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와 보낸 어느 가을날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46) 욕심이 없는 야생동물

등록 2004.10.23 19:25수정 2004.10.23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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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내 집을 찾은 다람쥐가 먼저 주인이 어떤 사람인가 가늠하고 있다

내 집을 찾은 다람쥐가 먼저 주인이 어떤 사람인가 가늠하고 있다 ⓒ 박도

다람쥐의 잦은 방문


교통이 불편한 산촌이다 보니 찾아오는 이가 별로 없다. 그래도 매일 한 차례씩 우체부가 편지나 신문을 배달코자 들르고 이따금 택배 배달원도 들른다.

그동안은 앞집 노씨 부부가 내 집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올 여름 가을 채소농사를 실패한 이후로는 노씨 부인이 생활비라도 벌고자 찐빵 집에 품일을 나가기 때문에 요즘은 뜸하다.

노씨 아저씨도 온종일 집을 지키다가 심심하면 찾아와 이런저런 동네 얘기를 전해주시곤 했는데, 며칠 전부터 산판에 간벌하러 간다. 부인이 벌어온 돈으로 담배를 사 태울 수 없어서 간다고 했다.

썰렁하지만 그래도 가을볕이 좋은 날, 글을 쓰다가 잠시 눈길을 바깥으로 돌리면 다람쥐들이 쉭쉭 지나간다.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 요 며칠 부쩍 다람쥐의 방문이 잦았다. 같은 쥐라도 다람쥐가 집안에 드나드는 것은 싫지가 않다. 갑자기 다람쥐가 웬 영문일까 의문에 싸인 차, 아내의 얘기를 듣고 모든 게 다 풀렸다.

a 노씨가 가지고 온 잣송이를 담은 부대

노씨가 가지고 온 잣송이를 담은 부대 ⓒ 박도

보름 전 쯤 앞집 노씨가 개 사료 부대를 들고 내 집에 왔다. 거기에는 잣송이가 가득 들어있었다. 송안리에 사는 박씨가 나에게 전해주라면서 맡기고 간 걸 가지고 왔다고 했다.


지난 9월 25일, '나는 왜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이 많을까'라는 기사를 쓰면서 박씨 내외 얘기와 함께 그들 부부 사진을 올린 것을, 그분 내외가 무척 고맙게 여긴 나머지 감사한 마음으로 잣송이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좋게 말하면 인정으로 보낸 것이요, 굳이 나쁘게 풀이하면 기사에 대한 사후 사례를 받은 셈이었다(이 고백으로 기자 신분 박탈 사유가 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것을 굳이 돌려주면 오히려 마음 상하게 할 것 같아서 지난 번 찐빵 축제날 부인을 만나서 잘 받았다고 인사를 하고는 대신 저녁을 대접한 적이 있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바쁘기도 하고, 잣송이를 일일이 까는 게 쉬운 일도 아니라 뜰에 두었다. 근데 다람쥐란 놈이 용케 알고서 며칠째 드나들면서 부대안의 잣으로 신나게 배를 채우고 가느라고 내 눈에 자주 띈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다람쥐가 손대지 않은, 낱알이 잔뜩 달린 잣송이를 골라 뜰에 두고 내 글방에 들어와서 지켜보았다. 그러자 곧 다람쥐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뜰에 나와서 익숙한 솜씨로 잣껍데기를 벗기면서 오찬을 즐기는 것이었다.

아내도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의 쟤들의 식량을 모두 뺏은 건데 나에게 쩨쩨하게 하나만 준다면서 좀 많이 주라고 나무랐다. 나는 다시 아홉 송이를 뜰에 두고 카메라 앵글을 잡은 채 기다렸다.

a 제가 잣을 까먹을 동안 저를 해치지 않을거죠, 주인님!

제가 잣을 까먹을 동안 저를 해치지 않을거죠, 주인님! ⓒ 박도

잠시 후 다시 다람쥐가 나타났다. 경계하는 듯 사방을 두리번거리고는 잣송이에 달려들어 앞발과 입으로 부지런하게 잣알을 까먹었다. 내가 창을 열고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눌러도 다람쥐는 도망가지 않고 제 배를 채웠다. 내가 자기를 해칠 사람으로는 보지 않았나 보다.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은 사람을 엄청 무서워한다. 모든 동식물의 소원은 하나같이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가 아닐는지. 대부분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사람만 사는 양 동식물을 마구잡이로 사냥하거나 채취하고, 학대하고, 그들이 못살게 환경을 오염시킨다.

