들은 그만큼 자연과 어울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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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하늘이 높은 이 계절에 바라본 제주 하늘은 참 아름답습니다. 뭉게구름이 갖가지 형상을 하고 있는 에메랄드빛 하늘을 볼 때면 그냥 그 속으로 '풍덩!' 빠져 들 것 같습니다.


나비가 하늘을 날려면 가벼워야 합니다. 날개만 있다고 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비워야 자유로이 훨훨 날 수 있기에 새들도 날아갈 적에는 배설물 같은 것들을 내어 놓습니다. 곤충들도 그러합니다. 뭔가 버림으로써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이죠.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움켜쥐고는 소망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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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가을 하늘이 청명한 날 자전거를 타고 일주도로를 따라 두어 시간 자전거 여행을 했습니다. 자동차를 탈 때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보였습니다. 자동차에 비해서는 느리지만 자전거도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맛보기에는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의 아름다움은 천천히 걸어 가며 음미해야 제 맛입니다.

자동차를 버리고, 자전거도 버리고 걸어가는 여행길. 여행길은 그렇게 가벼워야 합니다. 가볍게 떠나는 여행길에서 비로소 우리는 풀섶 여기 저기에서 손짓하는 꽃들도 만나고, 풀들이 부대끼며 우는 소리도 듣고, 곤충들과 새들의 노랫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여행길입니다. 비워야 할 것,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요. 그것을 버리면 우리의 삶이 나비처럼 훨훨 푸른 창공을 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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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나비나물은 '야완두(野豌豆)'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들판의 완두'입니다. 나비나물의 꽃은 향기가 참 좋아서 벌들이 좋아해 양봉 농가에서는 효자꽃이라고도 합니다.

나비나물의 꽃말을 지어 주라면 좀 길지만 '가을 하늘을 훨훨 날고 싶은 자유'라고 하고 싶습니다. 가을 하늘을 자유로이 훨훨 날다가 풀섶에 앉을 때면 가을햇살에 영근 콩들도 익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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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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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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