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으로 아내와 홍콩 가다

결혼 2주년을 맞아 아내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등록 2004.10.24 21:07수정 2004.10.2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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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은 아내와 결혼한 지 2년째 되는 날입니다. 우리 부부는 지난 2년 동안 별탈없이 서로를 사랑하며 살았고, 또 보석 같이 아름다운 아들까지 얻었습니다. 평생을 대구에서만 살던 아내는 2년 전 부모님과 친구들을 뒤로 한 채 낯선 서울로 올라와 잘 견뎌주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결혼 2주년을 기념해 아내에게 큰 선물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요즘 아들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우리 가족 수입의 반 이상을 차지해 살림은 어렵지만, 저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아내 모르게 약간의 돈을 모으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해 4월부터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는 것을 시작으로 많은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각종 원고료가 조금씩 쌓여 돈을 모을 수가 있었습니다. 무엇을 할까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진한아, 다음주 주말에 우리 부부 홍콩에 여행 가려고 하는데 상품이 아주 싸게 나왔어. 같이 갈래?"
"그래? 좀 고민 좀 해볼게."
"어, 마음 있으면 전화해라."

상품을 보니 제주도 가는 비용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마침 제가 모아 놓은 돈과도 비슷한 금액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돈으로 결혼 2주년 날 아내에게 근사한 옷과 재미있는 공연을 선물할 생각이었습니다. 무엇을 선택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홍콩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홍콩 여행이 아내에게 더 큰 기쁨을 줄 것이 확실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한참을 고민하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금요일 아침에 출발해 월요일 새벽에 도착하는 2박 4일 여행 상품이었습니다. 즉시 이 사실을 아내에게 알렸습니다.


"정희야 결혼 2주년 기념해서 홍콩 여행 가자."
"정말? 근데 돈은 있어?"
"어, 돈 걱정은 하지 말고 같이 가자."
"응. 너무 좋다. 호호호…"

아내는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여행갈 생각에 며칠을 설레다, 당일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달려갔습니다. 여행사 직원에게 표를 건네 받고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출발 당일 안개가 끼어 3시간 정도 늦게 출발했지만 우리의 들뜬 기분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a 홍콩의 야경

홍콩의 야경 ⓒ 전진한

여행 코스는 마카오에 도착해 마카오를 시내를 둘러보고, 배를 타고 홍콩으로 이동해 2박을 보내고 다시 마카오로 와서 비행기로 돌아오는 코스였습니다.

우리는 마카오에 내려 마카오 시내를 둘러보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도박으로 유명한 나라 '마카오'. 그 명성대로 마카오 시내는 카지노 도박장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마카오 시내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한 가지라도 더 눈에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마카오 시내를 조금 둘러보다 우리는 배를 타고 다음 이동 장소인 홍콩으로 달려갔습니다. 홍콩 시내는 말 그대로 빌딩 숲으로 둘러 쌓여 있었습니다. 빌딩 하나하나가 다양한 건축 양식과 개성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우리 나라의 건축양식과는 아주 대조적이었습니다. 홍콩 시내는 온갖 인종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고 있었습니다.

a 마카오 성바울 성당

마카오 성바울 성당 ⓒ 전진한

그 날부터 홍콩 시장을 중심으로 쇼핑센터, 지하철, 버스, 택시, 트램(전기기차) 등의 각종 대중교통을 이용해 홍콩 시내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홍콩시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각종 호객꾼들입니다.

동남아 상인들은 저희들이 지나 갈 때마다 일어, 중국어로 쉴새없이 무엇인가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상인은 한국말로도 외칩니다.

"롤렉스 가짜 있어요. 상품 좋아요."

말로만 듣던 가짜 상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런 호객꾼들의 호객 행위들도 그냥 즐겁기만 합니다.

자유여행이라 가끔은 길을 잃기도 하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저는 신혼 여행 이후 2년만에 한껏 기분을 낼 수 있었습니다. 비록 돈이 없어 쇼핑의 천국인 홍콩에 와서도 물건 하나 사지 못했지만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또한 홍콩에서도 한류열풍은 너무나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시내버스에 영화배우 '전지현'의 사진이 붙어 있어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었고, 영화관에는 <올드보이> 포스터가 당당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a 홍콩에서의 올드보이

홍콩에서의 올드보이 ⓒ 전진한

홍콩 영화로 청소년기를 보냈던 저로서는 그 모습이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웠을 뿐입니다. 한국 문화상품의 위력이 홍콩 중심부까지 와 있다는 것이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홍콩 여행의 백미는 역시나 홍콩 야경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홍콩 야경을 보기 위해 해가 떨어지자마자 '피크트램'이라는 차를 타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산 정상에 올라가자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홍콩 야경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산에 올라서서 보는 홍콩의 야경은 탄성이 터지기 충분했습니다. 온갖 단어들이 섞여 들리는 탄성소리는 그 자체로도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건물마다 장식되어 있는 형형색색의 조명장식과 바다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야경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한편의 그림처럼 정갈하게 정렬되어 있는 건물 숲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전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은 그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한참을 넋을 놓고 홍콩 야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내에게 그동안 못해주었던 일들을 반성도 하고, 태어난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가 될 것인지에 대해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살면서 어떤 꿈을 펼쳐 보일 것인지도 고민해 보았습니다. 홍콩 야경을 보면서 많은 고민들을 자연스럽게 정리했습니다.

아내의 손을 잡고 홍콩 야경을 조금이라도 머릿속에 남기기 위해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습니다. 드디어 모든 여행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아내는 제 손을 꼭 잡은 채 행복한 모습으로 잠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결혼 이후 난생 처음으로 제 자신이 자랑스러워 보이더군요. 자주는 아니지만 이런 기회를 가끔 가져 아내에게는 멋진 남편이, 아들에게는 멋진 아버지가 되길 결심해 보았습니다.

큰 선물은 아니지만 아내에게 결혼 2주년 기념으로 훌륭한 선물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시 한 번 홍콩 사진을 들여다보니, 행복해 하는 사진 속 아내의 얼굴이 눈이 부시도록 예뻐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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