요즘 시골길을 차로 달릴 때 가장 가슴 아픈 것 중 하나가 차에 치인 야생동물들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이다. 밤중에 야생동물들이 먹잇감을 구하러 도로를 건너다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교통사고를 당한 게 대부분이리라.

a 다람쥐가 잣송이에서 잣알을 꺼내고 있다

다람쥐가 잣송이에서 잣알을 꺼내고 있다 ⓒ 박도

사람들은 저희만 살겠다고 온 들과 산을 파헤치고 물길을 막고 강과 바다를 더럽히고 있다. 그것도 부족하여 땅속을 파헤치고 하늘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사람들은 이 땅위의 모든 동식물을 구워먹고 지져먹고 볶아먹고 끓여먹고 날 걸로 회쳐 먹기도 한다. 그러고도 사람들은 죽은 뒤 다시 하늘나라로 가기 위해 기도한다.

동물들은 사람에게 먼저 덤비지 않는다

몇 해 전에 항일유적답사로 중국 길림성 연길에 갔을 때다. 우리 일행을 안내하던 택시기사가 끈질기게 곰 사육장으로 안내하겠다고 하여 아주 난처했다.

결국 봉사료로 돈을 몇 푼 더 주고 가지 않았지만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살아있는 곰의 쓸개에 고무호스를 연결한 뒤 쓸개즙을 빨게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저만 살겠다고 그래도 되는 건지? 하늘은 사람에게 그런 짓까지 허용했는지? 그렇게 더 살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정말 하느님이 계시다면 그런 사람을 용서하실는지? 곰곰 곱씹어볼 일이다.

요즘 우리 집에는 여러 동식물들이 함께 산다. 잡초는 뽑다가 지쳐 그냥 포기해버려 함께 살고, 지난번에 된통 쏘인 땅벌도 여태 그 자리에 두고 있다.

a 내 집 출입문 위에 있는 땅벌집

내 집 출입문 위에 있는 땅벌집 ⓒ 박도

지난 봄에는 멧새 한 쌍이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 여러 새끼를 기른 후 떠났고, 이 즈음에는 청설모도 가끔 찾아와서 집안을 맴돌다가 간다. 불청객 쥐들도 늘 집안 언저리를 맴돌면서 공존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자주 멧새가 찾아와서 경쾌한 노래를 들려주고 가기도 하고, 한밤중이면 뭇 짐승이 뒷산에서 내려와 어슬렁거리다가 돌아간다. 그런데 여기 와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뭇 동물들은 사람이 자기들을 해치지 않는 한 먼저 사람에게 공격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난 번 땅벌에 된통 쏘인 것도 내가 문을 ‘쾅’ 닫는 바람에 생긴 일이었다. 문소리에 땅벌들의 집이 흔들려서 그들이 제 집 보존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나에게 덤비면서 자결한 것이다.

점심은 마침 장날이라 장 구경 겸 장터에서 국수로 때우고 집에 왔다. 뜰에 둔 잣송이를 보자 두 송이는 뜰 아래로 옮겨지고, 나머지 일곱 송이는 뜰 위에 그대로 있다. 가서 살피자 세 송이의 잣알은 모두 먹었지만 나머지 여섯 송이 잣알은 그대로 박혀 있었다.

다람쥐는 배가 부른 양 더 이상 먹지 않고 제 집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이처럼 야생동물은 욕심이 없다. 그들은 제 배만 차면 절대 더 욕심내지 않는다.

황금물결의 벼논에 날아든 참새도 제 배만 채우면 더 이상 먹지 않는다. 내일 양식은 내일 해결할 양 가져가지도 않는다. 동물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직 사람만 배탈이 있다고 한다.

박씨가 두고 간 잣송이를 두고두고 다람쥐 밥으로 주면서 그를 기다리며 이 가을을 보내야겠다.

a 잘 먹고 갑니다. 내일 또 오겠습니다. 안녕, 주인님!

잘 먹고 갑니다. 내일 또 오겠습니다. 안녕, 주인님!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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