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이스에서 열렸던 2차 대선토론의 한 장면. 케리 후보가 부시행정부의 캐나다 의약 수입규제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C-SPAN
두 후보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인 이라크 전쟁수행에 대해서조차 둘의 입장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케리 역시 "나 역시 사담 후세인이 위협이라고 생각했다"고 거듭 자신의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몇 분 후에 "부시대통령이 이라크의 위협이 입증되지도 않은 상황 하에서 조급하게 전쟁을 시작했다"고 비판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케리의 이런 태도에 대해서 부시가 "케리 후보와 나는 전쟁관에 큰 차이가 없다"며 '동료의식'을 과시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 드러난 가장 명확한 차이라면 "앞으로 4년을 더 이런 식으로 가자"와 "앞으로 4년을 더 이런 식으로 갈 수 없다"는 호소였다.
지난 8일에 있었던 2차 토론 후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실망감을 드러냈다.
"혹시 북한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하거나, 기업 세금감면 논쟁에 대한 의문 때문에 지난 밤 토론을 시청한 사람이 있다면 신의 위로를 빌 뿐이다."- <뉴욕타임즈> 사설, 2004. 10. 9.
케리의 '압승'으로 알려진 1차토론 후 선거참모가 부시에게 첫 번째로 제안한 것은 토론 내용이 아니라 얼굴 표정이었을 것이다. 첫 번째 토론에서 부시가 가장 크게 비판 받은 부분은 질문 내용에 관계없이 "후세인은 위험했고, 미국 경제는 나아지고 있다"는 대답을 되풀이 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발언 할 때 인상을 쓰거나 딴청을 부렸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케리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부분 역시 부시가 발언할 때 성실하게 필기하며 경청했고, 시종 평정심을 잃지 않은 온화한 표정을 유지했다는 것이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시청했다는 올해의 대선토론은 '박빙선거'와 맞물려 미국 안팎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미 다수의 유권자들이 지지후보를 결정한 상태지만, 두 후보 사이의 미미한 지지율 격차를 고려할 때 결코 적지 않은 '부동층'이 텔레비전 토론을 통해서 지지후보를 결정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토론이 선거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여러 면에서 섣부른 판단이다. 첫 번째 이유는 아주 단순한 산술에 따른 것이다. 이미 미디어는 지난 4년간 이런 저런 방식으로 후보들의 이미지와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이다. 이미 오랫동안 미디어의 영향 속에서 형성된 여론이 단 세 번의 정치토론으로 뒤바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전쟁 대통령', '변절자(flip-flopper)', '거짓말쟁이'. '위험한 자유주의자' 등의 이름 붙이기, 수 없이 반복된 테러리스트의 사진과 국제무역센터 건물의 붕괴 모습, 그리고 '뉴스의 색'이 된 성조기의 세 가지 색상 등의 다양한 이미지 속에서 국민들의 인식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되어 왔다. 부동층 역시 정치적 중립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 할 때, 이들이 이제까지 접했던 정보와 이미지를 모두 버리고 세 번의 토론만으로 지지후보를 결정하리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텔레비전: 감성의 매체
국민들 가운데 정치인들을 일상적으로 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드물다는 점에서 미디어가 보여주는 정치인들의 이미지는 현실 그 자체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처럼 '현실'을 제공하는 미디어가 사회 각계의 다양한 견해를 담아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 사회의 여론형성에 지배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보수 일변도의 상업방송이기 때문이다.
양당체제에서 '진보'에 속하는 민주당의 정책이 때로 공화당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보수화 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수년 간 뉴스화면을 채워 온 테러, 전쟁 그리고 애국주의 이미지 속에서 국민의식이 보수화 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보수상업언론은 보수정치인들을 편애하는 보도를 하고, 국민들은 그 과정에서 보수화 되며, 다시 정치인들은 보수화된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 보수정책을 강화하는 순환과정이 반복되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