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한 새만금 인근 지역주민들이 여의도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정현미
[3신 : 25일 밤 10시]
"서해어민 다 죽이는 새만금사업 중단하라"
"애들에게서 사탕을 빼앗으면 울어요, 삶의 터전을 빼앗긴 우린 어른이니 울지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어요"
25일 오후 군산, 김제, 부안에서 올라온 새만금 연안 피해 주민 800여명이 국회 앞에 모였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살아온 지역주민들이 새만금 사업 중단과 지역 어민들의 생존권을 보장을 요구하며 상경집회를 연 것이다.
'새만금사업 즉각 중단을 위한 전북사람들'의 회원인 오두희씨는 "바다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피부로 느낀 주민들이 이를 정치인들에게 알리기 위해 바쁜 일손을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왔다"며 간척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주민들이 뭉쳐 막가파식 개발에 저항할 것"
이날 집회에서는 새만금연안 지역주민들로부터 피해사례를 생생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전북 군산 지역 대표로 참석한 문영호씨는 "과거 아주머니들이 뻘에 나가면 하루 5~6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었으나 6월에 4공구가 막힌 후에는 뻘이 너무 두껍게 쌓여 바다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며 "지금은 쓰레기 줍는 일 등의 '품팔이'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성토했다.
장승구 부안 계화동청년회장은 결의문을 통해 "우리는 전북도 도민들을 잘살게 해준다는 말에 속아 1년 생계비에도 미치지 않는 보상금 몇푼으로 자손만대 지켜온 삶의 터전을 14년째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며 "바다 생물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며 뒤늦게야 우리 삶터를 몰수당하고 아이들의 미래까지도 박탈당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호소했다.
"전북 도지사는 오천 홀인가 오백 홀인가, 그것이 무엇이당가는 나야 모르것지만 크나큰 골프장을 짓겠다고 합디다."
부안군 계화면에서 온 김용운씨도 울분을 토했다. 김씨는 이어 "예전에는 갯벌에서 번 돈으로 생활을 꾸려가며 자식들 대학교까지 보냈다"며 가슴을 쳤다.
하지만 새만금연안 지역주민들은 가슴만 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새만금 공사 중지를 위해 서울까지 올라온 지역주민들은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서해어민 다 죽는다. 새만금사업 중단하라!"
환경노래패 '솔바람'의 노래공연과 계화도 어민들의 자발적 풍물패인 '뱃놈패'의 길놀이 행사는 새만금 연안에서부터 서울까지 올라온 지역주민들을 기운을 북돋우기에 충분했다.
지역 주민들은 '죽음의 방조제 4호 방조제를 즉각 철거하라', '자신의 정치적 생명 때문에 새만금을 팔아먹은 양심 없는 정치꾼들아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라', '죽음의 방조제를 걷어내라! 재앙이 시작됐다'는 등의 피켓을 박자에 맞춰 흔들었다.
집회의 열기가 뜨거워지자 고은식 새만금연안피해주민 실무기획자는 "어민들의 무지와 약간의 보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 동안 어민들은 제대로 된 권리주장을 할 수 없었다"며 "그러나 이제는 사기 당한 우리의 미래와 희망을 스스로 찾을 것이다"며 끊임없는 투쟁을 다짐했다.
이 자리에 함께 한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도 힘을 더해 "정부는 실제 국민들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새만금연안 지역주민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정치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일본과 독일에서도 "새만금간척사업 반대!"
일본의 이사하야만 주민들이 새만금 사업 상경투쟁에 연대인사를 보내 관심을 끌었다. 이사하야만 간척사업은 새만금 간척사업의 초기 모델로 소개된 사업으로, 지난 8월 26일 공사에 따른 어민들의 피해가 인정돼 법원이 공사 중지 가처분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가시와기 미노루 일본습지네트워크 운영위원이 보내온 메시지에는 "이사하야만 간척사업 중지 가처분은 간척사업에 따른 어민들의 피해와 그 비참함을 인정한 것"이라며 "판결에는 피해에 대한 엄밀한 과학적 증명이 압도적 정보를 가진 사업자의 책임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희망을 갖고 함께 손을 잡고 서로 격려하며 용기를 내 싸워가자"고 힘을 실었다.
이후 새만금연안 지역주민 9명이 삭발식을 치르자 지켜보던 지역주민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삭발식을 마치고, 국회 앞부터 국민은행 삼거리까지 약 500m를 행진한 후 정리집회를 가졌다.
정리집회에도 갯벌과 관련된 일을 하는 3명의 독일인이 연대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독일의 어민인 둘스씨는 "독일어민들도 새만금간척사업에 반대하고 있음을 대표해 말하고 싶다"며 "새만금 간척사업은 바다 안 생명체를 다 죽게 만들기 때문에 이 사업은 실패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정리집회에서 연대발언을 한 홍성태 상지대학교 교수는 간척사업에 대해 "정치인들을 위해 바다와 지역주민을 죽이는 사업에 국민의 혈세를 10여 년 간 거의 매년 2000억씩을 쏟아 부었다"며 "그래서 새만금연안 주민들이 잘살게 되었나"고 반문했다.
부안군 계화면 주민 이근배(52)씨는 "노무현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할 당시 분명히 새만금사업이 주민에게 피해가 간다면 재고해야 한다는 환경친화적 입장을 밝혔다"며 "이제는 대통령이 되어 말을 바꾸는 소신 없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 우리나라도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고 있지 않느냐"고 비판했다.